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문성욱목사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사사기 2:6-10)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

(사사기 2:6-10)

설교 : 문성욱 목사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입니다. 우리나라 사교육비는 매년 약 24조원이 듭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부부가 이산가족이 되기도 하고 어린 자녀의 유학을 위해 엄마가 따라 나서기도 합니다. 기러기 아빠는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닙니다. 자녀를 위해 가정 수입 절반 이상을 지출하고 심지어 모자라는 자녀 학비를 위해서 엄마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미국이나 캐나다로 취업이민을 많이 가는데, 그들은 비린내가 나는 닭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중노동을 합니다. 손마디에 관절염이 생기고, 다리가 퉁퉁 붓고, 시간이 지나면 허리 디스크에 걸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힘주고 살던 엘리트들이 왜 낯선 땅에서 서러움을 견디면서 죽도록 고생할까요? 빨리 영주권을 받아 좋은 환경에서 자녀 교육을 잘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정성을 쏟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자녀교육의 현실적 목표는 좋은 대학 진학 = 좋은 직장 = 돈과 권력 = 인생의 성공이라는 등식이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저 집 자녀들이 다 성공했어’라고 할 때, 성공이라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서 자식 낳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든지 안 믿든지 일반적으로 가지는 생각입니다.

일류대학의 졸업장, 좋은 직업, 넉넉한 수입, 안정된 생활, 이것이 모두 눈에 보이는 가치들입니다. 이 가치들을 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위한 전쟁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모자라 조기 영재교육과 영어교육에 열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영어 단어를 외웁니다.

그런데 신앙교육은 어떻습니까? 입시위주의 치열한 경쟁 구조 속에서 교회학교는 심각한 위기에 빠졌습니다. 아이들이 주일날에도 공부를 하고, 각종 자격시험을 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도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가지고 여러 부서에서 봉사하는 학생들은 대단한 아이들입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이나 자기 이기심을 극대화시키는 교육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녀들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역경 앞에서 너무나 쉽게 자신을 포기하는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책임감도 없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품고,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꾼들을 키울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사사시대의 비극의 단초를 보여줍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나님의 은혜로 마치고, 마지막 고별설교에서 애굽이나 가나안 땅에 있는 신들과 하나님 중에서 택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직 나와 내 집을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고백하고 결단합니다.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110세에 여호수아가 죽고 사사시대가 펼쳐집니다.

여호수아와 동시대에 살며 하나님의 큰 이적들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전쟁1세대가 죽고 난 후에 태어난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을 때, 백성들은 제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합니다.(삿21:25)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삽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암흑기와 같은 사사시대가 펼쳐집니다. 무려 300여 년 동안 범죄에 빠져서 고통 받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한 세대가 지나자마자 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을까요? 왜 이런 사사시대의 비극이 벌어졌을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교육의 실패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조건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어도 믿음의 유산을 전수하지 못하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신앙교육의 실패는 곧 개인과 민족의 멸망이라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청교도 신앙의 유래는 바로 해적의 대명사였던 바이킹이라고 합니다. 북게르만 족이라고 불리는 바이킹족은 후손을 어떻게 훌륭하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가장 깨끗하고 순결한 기독교 여자들이 잡아다가 강제로 결혼을 시켰습니다. 비록 억지로 끌려와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그들은 아이만은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성경을 들려주고, 기도를 가르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 정성을 다해 양육했습니다. 이 자녀들이 자라 훗날 청교도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적 출신의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부모가 바른 신앙의 교육을 시키면 신사의 나라, 세계를 주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하나님 없는 교육은 현명한 악마를 키우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신앙교육은 바로 다음 세대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교육은 신앙교육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에 한 세대가 지나자 믿음의 단절이라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신앙의 교육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할 신앙교육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의 유산을 남기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원칙은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들이 남겨 놓은 것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부모님들이 경건을 남기면 자녀들이 경건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경건한 부모님 밑에 경건한 자녀가, 반대로 불경건한 부모님 밑에 불경건한 자녀가 있습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여리고성의 전리품을 숨겼다가 자기 가족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이성 전투에서 패하게 한 장본인 아간을 이야기할 때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라고 소개합니다. 아간을 이렇게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간의 조상들이 다 좋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아간의 선조인 유다는 가나안 여자를 아내로 삼기도 하고, 나중에는 며느리 다말과 잠자리를 하여 세라를 낳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경건한 아버지에게서 불경건한 아들 세라가 나왔고, 거기에서 불경건한 후손 아간이 나온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음 세대들은 앞 세대들이 남긴 것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패역한 행위 뒤에 그들의 부모들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정복 1세대들이 가나안 거민들을 그 땅에서 다 몰아내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몰아내지 아니한 가나안 거민들은 다음 세대에게 짐이 되었습니다. 후세대는 앞세대가 남긴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한 것을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습니까? 돈입니까? 명예입니까? 사업체입니까? 처세술입니까? 그 어떠한 것보다도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삶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이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2)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두 번째 원칙은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부모를 그대로 따라하기 때문입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잘 증명해 줍니다. 가나안 정복2세대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불신앙 가운데 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가나안 정복 1세대들이 다 몰아내라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몰아내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복1세대들은 “가나안 원주민들과 언약을 맺지 말라. 이방인신을 섬기는 단을 헐어버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과 평화조약을 체결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결국 부모들의 이러한 모습을 다음 세대가 보고 배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 앞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주일성수를 제대로 하지 않고 주일날 세상에 나가서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들은 그대로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우리가 집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그대로 마음판에 새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집에서나 밖에서나 교회 이야기를 할 때 긍정적인 이야기, 좋은 이야기, 칭찬의 이야기만 하십시오. 말 하나, 행동 하나에서부터 본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예수님은 철저하게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몸이 아픈 환자를 보면 늘 고쳐주시고 축복하셨고, 몸소 겉옷을 벗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시간을 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사도바울도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다(행20:35)”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다음 세대들에게 모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가정에서, 우리 교회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혹시 다음 세대들을 방치시켜놓지는 않았습니까? 다음 세대들에게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다음 세대들에게 모본이 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인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는 복된 가정, 복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