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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신명기 8:11-20)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신명기 8:11-20)

설교 : 문성욱 목사

세계적인 골퍼요 골프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잭 니클라우스’가 말하는 프로 골퍼와 아마추어 골퍼의 차이는 생각이요, 기억력이라는 것입니다. 전문가적인 골퍼는 한 번 골프채를 휘둘러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엇을 잘했는지를 꼭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골퍼는 잘못되면 마누라 탓, 기후 탓, 잔디 탓 등 다 남의 책임으로 돌린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프로 골퍼는 ‘course management’가 훌륭하다고 합니다. 나가서 운동하게 될 이 골프장을 미리 답사를 하고, 골프장을 살펴보고 머리에 환하게 기억을 하고 밤새 그것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프로 골퍼는 생각이 있고, 일반적인 사람들은 생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실패의 이유는 기억하지 못해서입니다. 잘못함으로 인하여 실패했던 기억들이 있다면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쉽게 잊어버리고, 그 때문에 또다시 아픔을 겪게 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8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2절과 18절에 나오는 “기억하라”라는 말로 구약성경에 약 230회 정도 사용됩니다. 모세오경 가운데 신명기는 반복하여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의미로 재명기(再命記)라고도 부릅니다. 왜 반복하여 명령을 주십니까? 단단히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본문의 8장 18절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 크고 놀라운 은혜와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신 일, 40년간의 광야생활을 지키신 일, 모든 타민족들의 위협과 공격으로부터 지켜주신 일들, 즉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잊지 말라는 뜻과 같습니다.

1940년 초, 폴란드의 정치범을 수용하기 위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만들어졌지만 나중에는 전쟁포로와 유대인들의 수용소로 변했습니다. 80명이 타는 화물칸에 400명씩 실려 많은 사람들이 이 수용소로 보내졌으며, 그 곳에서 생체실험을 했던 요제프 멩겔레 박사의 엄지손가락의 결정에 따라 그들의 생사가 갈렸습니다. 그때 병자와 노약자, 키 작은 어린이들은 바로 목욕탕으로 위장된 가스실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스실에서 비명 소리 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다 죽어갔습니다. 약 30분 후에 철문이 열리면, 시체들은 화장터로 실어보내고 화장할 때 흘러나오는 기름을 다시 불 위에 뿌리거나, 비누 재료로도 사용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로 수용소 철조망의 고압전류에 몸을 던져 죽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임신 8개월의 임산부를 출산할 때까지 살려주었다가 갓난아이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얼마나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엄마가 난지 8일 만에 엄마에 의해 독살되었다. 또 수용소에서 건장한 남자를 뽑아 목을 졸라 죽이는 쇼를 매일 밤 공연했다고 한다.

지금 예루살렘 북쪽 아인케렘이란 산에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 추모 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 출구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망각은 멸망에 이르지만 기억은 구원의 길이다.”

그러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먼저,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들을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이유는 출애굽의 은혜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죄의 종으로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서 살아가던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장차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영원히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시인 롱펠로가 보잘 것 없는 종이쪽지에 시를 쓰면 수 천 만원의 가치가 있고, 숙련된 기계공은 몇 푼 안되는 쇳덩어리로도 수백만 원 가치의 물건을 만들 수 있고, 유명한 미술가는 몇 푼 안 되는 종이 위에 고가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하물며 은혜의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우리를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기까지 내어 주시고 사랑하셨는데,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식었습니까?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어주셔서 다시 한 번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뜨겁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2-14절)

사람이 배고 고프면 코가 예민해지지만 배가 부르면 무디어집니다. 영적으로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저절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형통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복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두 번으로 복을 받고 끝나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 겸손할 때 그는 왕이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계속해서 복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잘 될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림으로 계속 복을 받지 못하고 결국은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잘되면 잘될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은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고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극히 높이시고,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하고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39장을 보면, 히스기야가 생명이 연장된 후에 바벨론 왕이 글과 예물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는 이 사신들에게 궁중 보물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무기고와 보물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너희들만큼은 있다’고 자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히스기야의 실수이고 죄악입니다. 히스기야는 자기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철저하게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히스기야라면 그가 바벨론 사신에게 궁중의 보물이 아니라 자기를 낫게 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자기가 복을 받은 내용만 자랑했지 복을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잊고 말았습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자랑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다 바벨론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받은 복의 내용에 머물러 그것을 자랑하려고만 하면 그것을 다 거두어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형통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함으로 더더욱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15-16절)

우리는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하지만,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광야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이어서 농사도, 목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 그런데 조금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그동안 베풀어 주셨던 은혜를 잊어버리고 불평불만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도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부를 책임지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주릴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목말라 할 때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했으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던 4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로 말미암아 더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마태복음 14장 13절 이하에 나오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받아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제자들에게 주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감사는 고백할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감사는 넘치는 하나님을 우리 삶 속에서 만나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해 줍니다.

2011년도가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았습니다. 다음 주일은 지난 6개월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 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형통하셨다면 더더욱 감사하시고, 어려운 화경 가운데 있다면 지금까지 도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고 인내하며 소망을 갖고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