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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로마서12:1~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로마서12:1~2

2009년 1월 4일 장안중앙교회 주일 낮예배 최일환 목사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설교:

2009년도를 맞아 첫 주일 예배에 참여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지난해 연말 2009년도를 준비하면서 목회 계획을 세우는데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사역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장안중앙교회가 가장 힘써야 하고 노력해야 할 분야가 무엇일까 기도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제게 마음을 주시기를 "다른 것 필요 없고 하나만 바뀌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성도들 개개인이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주님만을 본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로마서는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1장부터 11장까지로 구원의 진리를 교리적으로 설명한 부분이고 후반부인 12~16장은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를 말씀입니다. 그 후반부의 첫 장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거룩한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부분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분명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모든 문제는 문제가 되지 않게 될 것이란 마음을 하나님이 제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원인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환경문제도 아니고 능력문제도 아닙니다. 인간관계의 갈등문제도 아닙니다. 돈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원인은 남에게 있지 않고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 하면 "내가 변화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변하여 예수님을 닮고 내가 변하여 성경대로 살게 되면 우리 앞의 문제는 문제꺼리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요나서를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이 뭡니까?

요나 한사람의 변화가 풍랑도 해결하고 니느웨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도 구원하셨으나 그보다 더 어려우셨던 것은 요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요나가 변화되면 모든 것이 문제가 안 되듯이 오늘 우리 자신이 변화되면 우리 앞의 문제는 다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려면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내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님만을 본받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1. 보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은 본대로 배우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孟母三遷之敎(맹모삼천지교)라는 것도 생긴 것입니다. 자식이 보는 대로 따라가기에 세 번 이사를 하면서 까지 교육을 신경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뭘 보느냐에 따라 그대로 따라합니다. 그래서 좋은 곳에 살아야 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모델은 부모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그대로 따라 합니다. 그러기에 가정에서 인격이 형성되고 가정에서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부모의 장점은 물론 단점까지도 배우게 됩니다. 저희 교회에서 과거 선교원을 할 때 아이들의 노는 것을 보면 그 집안 풍경을 대충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소꿉놀이하면서 술 취한 흉내를 합니다. 그리고 상을 뒤 집어 엎습니다. 어디서 보았겠습니까? 집에서 아빠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또 어떤 아이는 부부 싸움 흉내를 냅니다. 뭐라는지 아십니까? "그래 죽여라 죽여" 하면서 욕을 합니다. 집에서 배운 대로 하는 것입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자신들의 좋은 점만 본받길 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식 잘 키우려면 부모가 좋은 본이 되는 생활을 하여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구약의 열왕기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씀들이 반복해서 적혀 있습니다.

열왕기하23:32에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 하였고 이어서 37절에도 "여호야김이 그의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했습니다.

또 24:9에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했고

24:19절에 시드기야왕도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했습니다.

 

전부 부모나 조상들의 악행을 그대로 본받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행한 대로 자식들이 본을 받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으니 너희들은 잘하라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옛날 서당 선생님 이야기와 같습니다.

 

선생님이 좀 혀가 짧아 "바람 風"을 '바담 풍' 하면서 따라 하라 합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바담 풍' 하자 "이놈들아 나는 바담 풍 하지만 너희들은 바담 풍 해야 하는 거야 이놈들아." 했다 하잖습니까? 자기도 못하면서 자식들이 바르게 되길 기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사람은 좋은 것보다는 못된 것을 더 잘 배웁니다. 그러기에 저 위대한 왕 다윗도 자식 교육에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훌륭한 왕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왕이었습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 시간에 사랑하는 자식인 솔로몬을 불러놓고 아비로서 마음에 있던 말을 했습니다.

 

왕상2:2-3을 보세요.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그러나 이런 유언을 들은 솔로몬의 실제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처음에는 잘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처럼 '여자'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우상 숭배합니다. 결국 신세 망치는 길을 갔습니다.

다윗이 거느린 부인 숫자만 성경에 8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첩까지 포함하면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아들도 그대로 따라 갑니다.

 

결국 솔로몬은 다윗이 <말한 대로>가 아니라 다윗이 <생활로 보여준 대로> 따라 행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여느 부모들처럼 자기 자식이 자신의 좋은 것만 배우고 나쁜 것은 본받지 않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꼭 그 반대로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도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분만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아야 하고 그 성경을 가까이 하고 날마다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뭘 보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이 이 세대를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한해도 은혜롭고 복된 한해가 될 것입니다.

 

2. 이 세대의 실체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했는데 그러면 "이 세대"가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세대는 뭘까요?

우리는 "이 세대"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니 나도 모르게 따라 가는 것입니다. NIV영어 성경에서는 The pattern of this World 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패턴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Holy Bible에서는 그냥 This World 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새번역 성경에서는 이 세상 풍조라고 번역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이 세대"를 성경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요? 성구 몇 구절을 통해 살펴봅니다.

 

이 세대는

1)무관심과 자기중심의 세대입니다.

마태복음 11:16-17절을 보면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여기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하며 예수님이 일러주시는 "이 세대"의 특성이 "무관심"과 "자기중심적 이기심" 세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비유로 일러주셨습니다.

시장터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세대와 같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잔칫집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불고 초상집 놀이를 하면서 곡을 합니다. 그런데 피리를 불어도 춤을 안 추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세상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춤추지 않느냐, 왜? 가슴을 치지 않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지요.

무관심은 자기중심의 사람들이 갖지는 특성입니다.

자기만 알고 이웃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쁨만 알지, 이웃의 슬픔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입니다.

 

또 자기의 슬픔만 알지, 이웃의 기쁨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자기도 그러면서 서로를 향하여 "네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자신들이 자기중심의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서로를 원망하며 멀어지고 무관심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세대의 모습입니다.

 

이 세대는 이미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습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한 마을을 이루고, 한 아파트의 같은 동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서로에 대해 무관심입니다. 아니 알려고도 안하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이기주의를 내세워 너도나도 한 데 모여 구호를 외칩니다. 님비현상이 뭡니까? 님비(NIMBY)는 Not in my back yard의 첫 글자를 딴 조합단어입니다.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데 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나도 쓰레기 버리면서 내 뒷마당에서는 쓰레기 소각장 세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내 가족, 친척 죽으면 화장 하면서 내 집 주변에는 화장장 못 세운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어찌되든 말든 나는 손해 안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의 모습입니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충만한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2)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다.

마태복음 12:39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비유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일러주시는 "이 세대"의 특성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 뿐 아니라 오늘 이시대도 마찬가집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성적으로 음란이 가득한 세대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동성애가 합법화 되고 간통을 합법화하려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여성이 남성이 되고 남성이 여성이 된 사람들이 버젓이 공중파 방송에 나오는 시대이며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공포하는 커밍아웃이라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는 세대, 그리고 그들을 차별하면 죄인이 되는 이 시대가 바로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의 모습입니다. 유럽에서는 동성애자가 국회의원이고 시장이 된 곳이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이 물로 심판했던 노아의 때 같고 불로 심판했던 소돔 고모라 시대의 롯의 때와 같은 시대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3)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마태복음 17:17절에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예수님이 "이 세대"를 향하여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란 믿음이 없어 부패하고 악한 세대란 뜻입니다. 결국 믿음 없는 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왜곡하고 부패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 탄식 속에는 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탄식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이 탄식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잘못 해석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왜곡합니다. 그러기에 그 많은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정작 주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믿음"은 찾기 힘들다는 탄식이십니다.

 

이 세대는

4)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빌립보 2:15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여기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삐뚤어지고 고집스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거역하는 세대를 말합니다.

세상이 악하여 너무도 공공연하게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며, 욕하고, 거역하며 믿지 아니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사탄을 숭배한다는 사탄교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탄을 찬양하는 사탄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반기독교(안티기독교)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들은 조직적으로 안티기독교 단체를 결성하여 기독교 죽이기에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서로 연대하여 기독교를 박멸하자는 책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결국은 세상 것은 썩는 것이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세대가 얼마나 무서운 세대인 것을 직시하고 어두움의 세력을 배격하고 더 나아가 믿음으로 대적하여 물리쳐야 할 세대인 것입니다.

누가요? 바로 빛으로 들어오신 여러분이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요?

3. 가치관의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기에 똑같은 물건을 앞에 놓고 가치가 다르기에 어떤 이는 싸고 어떤 이는 비싼 것입니다.

물건만이 아닙니다. 사랑, 믿음, 돈, 예배, 사명. 이런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릅니다. 왜냐면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가치관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성공 실패에 대한 관점을 보세요.

서울의 일류대학을 간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지방의 대학을 간 사람을 실패한 인생입니까? 돈을 많이 벌고 넓은 아파트에 살면 성공한 사람이고 영세민 아파트에 살면 실패한 인생입니까? 차를 에쿠스나 그랜저를 타면 성공한 사람이고 엘란트라나 소형차를 타면 실패한 사람일까요?

만약 예수를 믿는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면 우리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관이 한 차원 높은 것을 원하십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세상적 가치관”을 버리고 “성경적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육신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에서 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삶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사명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뒤바뀌고, 뒤집힌 가치관”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딴에는 실패했다고 너무나도 쉽게 자살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성공했다고 헛된 자랑과 허영 속에 있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이 최고이고 유대교가 진리이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귀세력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그가 주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고백합니다.

빌3:7~9에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옛날 유익하게 여기던 것이 다 해롭게 여겨지더라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날 것은 배설물, 똥과 오줌으로 여기고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 돌아서지 않겠네 ♪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이 세상 사람 날 몰라 줘도 / 뒤 돌아 서지 않겠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세상 등지고 십자가 보네/ 뒤 돌아 서지 않겠네

이것은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부를 수 없는 찬양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날 몰라주어도 뒤돌아서지 않을 수 있나요? 고난과 환난이 닥치고 어려움이 와도 주님 뜻대로 살 수 있나요? 정말 이세상 등지고 십자가만 바라 볼 수 있나요? 이것이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이것이 바뀌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가 깨달아지게 되고 그러면 그 하나님의 뜻에 모든 것을 걸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는 성경적 가치관은 어떻게 만들어 지나요?

가치관이 변화 되려면 오늘 본문 2절 말씀처럼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도 있어야 하나 중요한 것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 라고 했습니다. 내가 변화 되는 것이라 보다는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보는 세상과 물질, 그리고 하나님과 교회를 보는 시각이 바뀌고, 사람을 보는 시각도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람 때문에 힘들고 어려웠는데 시각이 바뀌니 사람들이 내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시각이 바뀌니 예전에는 원수가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시각이 바뀌니 아내가, 남편이 원수가 아니고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아멘?

시각이 바뀌니 자식이 골치 덩어리가 아니고 복덩어리입니다. 아멘?

 

말씀을 맺습니다.

2009년도 한해가 여러분에게 복된 한해가 되려면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됩니다.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옆 사람에게 말하세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맙시다./

기도합시다. (통성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