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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본문 레위기 2:1-16

본문 레위기 2:1-16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레위기 2장에 나오는 소제는 번제와 화목제와 더불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를 드리는 제사로(2, 9, 12절), 레위기 1-7장에 소개되는 다섯 제사 중에서 유일하게 동물이 아닌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를 뜻하는 히브리 원어(민하)는 ‘선물’, ‘조공’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소제’는 감사의 표시 혹은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치는 선물의 의미, 신하가 그의 군주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충성과 신의를 지키겠다는 표시로 바치는 조공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제는 속죄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기쁨으로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로 드렸던 제사입니다.

레위기 1장의 번제에서 흠 없는 수컷, 즉 가장 좋은 동물을 여호와께 드려야 했던 것처럼, 소제에서도 최고 상등품인 고운 가루를 여호와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값비싼 제사용 동물을 속죄제로 드릴 수 없었던 극빈자의 경우에는 소제로 자신이 지은 죄의 용서를 구하는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는데, 기름과 유향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제는 보통 짐승을 태우는 번제와 함께 드렸습니다.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드리는 소제(1-3절)

(1-3)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그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1-3절은 익히지 않고 날것으로 드리는 소제에 대한 규례입니다. 소제는 크게 곡식을 날것으로 드리는 경우와 익혀서 드리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사자가 소제물을 제사장들에게 가져오면 제사장은 기름이 혼합된 고운 가루 한 줌과 유향을 취해 기념물로 태웠습니다. 그리고 번제와 달리 태우지 않고 남은 소제물은 모두 제사장들에게 주어졌으며, 제사장들은 이것을 회막의 뜰에서 먹었습니다.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라는 표현은 레위기에서 제사장들의 몫으로 주어지는 성물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베푸심으로 얻은 복을 누리는 공동체적인 요소를 표현한 것입니다.

익혀서 드리는 소제(4-10절)

(4-7)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

익힌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는 익히는 방법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내에 있는 크고 깊은 냄비인 화덕에서 익혀 드리는 경우로(4절),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이나 무교전병을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오븐에서 케이크 또는 과자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철판에 부쳐 드리는 경우로(5-6절),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않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어 부쳤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프라이팬에 부침개를 부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 번째는 냄비에 곡식을 쪄서 빵 또는 떡을 만들어 드리는 경우로(7절),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은 모두 고운 가루와 기름이 공통 재료로 사용되었지만, 누룩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누룩의 발효가 고유의 특성이 변질되는 부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8-10) 너는 이것들로 만든 소제물을 여호와께로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가서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할 것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소제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에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익히지 않은 소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익힌 소제물을 제사장에게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 중에서 한 줌을 기념물로 취해 번제단 위에 태워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이 가져갔습니다. 익힌 소제는 유향 얹는 것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날것으로 드리는 소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쁨을 상징하는 유향을 얹어 드렸습니다.

소제에 관한 다양한 규례(11-16절)

(11-12)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지며

11절부터는 소제에 관한 다양한 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로 제단에서 태우는 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못했습니다. 누룩과 마찬가지로 꿀도 곡식 가루에 발효를 유발해서 재물을 변질시킬 수 있어 금지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꿀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벌꿀로 생각하기 보다는 과일의 즙으로부터 만들어진 당분 물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가나안은 과일의 즙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꿀의 주산지로도 유명했습니다. 따라서 소제가 하나님께 순종과 충성을 표시하는 조공의 의미로 볼 때,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과 꿀을 금지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소제물에 누룩과 꿀 넣는 것을 금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13절에서는 ‘소금’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사용하여 모든 소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넣으라고 강조합니다.

소금은 부패와 변질을 막아주는 무해한 방부제 구실을 합니다. 그래서 소금은 고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소금은 기능상으로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지만, 고대 근동에서는 언약 당사자들끼리 소금과 떡을 함께 먹음으로 언약의 불변성을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변치 않는 언약을 두고 ‘소금 언약’이라고 말합니다(대하 13:5).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변덕이나 배신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들 스스로는 변하지 않도록 소금을 더함으로 다짐을 굳게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안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막 9:50). 이는 소금 언약의 화목을 기대하신 말씀이며, 신실함과 사랑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4-16)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제사장은 찧은 곡식과 기름을 모든 유향과 함께 기념물로 불사를지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14-16절은 첫 이삭으로 가공되지 않은 농산물의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 대한 규례입니다. 첫 이삭을 소제로 드릴 경우에는 먼저 알곡을 불에 볶은 다음에 가루로 빻아 기름과 유향을 얹어서 드렸으며, 제사장은 기름 섞인 찧은 곡식을 모든 유향과 함께 한 줌을 취해 기념물로 불살랐습니다.

첫 이삭을 드린다는 것은 수확한 모든 소산물이 여호와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행위이며 제사자는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상기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언약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을 인정하는 감사의 표현으로 첫 열매를 드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소제는 예배자의 삶과 사역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룩과 꿀은 곡식 가루에 발효를 일으켜 제물을 변질시키지만, 소금은 제물의 변질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소제에 누룩과 꿀의 첨가 금지와 소금의 첨가에 대한 명령은 변질의 방지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 즉 그들의 가르침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여러 번에 걸쳐서 하셨습니다(마 16:6-12; 눅 12:1).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소금(마 5:1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이 세상이 변질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들 역시 변질되지 않도록 스스로 몸부림을 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만약 소금이 변질된다면, 그 소금은 버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12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여러 선배 목사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은 목사로서 늘 초심을 잃어버리지 말고 변질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 말씀이 원론적인 말씀처럼만 들려서 좋은 말씀으로만 듣고 넘겼지만,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정말 중요한 말씀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변질되지 않는 소금같은 목회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변질시켜 버리는 누룩 같은 목회자가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려울 때가 참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우리가 한국 교회를 탓하며 목회자들을 탓하며 다른 사람들을 탓하며 정작 우리들도 똑같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기 위해 더 많이 몸부림치며 노력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세상의 누룩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소금으로 인침을 받아 자기 자신과 이 세상 모두를 거룩하게 하는 도구가 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날마다 눈을 들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말씀의 강령이신 예수님 안에서 소금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인해 너무나 무기력하고 아무 쓸모 없는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에게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라고 명령하셨지만, 죄의 누룩을 덕지덕지 붙이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세상의 달콤한 꿀과 같은 세속적 가치관에 속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강령이신 예수님 안에서 소금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번제와 소제의 큰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2. 소제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소제를 드려야 합니까?
3. 익힌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를 세 가지 방법으로 구분해 봅시다.
4. 소제물에 넣지 말아야 할 누룩과 꿀은 무엇을 상징하며, 반드시 넣어야 하는 소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5. 당신은 현재 삶의 자리에서 ‘소금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부터 무엇을 결단하고 실천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봅시다(가정, 직장, 교회, 인간관계 등).

(작성: 오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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