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위기 4장 1-21절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오늘 본문은 번제, 소제, 화목제에 이어 속죄제를 드리는 규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속죄제는 삶 가운데 죄를 인식할 때마다 속죄를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개역개정 2절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를 새번역은 ‘어떤 사람이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 나 주가 하지 말라고 명한 것을 하나라도 어겼으면’으로 해석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알고도 고의로 계명을 어긴 것이 아니라, 실수로 계명을 어겼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대로 지나치지 말고 바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한 달 전에 과태료가 13만원이 되는 교통위반 고지서를 받았습니다. 과태료 액수에 깜짝 놀라서 위반 내용을 보니 어린이보호내 신호를 위반한 과태료였습니다. 당일 저녁에 서대문에서 아들과 저녁 식사를 할 만한 식당을 찾는데 몰두하다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적색신호로 바뀐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이 단속 카메라에 찍힌 것이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조심하면서 운행합니다.
프랑스는 보행자의 무단횡단에 대해 관대한 편입니다. 프랑스 유학 중에 처음 방문한 다른 나라 도시가 스위스 제네바였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좌우를 살펴보니 오는 차량이 없기에 여느 때처럼 적색 신호임에도 당당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제네바 사람들은 적색 신호에 맞추어 그대로 서있는데 글쎄 저희만 건너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동양인이 말입니다. 상당히 멋쩍었고, 이후부터는 신호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앞서 실수로 교통법규를 어긴 결과 과태료를 물었습니다, 무단 횡단한 결과 제네바 시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자녀인 우리가 실수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면 당연히 이에 합당한 처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범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속죄제를 드리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다고 하십니다.
속죄제를 드려야하는 대상은 제사장(4:3), 회중(4:13), 족장(4:22), 평민(4:27)으로 누구든 예외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이중에서 제사장과 회중이 드리는 속죄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사장의 속죄제 (3-12)
(3)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용되며, 구약에서는 제사장과 왕 그리고 선지자를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택하셨다는 것 자체가 뭇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연약한 인간이기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로 인한 잘못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무엘서의 엘리 제사장은 제사장인 두 아들의 죄에 대해 처음부터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으로서 죄를 저지르고 있는 두 아들에게 죄에 상응한 벌을 내렸어야 하는데, 말로 꾸짖는 것으로 그쳤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이같은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나를 멸시하는 행위’(삼상3:30)로 여기셨습니다. 3절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제사장의 범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엘리 제사장의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로 인해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궤도 빼앗기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도 전쟁터에서 죽었고, 그 비보를 듣고 엘리 자신도 의자에서 목이 부러져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실수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있습니다. 죄를 깨달았다면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본문은 지체하지 말고 바로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3)라고 합니다. 수송아지를 어떻게 제물로 드려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회막 문 여호와 앞에 수송아지와 함께 서있습니다. 회막 문 앞에는 죄를 범한 제사장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회막 문 앞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있습니다. 뭇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 체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제사장이 은밀한 곳에서 자신의 죄를 고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공개된 장소에서 고하도록 하십니다. ‘회막 문 여호와 앞’은 은밀한 골방이 아니라, 공개되어 있는 내 삶의 자리입니다. 내 삶의 자리를 여호와 앞으로 여기며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인정하는 리더가 존경받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제사장이 공개된 장소에서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니요, 제사장을 공개 망신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사장을 바로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스스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국민의 힘 윤희숙 전의원의 행동이 신선했습니다. 그동안 정가에서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의원이 몇이나 있었습니까? 종교계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며 자리를 내려놓지 않은 목회자로 인해 분란에 휩싸인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사장은 속죄제물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합니다. 머리에 안수한다는 말은 자신의 죄를 수송아지에 전가시키는 행위입니다. 안수를 마친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목을 쳐서 죽입니다. 수송아지는 목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 제사장이 죽이는 대상은 형식적으로는 수송아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기 자신, 죄지은 자신입니다. 죽이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수송아지가 흘린 피를 받아 회막에 들어가서 피를 여호와 앞 휘장 앞에서 일곱 번 뿌리고, 회막 안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 뿔에 바르고,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16-18). 제물의 피를 뿌리고 바르고 쏟는 것은 속죄제를 드리는 제사장의 죄가 사해진다는 상징입니다. 피는 생명을 의미하기에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속죄제물의 피를 뿌리고 남은 피를 번제단 밑에 쏟는 행위야 말로 제사장이 목숨을 걸고 다시는 이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행위입니다.
이후 제사장은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리고 남은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은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가서 불로 나무 위에서 태워야 했습니다(8~12). 흠 없는 수송아지의 가죽과 고기 등은 당시에도 귀했지만, 속죄의 대가로 모두 불태워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제물의 목을 치고 피를 뿌리고 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떼어내고 머리와 정강이와 고기와 내장 그리고 똥까지 분류해서 씻고 번제단에서 불사르고, 진영 바깥에 가져가서 불에 태우는 모든 일을 마친 제사장은 온통 피와 땀과 짐승의 냄새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속죄제를 마친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는 기쁨으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회중의 속죄제 (13-21)
(13-15)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이스라엘 온 회중이 부지중에 죄를 범했는데,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깨닫게 되면 속죄제를 드려야 합니다. 온 회중이 부지 중에 죄를 범했을 경우에는 제사장이 아니라, 회중을 대표해서 장로들이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죽였고, 그들이 피와 기름을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회막 하나님 앞에서 피를 뿌리고 기름을 제단에서 불살랐고 이후 과정은 제사장의 속죄제와 동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4-21).
그런데 죄를 지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어떻게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열왕기하 18장에 있습니다.
(왕하 18:3-4, 6)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 /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 왕이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여러 우상들처럼 부수면서 그것은 느후스단, 즉 놋 조각일 뿐이라고 일갈한 이유는 백성들이 놋뱀을 향해 분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백성들이 신주 모시듯 귀히 여기는 놋뱀을 일거에 부술 수 있는 원천은 바로 그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한 계명을 지키는, 즉 말씀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아무런 생각 없이 출애굽 광야시대에 만든 놋뱀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말씀에 비추어 보니 그것이야 말로 우상 숭배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사역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죄인된 우리의 본모습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살펴본 제사장과 온회중의 속죄제의 핵심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로 죄를 지을 수 있는데,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지체하지 말고 바로 삶의 자리에서 회개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윗왕이 신하들과 궁전에 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등장해서 다윗이 유부녀인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의 남편마저 전쟁터에서 살해했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왕의 신분을 지닌 다윗은 공개 망신을 준 나단 선지자가 거짓말하고 있다면서, 얼마든지 그를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달은 그는 지체하지 않고 신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러한 점을 높이 사셨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저녁 집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친구가 임종 당시 정리해달라고 맡긴 100달러의 거금을 횡령한 죄를 600명이 넘는 회중들 앞에서 고백하며 회개의 포문을 열자, 그 뒤를 이어 그 자리에 함께한 회중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평양대부흥운동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한국 교회가 교회로서 틀을 다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사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 한 사람의 행보가 이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잘못된 행보로 인해 사회가 더 혼탁해질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는 나 한 사람으로 인해 혼탁한 이 사회가 정화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대속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감히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과 동떨어진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전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말씀으로 준비된 제사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죄에 대해서 민감한 말씀의 사람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부지중에 저지른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고, 같은 죄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의 시선이 주님만을 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죄와 관련된 속죄제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2.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물을 바친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까?
3. 더 이상 속죄제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구약의 속죄제를 오늘을 사는 나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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