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레위기 5장 1-13절은 속죄제에 대한 세부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6절은 부지 중에 범죄하였을 때 죄를 처리하는 것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7-13절은 속죄 제물을 드리기에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방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죄를 전혀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4장이 신분에 따른 속죄제를 안내하고 있다면 레위기 5장은 사람들이 부지중에 짓는 죄의 사례를 정리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이 어떠한 모양으로든 죄를 허용하거나 죄와 타협하지 않도록 교훈하고 있으며 개인이 처한 상황에 관계없이 이스라엘 자손이라면 누구든지 거룩한 삶을 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속죄제의 세부 내용을 통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를 깨닫고 죄에서 돌이켜 거룩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발견합니다.
만일 누구든지(1-6)
(1) 만일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증인이 되어 그가 본 것이나 알고 있는 것을 알리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의 죄를 져야 할 것이요 그 허물이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는 마땅히 해야 할 증언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5장 1-6절이 다루고 있는 ‘부지 중에 지은 죄’는 이처럼 자신의 행동이 ‘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죄를 지은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저주하는 소리를 듣게 되어 그것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마땅히 증언을 해야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죄가 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증언을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부지 중에 죄를 범할 수 있음을 알고 범사에 죄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하는 순간 죄는 아주 작은 균열로 시작해서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2-3)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들 곧 부정한 들짐승의 사체나 부정한 가축의 사체나 부정한 곤충의 사체를 만졌으면 부지중이라고 할지라도 그 몸이 더러워져서 허물이 있을 것이요 만일 부지중에 어떤 사람의 부정에 닿았는데 그 사람의 부정이 어떠한 부정이든지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허물이 있을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부정한 짐승으로 구별된 동물이 특별히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거나 건강을 해치는 성격의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 자손은 부정한 짐승을 구별하였습니다. 부정한 동물로 구별된 것들의 사체를 부지중에 접촉하게 되면 부지중이라고 해도 그 사람은 부정하게 되고 자신의 죄를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이나 하나님께서 부정한 상태로 규정하신 몇 가지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시체(레11:24)와 출산(레12:2-5) 직후 얼마간 그리고 한센병과 피부병(레13,14)에 걸린 사람은 부정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 각각의 상황에 대해서는 레위기가 진행되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부지중에 사람의 시체와 접촉하거나 피부병에 걸린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허물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은 사람의 부정에 접촉하였음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허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죄악‘(사30:13)으로 번역 되기도 하고 ’형벌‘(욥19:30)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허물‘은 ’죄와 죄의 대가‘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처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허물’이 죄와 책임을 동시에 의미하기에 부지중이라도 사람의 부정에 접촉하게 되면 이미 그 사람에게는 죄가 있으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범죄하였더라도 그것이 발각되거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자수를 하기 전까지는 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교훈합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발각되지 않는 죄, 은밀히 숨길 수 있는 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죄는 없기 때문입니다.
(4) 만일 누구든지 입술로 맹세하여 악한 일이든지 선한 일이든지 하리라고 함부로 말하면 그 사람이 함부로 말하여 맹세한 것이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그 중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우리가 대화 중에 함부로 말하게 되는 경우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감정에 치우쳐 말하는 경우입니다. 경솔한 말은 그 자체로 죄를 범할 위험이 있으며 자신의 경솔한 말로 맹세를하게 되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분명한 허물이 되었습니다. 맹세는 주로 더 높은 권위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레19:12). 따라서 맹세를 하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의 연약함을 간과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나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서 경솔한 언행을 하게 될 위험이 있음을 인지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태도로 입술을 지켜야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로 범죄하지 않고 일상에서 거룩한 삶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5-6) 이 중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아무 일에 잘못하였노라 자복하고 그 잘못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속죄제를 드리되 양 떼의 암컷 어린 양이나 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의 허물을 위하여 속죄할지니라
경솔한 언행으로 죄를 지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처리하기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먼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속죄제를 드리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입니다.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은 죄를 용서하실 수도 있고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수도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겸손한 태도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부지중에 지은 죄와 관련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 제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면, 앞으로는 모르고 지은 죄를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드리고 부지중에 지은 죄를 깨달았거나 알고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구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참회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속죄제를 위한 필수 절차인 죄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해를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요일1:9-10)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속죄제를 드리기 전 죄를 고백하는 절차를 통해 배우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감추거나 사소해 보이는 죄는 슬그머니 넘어가는 태도를 버리고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겸손히 고백하며 날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안에 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속죄제의 제물은 어린 암양 또는 암염소였으나 그것들을 제물로 드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속죄제의 제물을 경제적 형편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7-13)
(7-10)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죄제물을 먼저 드리되 그 머리를 목에서 비틀어 끊고 몸은 아주 쪼개지 말며 그 속죄제물의 피를 제단 곁에 뿌리고 그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릴지니 이는 속죄제요 그 다음 것은 규례대로 번제를 드릴지니 제사장이 그의 잘못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위기 4장이 신분에 따른 속죄제의 제물을 구별하고 있다면 레위기 5장 7절 이하는 경제적 형편에 따른 제물의 구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부자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물 보다 더 비싼 제물을 드리거나 더 많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며 가난하다고 해서 제물을 생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준을 따라 자신의 형편에 맞게 속죄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암양과 암염소를 대신해 산 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를 바치게 하셨습니다. 두 마리의 새 중에 하나는 속죄제로 바치고 다른 하나는 번제로 바쳐야했습니다. 비둘기 한 마리에서 나온 피는 제단 곁에 뿌리고 남은 피는 제단 밑에 흘려야 했습니다. 속죄제의 제물이 되는 동물의 죽음은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즉, 속죄제는 하나님께 얼마의 제물을 드리면 죄에 대한 면책권을 얻는 개념이 아니라 죄가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부자라고 해서 자신의 죄를 얼마의 물질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가난한 자라고 해서 부족한 경제력 때문에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범한 사람은 속죄 제물의 희생을 통해 죄에 대한 경각심을 마음에 새겨야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사소한 죄와 심각한 죄의 구별이 무의함을 기억해야했습니다.
중세시대에 교회에서 판매 되었던 면죄부는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통해 주신 교훈을 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속죄제의 교훈을 놓친 채 하나님께 적당한 제물을 드림으로 죄의 형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중세시대의 착각을 오늘날 우리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가 신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믿고 싶은 하나님의 모습과 성품을 우리 마음대로 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고 분명히 선포하셨지만, 헌금을 통해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신앙생활했던 중세시대의 성도들처럼 우리가 믿고 싶은대로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받은 죄의 형벌을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죄를 해결하는 방식이 너무나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회개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가능한 것이기에 결코 가볍거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회개 기도를 드릴 때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11-13)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제사장이 그가 이 중에서 하나를 범하여 얻은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그 나머지는 소제물 같이 제사장에게 돌릴지니라
앞서 속죄제의 제물과 속죄제를 드리는 방식을 소개하며 죄의 대가가 생명인 것을 강조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도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속죄제의 방편으로 고운 가루를 요청하셨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속죄제 제물로 요청하신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는 약 2.1리터의 양입니다. 고운 가루에 기름이나 유향을 섞지 말고 제사장에게 드리면 제사장은 한 손 가득 그것을 취하여 제단 위에서 태우는 방식으로 하나님께 드렸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어졌습니다.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속죄제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심판하시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율법을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비둘기도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한 형편이라도 반드시 죄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비둘기도 마련할 수 없는 그 사람에게는 당장 오늘 끼니를 해결할 고운 가루가 목숨 같은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고 고백했던 사르밧 과부처럼 누군가에게는 고운 가루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고운 가루의 속죄제가 결코 암양의 속죄제 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사소해 보이는 죄라도 간과할 수 없으며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으로 죄를 정당화하거나 죄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 자연스레 죄를 짓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목적삼고 살기 보다 세상의 가치와 욕망을 목적삼고 살았으며 자신의 도덕 기준으로 타인을 정죄하거나 자기의에 빠져 살았고 이웃의 눈을 피해 적당히 죄를 짓거나 죄와 타협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속죄의 기회가 있고 가능성이 있지만, 속죄를 이루기 위해 도덕적인 삶을 살거나 나름의 종교적 열심과 결단만으로는 죄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헌금과 사회 구제 및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을 통해서도 죄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죄제의 제물과 방법을 교훈하셨고 그것을 따라 속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거룩한 삶을 이루어 나갑니다. 하나님의 대용품이나 우리가 만든 하나님을 믿는 종교생활에서 돌이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목적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거룩한 삶을 이루어가길 소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적당히 죄와 타협하고 상황에 따라 죄를 정당화하며 죄의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모습을 깨닫게하시니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죄를 겸손히 고백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실 때 우리의 노력과 결단만으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여 거룩한 삶을 이루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당신이 부지중에 짓는 죄는 무엇이 있습니까? 왜 그 죄를 사소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습니까?
2. 경제적 형편에 따른 속죄제의 제물은 어떻게 구별 됩니까? 죄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속죄제의 교훈을 통해 예수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을 기억할 때 당신의 회개 기도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3. 고운 가루로 드리는 속죄제를 통해 당신의 상황과 형편으로 죄를 타협하거나 죄의 책임을 피하려 했던 모습에서 어떻게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4. 하나님의 대용품이나 당신이 믿고싶은 하나님의 모습을 믿는 것이 아니라 눈을들어 하나님을 목적삼고 거룩한 삶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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