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레위기 8장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거행한 위임식이었다면, 레위기 9장은 위임을 받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처음으로 직무를 수행한 취임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9장은 크게 취임식 제사 준비와 제사 집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제사 집례는 우선 아론이 자신을 위한 취임식 제사가 있고, 다음으로 백성들을 위한 취임식 제사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9장은 백성들을 위한 취임식 제사를 알려주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취임식 제사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백성의 예물로서 속죄제, 번제, 소제, 화목제
15 그가 또 백성의 예물을 드리되 곧 백성을 위한 속죄제의 염소를 가져다가 잡아 전과 같이 죄를 위하여 드리고 16 또 번제물을 드리되 규례대로 드리고 17 또 소제를 드리되 그 중에서 그의 손에 한 움큼을 채워서 아침 번제물에 더하여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18 또 백성을 위하는 화목제물의 수소와 숫양을 잡으매 아론의 아들들이 그 피를 그에게로 가져오니 그가 제단 사방에 뿌리고 19 그들이 또 수소와 숫양의 기름과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콩팥과 간 꺼풀을 아론에게로 가져다가 20 그 기름을 가슴들 위에 놓으매 아론이 그 기름을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21 가슴들과 오른쪽 뒷다리를 그가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드니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았더라
15절의 그는 아론을 가리킵니다. 아론은 위임식 제사 때 모세로부터 배운 대로 취임식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고 배웠습니다. 15절의 ‘전과 같이’, 16절의 ‘규례대로 드리고’, 21절의 ‘모세가 명령한 것과 같았더라’라는 표현을 보면, 아론이 모세에게 배운 대로 잘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제대로 배울 때 제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제대로 배웠더라도 제대로 행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제대로 배우고 행할 수 없습니다. 가정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가르칠 때 바른 가정 교육과 사회 교육의 실행 가능성이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성경 교육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이 배운 대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배운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제대로 배울 때 선을 행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주님의 통로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아론은 위임식 제사에서 모세에게 배운 대로 자신의 취임식 제사를 잘 수행하였습니다.
22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아론은 취임식 마지막 순서에 백성들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였습니다. 오늘날 공적 예배 마지막 순서에 목사의 축도를 연상하게 합니다. 모세는 가르침 대로 제사 집례를 마치고 내려온 아론과 함께 회막에서 나와 백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불이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습니다. 그 불은 모세와 아론이 불붙인 불이 아니었습니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라는 표현으로 보아, 그 불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입니다. 그 불로 번제물과 기름을 살랐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납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얼마나 경이롭습니까? 모세와 아론,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집례를 잘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하였겠습니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7일 동안의 위임식과 8일째 취임식을 마친 후, 앞으로는 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를 받아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쁨이 쭉 이어졌으면 좋았을텐데,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아론의 아들들은 본격적인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납과 아비후가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2절의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는 9장 24절의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얼마 전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름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임을 확인하였는데, 똑같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제물이 아닌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을 삼켰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그 이유를 1절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불’이란 원문을 직역하면, ‘관련이 없는 불’입니다. 일부 번역본 성경에서는 이를 ‘이상한 불’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론의 아들들이 번제단에 있는 불을 향로에 담아 성소 안에 향을 피워 분향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론의 두 아들의 죽음은 배운 대로 제대로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불순종의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를 불로 삼킨 사건을 통해 제사장들과 백성에게 전달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으십니다. 그것은 거룩함입니다. 제사는 근본적으로 속죄를 위함입니다. 이전에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속죄함을 왜 받아야 하겠습니까? 거룩함을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왜 거룩해져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거나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은 거룩해져야 합니다. 3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거룩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이면서 동시에 모세의 조카들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들의 죽음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과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아론에게 위로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습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나를 가까이 하는 자’는 누구를 가리키겠습니까? 이는 일반인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나를 가까이 하는 자’를 원문을 분석하면, ‘제물을 드리러 하나님께 가까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가까이 하는 자’는 제사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제정하실 때, 제사장을 두신 이유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시고자 함입니다. 이는 제사에는 중보자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제사장 없이 어떤 사람도 혼자서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제사는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일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일은 하나님 말씀의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나답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나납과 아비후가 아무리 7일간의 위임식과 다음날 취임식을 통해 자신을 정결케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지라도, 다른 제사장 직무에서 한 번이라도 불순종하였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결과는 죽음이었습니다.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건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인생의 제일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아론은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말씀,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를 듣고 아무런 댓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잠잠하였습니다. 그 말씀에 반론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론은 두 아들의 죽음에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제사장이자 조카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 말씀의 순종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더 이상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세는 나납과 아비후의 시신을 제사장이 아닌 사람에게 처리하도록 했습니다.
4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5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제사장은 비록 자식과 형제일지라도 그들의 시체를 만질 수 없는 규정에 따라, 모세는 사촌 형제들에게 나납과 아비후의 시신을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고 말했습니다. 주목할 대목은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옷을 입은 채라는 것은 그들의 시신이 불에 타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9장 24절의 불과 10장 1절의 불은 같은 단어인데, 앞의 불은 번제물과 기름을 사르는 불이었지만 뒤의 불은 옷조차 태우지 않은 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단에 있는 거룩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임의로 이상한 불, 제단 밖의 불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던 나납과 아비후는 비록 하나님의 불에 의해 삼킨 바 되었지만, 불에 타지 않고 죽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불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불처럼 물질을 태울 수도 있고,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불처럼 물질을 태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제물을 태우므로 제사를 열납하시는 불일 수 있고, 불순종하는 사람을 죽게 하시는 불일 수 있습니다. 좀 달리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불은 죽일 수 있는 불이기도 하지만, 살리는 불과 은혜를 베푸는 불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복음서에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불은 태워 죽이는 죽음의 불이 아니라 살리는 불인 셈입니다. 우리는 나납과 아비후처럼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해서 죽음의 불을 받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고, 나도 살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불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7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그리하면 죽음을 면하리라 그들이 모세의 말대로 하니라
나납과 아비후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나 질병사가 아니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기에 당했던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인이 죽었을 때 유족이 고인을 애도하듯이 슬퍼하지 말라는 모세의 명령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을 애도하게 되면 자칫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슬퍼해야 할 일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 자체로 슬퍼하는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일로 인한 슬픔,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슬픔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론, 그리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각각 자식과 형들의 죽음을 보고도 장례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7절의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은즉 너희는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는 모세의 명령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위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은 부정한 시신을 가까이 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알려준 것입니다. 모세는 더 이상 아론의 가족이 죽어가는 일이 없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감당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임을 잊지 마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 선한 일과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일을 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나답과 아비후가 7일 동안 위임식을 거행하고, 온 회중 앞에서 세신을 하고, 제사장의 옷을 입고, 띠를 띠고, 에봇을 입고, 흉패를 붙이고, 머리에 관을 쓰고, 제사법에 의해 제사를 잘 수행하였더라도 한순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건을 기억하게 하시옵소서. 나납과 아비후처럼 죽어 마땅한 저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을 행함과 사람의 생명을 살리라는 말씀을 저희가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론이 취임식 제사를 잘 집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 아론의 취임식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4. 하나님께서 제사장을 세우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나납과 아비후의 죽음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나타내는 일에 한계성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함을 완벽히 나타낼 수 있는 대제사장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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