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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레위기 10:8-20

레위기 10:8-20 


찬송가 433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아론에게 이르시되(8-11)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아론에게 말씀하실 내용이 있을 때마다 모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레위기에서 아론에게만 말씀하신 대목은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바로 다음에,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아론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은 우연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 비극적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직접 아론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서의 직무가 얼마나 엄중한 것인지를 힘주어 말씀하신다고 봐야 합니다.

(8-9)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회막에 들어갈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죽게 될 것입니다. 이 규례는 제사장 가문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라고 합니다. 이유가 10절, 11절입니다.

(10-11)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제사장들은 단순히 회막 앞을 지키는 문지기가 아니었습니다.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는 일을 위해 존재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 게다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규례를 잘 알도록 가르쳐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이 나답과 아비후 사건 이후에 바로 서술된다는 점에서, 나답과 아비후의 최종 죽음의 원인이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제사장 역할과 관련이 있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드릴 불과 “다른 불”을 구별해야 했던 나답과 아비후의 판단이 흐려졌던 원인이 포도주와 독주 때문일 가능성입니다. 구약에서 포도주와 독주는 늘 짝처럼 함께 사용됩니다. 게다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어드리는 전제에 포도주와 독주를 사용합니다. 신명기 14장에서는 그해 수확물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모여서 중앙성소에서 잔치를 벌일 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잠언 20장 1절에서 포도주와 독주는 사람을 미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했고, 백성을 공의로 다스려야 하는 왕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언급되기도 합니다(잠31:4-9). 일정 기간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던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광야 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는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사람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본연의 일마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바른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에,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때, 하나님 앞에서 성과 속, 정과 부정을 분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했던 때에는 엄정하게 금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술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권한 바 있습니다.
술에 취해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도 없고,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포도주와 독주를 삼가라는 말은, 그 자구대로 지켜야 하지만 동시에 제사장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드는 그 어떤 것들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중에 남북왕국으로 갈라진 유다에서, 그릇된 성전 신학에 빠져 하나님의 경고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거짓선지자 노릇했던 많은 제사장들이 바로 포도주와 독주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번영과 웅장함, 그 기름짐에 취해서 제사장으로서 감당해야 할 본연의 임무를 잊어버렸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그때 선지자가 북이스라엘을 고발할 때 술 취했다고 고발한 바 있습니다(사28: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감당하려면, 바른 과정을 통해 바른 결과를 얻기까지 우리는 포도주와 독주로 표상되는 우리의 분별력을 어지럽히는 요소로부터 독립하여 정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수많은 변수들을 과감하게 물리치고, 단순하면서도 명료하게 삶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일이라고 여긴다면, 그 일을 방해할 만한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일을 행하기 위해 분별력과 지혜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제사장이 거룩한 곳에서 먹을 제물(12-15)
12절부터 15절까지는 화제물 중에서 제사장들에게 주어지는 몫에 대한 규례입니다.

(12-13) 모세가 아론과 그 남은 아들 엘르아살에게와 이다말에게 이르되 여호와께 드린 화제물 중 소제의 남은 것은 지극히 거룩하니 너희는 그것을 취하여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에서 먹되 이는 여호와의 화제물 중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인즉 너희는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 내가 명령을 받았느니라

제사장들이 지켜야 할 규례를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답과 아비후 사건 이후에도 이전처럼 계속해서 제사와 관련된 규례를 말씀하신다는 것은, 이 규례들을 잘 지키는 것이 제사장들의 생명 유지와 직결되어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12절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아론 뿐만 아니라 아론의 아들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도 함께 말씀하십니다. 화제물 중에서 남은 소제물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므로, 누룩을 넣지 말고 제단 곁, 곧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했습니다.

(14-15) 흔든 가슴과 들어올린 뒷다리는 너와 네 자녀가 너와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화목제물 중에서 네 소득과 네 아들들의 소득으로 주신 것임이니라 그 들어올린 뒷다리와 흔든 가슴을 화제물의 기름과 함께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너와 네 자손의 영원한 소득이니라

제물 중에서도 요제로 드린 가슴 부분과 거제로 드린 오른쪽 뒷다리는 정결한 곳에서 제사장과 그 가족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언급된 내용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습니다. 왜입니까? 제사를 집례할 때,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대충 안다고 생각하여 경솔하게 여겼다가는 남은 자들도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실수하지 않으려면, 간단해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겨지더라도 실수가 없도록 그 마음에 굳게 새겨서 그 말씀대로 집례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으로 위임 받은 첫날에 두 제사장이 죽어나간 상황에서, 지난번에 들었지만 또 다시 모세를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레위기 10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지키는 길만이 생명을 잇는 유일한 길입니다.
제사장들은 특히나 율법의 감독자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원리와 실제를 말씀을 지킴으로 눈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말씀을 지키는 삶을 보여주어야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도 말씀을 지키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보여주는 삶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의 영 단번의 대속의 희생으로 제사를 드리지도 않고, 말씀을 어겼다고 당장 그 자리에서 죽는 세상을 사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 우리를 죽음이 아닌 참된 삶으로 인도한다는 말씀의 핵심을 이해하고,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며 끊임없이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주시는 말씀을 품고 살았던 지난날과 오늘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비추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에 걸맞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론 계열 제사장들에게 먹을 것과 먹을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지정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를 의지하여 오늘도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하루를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미 불살랐는지라(16-20)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서 모세가 속죄제 염소를 찾았는데, 이미 불태워버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6-18)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이르되 이 속죄제물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죄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그 피는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는 것이었으니 그 제물은 너희가 내가 명령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했을 것이니라

모세가 화가 나서 제사장을 야단칩니다. 백성들이 드린 속죄 제물은 내장과 그 기름만 제단에 태우고 나머지는 제사장들이 먹게 되어 있었는데, 아론과 아들들은 그 제물 전체를 태워버렸기 때문입니다. 규례를 이야기하고, 또 일러주었는데도 그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엘르아살과 이다말도 형제들처럼 범죄한 것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제사장들이 속죄 제물을 먹는 것 또한 제사의 일부임을 밝힙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속죄 제물을 먹는 일과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일이 어떻게 연관될 수 있겠습니까? 제사장들은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음으로써 그들의 죄를 대신 지게 되지만 그것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9-20)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이에 아론은 왜 속죄 제물을 먹지 못했는가에 대해 설명합니다. 두 아들이 범죄하여 죽은 이 마당에, 제사장의 몫이라고 주어졌다고 해서 태연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 아론의 대답입니다. 이날만큼은 제사장에게 허락된 것조차 온전히 불태워 하나님께 드려서 백성 뿐 아니라 자신들의 죄와 허물까지도 용서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랬다고 해명한 것입니다. 아론과 남은 두 아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족의 죽음을 채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계속해서 제사드려야 했던 그 슬픈 마음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도 아론의 마음에 대해 이해하셨으므로,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으셨습니다. 법도와 규례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친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이 중심을 잃으면, 우리는 문자에 갇혀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못하게 됩니다.
아론과 남은 두 아들은 이번 일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일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철저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배의 중심은 언제나 사람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규례들이 사람 편에서 보기에 까다로워 보이고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꺼이 따라야 합니다. 오늘도 눈을 들어 우리의 도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복된 한 날 보내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별하고,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할 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포도주와 독주로 표상되는,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만드는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변수들을 과감하게 물리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했던 제사장의 역할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나답과 아비후는 포도주와 독주로 분별력을 잃어버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으로 보입니다. 나에게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 포도주와 독주는 무엇인가요?
2. 이미 다 가르쳐준 제사장의 분깃과 그 먹는 방법을 다시 일러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3. 제사장에게 허락된 속죄 제물을 먹는 것이 백성들의 속죄와 어떤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까? (17)
4. 말씀대로 행하지 않았던 아론과 두 아들에게 더 이상의 심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보다 법이 우선하지 않는다는 이 정신을 잃으면 공동체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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