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66장 ‘주의 피로 이룬 샘물’
앞선 단락에서 부정한 짐승과 정결한 짐승에 대해 설명했다면,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만일 사람이 먹지는 않았지만 실수로 부정한 것을 만질 경우 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먼저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 그리고 땅에 기어 다니는 짐승들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 또한 정결한 짐승의 주검을 만졌을 경우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음식에 대한 정결 규례의 목적을 정리하여 설명합니다.
짐승의 주검에 대한 규례(24-40)
(24-25) 이런 것은 너희를 부정하게 하나니 누구든지 이것들의 주검을 만지면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모든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먹을 수 있는 짐승들을 제외하고 부정한 짐승들은 그 사체를 만지는 것이 부정하다고 규정합니다. 누구든지 정한 방법에 따라 짐승을 도살할 경우, 예를 들어 소와 양과 염소 등 제사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는 짐승의 주검을 만질 경우 부정하게 됩니다. 또한 저녁까지 부정하다는 것은 그날 저녁 곧 사체를 만진 그 날 저녁을 뜻합니다. 앞선 5장 2절에서 사체를 만진 후 모르고 있다가 자기가 만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경우에는 속죄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만진 사실을 저녁이 되기까지 계속 의식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며 이는 새날이 됨과 동시에 부정이 없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짐승의 사체를 물건 나르듯이 옮기면서 만졌을 경우에도 부정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에는 지나치다가 우연히 주검을 만진 자에 비해 부정함이 더 크기 때문에 그의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제사까지는 드리지 않아도 되기에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죄와 잘못에 대해 돌이키고 회개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 옷을 빨아 부정함을 면하게 하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미워하시지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속죄제, 속건제이고, 또 그 옷을 빠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우리는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사함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느냐입니다. 죄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주님의 보혈로 사함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26-28) 굽이 갈라진 모든 짐승 중에 쪽발이 아닌 것이나 새김질 아니하는 것의 주검은 다 네게 부정하니 만지는 자는 부정할 것이요 네 발로 다니는 모든 짐승 중 발바닥으로 다니는 것은 다 네게 부정하니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는 그 옷을 빨지니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그것들이 네게 부정하니라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서 쪽발이 아닌 것은 앞선 4절의 낙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발바닥으로 다니는 짐승은 굽으로 다니는 동물과 대조되는 개나 고양이, 사자, 곰 등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부정한 짐승의 주검을 만진 자는 저녁까지 부정하며, 주검을 손으로 들고 옮긴 자는 그 옷을 빨아야 했습니다.
29절부터 31절까지는 땅에 기는 길짐승의 주검을 만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32절에서는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그릇이나 의복이나 자루 등에 떨어지게 될 경우 역시 그 사람이 부정하게 됨을 설명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도구나 기구에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접촉되었을 때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물에 저녁까지 담가두면 이후 부정이 사라지게 됩니다.
주검이 물건 위에 떨어져도 부정하게 되어 그것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36절에서는 반면 샘물이나 물이 고인 웅덩이에 떨어지면 부정하게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데 아마도 흐르는 물로 인해 물이 계속 교체되었기 때문이거나 물 자체가 정결하게 하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37절, 38절에서는 파종할 종자 씨에 떨어질 경우에는 부정하지 않았지만, 종자에 물이 묻은 경우에 그것에 떨어지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물이 묻음으로 생명 활동이 시작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어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죽은 경우에 대해 설명합니다.
(39-40) 너희가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그 주검을 옮기는 자도 그의 옷을 빨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먹을 만한 짐승이 죽은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용된 짐승 곧 소, 양, 염소 중에서 그 짐승들이 자연사를 한 경우를 뜻합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 죽인 경우에는 그것을 먹을 수 있었지만, 자연사한 짐승을 접촉한 것은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죽음 자체가 부정한 것과 연결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주검 곧 사체를 만지는 경우에만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고 혐오하라고 하신 짐승들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는 부정을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고 모든 동물을 본래 거룩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생명이 끊어진 죽음으로 인해 부정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죽음이 생명에 반하는 것이고 죽음 자체가 창조의 목적을 파괴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신약 시대에 와서도 역사적으로 인간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어 왔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가정을 더럽히는 것들, 직장과 이 사회를 더럽히는 것들은 무엇인지 묵상해 보아야겠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 또한 진리에서 벗어나는 말과 행동들, 누군가를 죽이고 파괴하는 모든 것들은 반기독교적인 것임을 봅니다. 기독교의 정신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위한 일에 교회는 힘써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역이 무엇인지 늘 점검하고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음식 정결법의 결론(41-47)
(41-43) 땅에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은 가증한즉 먹지 못할지니 곧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 중에 배로 밀어 다니는 것이나 네 발로 걷는 것이나 여러 발을 가진 것이라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것들은 가증함이니라 너희는 기는 바 기어다니는 것 때문에 자기를 가증하게 되게 하지 말며 또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더럽혀 부정하게 되게 하지 말라
41절에서 43절은 앞에서 먹지말라고 구분했던 짐승에 이어서 땅에 기는 길짐승 곧 곤충을 비롯한 파충류와 설치류 등의 짐승을 먹지도 말고 접촉하지도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왜 이렇게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분하라고 하셨겠습니까? 44절을 새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나는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몸을 구별하여 바쳐서,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에 우리가 참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말씀에는 이 생명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포함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 짐승들과 곤충들을 부정하게 만드심으로써 이 생물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을 금하여 오히려 그 개체와 생명을 보존하려 하시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제한된 짐승들 중에 꼭 필요한 만큼만 먹을 것으로 취하되, 나머지 짐승들과 곤충들은 끊임없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어 나가도록 하라는 취지로 보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어서 나오는 부정한 짐승에 대한 말씀의 결론을 통해 그 의미를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45-47)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이는 짐승과 새와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땅에 기는 모든 길짐승에 대한 규례니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세상의 생물들 중에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분별하라는 말씀은 창세기 1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처음 3일 동안 구분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빛과 어둠, 하늘의 물과 땅의 물, 바다와 육지를 구분하셨습니다. 이러한 창조 섭리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분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는 것처럼 선과 악을, 옮음과 그름을,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결한 것은 생명, 건강 그리고 거룩에 부합하는 반면, 부정한 것은 죽음, 병 그리고 속된 것에 부합합니다. 매일의 정결 의식 준수는 이스라엘의 사회적이고 영적인 발전에서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정결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의 유대를 강화시켰습니다. 이것을 충실히 준행하면 모든 신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양심 속에 하나님께 대한 복종을 깊이 심어줌으로써 그 민족의 영적인 발전을 촉진시키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정결법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일정한 표준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헌신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때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음식에 대한 규정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분명합니다. 일상에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분하게 하는 것이 이 율법의 목적입니다. 성결한 삶은 주의 백성이 예배 처소를 찾았을 때, 혹은 종교적인 의식에 참여할 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에서 매일 요구됩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비윤리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들을 구분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보다 근원적으로,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부정하게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정결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먼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별되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구별된 삶을 의미합니다. 또한 로마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위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에게 정결의식을 통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신 의미를 묵상하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죽음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쓰며, 우리 자신을 주님 닮은 거룩한 모습으로 드려질 수 있도록 매 순간 저희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거룩한 삶을 위해 더욱 더 눈을 들어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던 주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시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긴 호흡, 깊은 호흡의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저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우리에게도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가정과 직장에서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묵상해 봅시다.
2. 하나님은 부정하게 되었을 때 그 옷을 빨아서 정결하게 되는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자백하며 정결하게 되어야 할 죄는 무엇입니까?
3. 그리스도인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앞장 서서 힘써야 할 생명 살리는 일은 무엇일지 묵상해 봅시다.
4.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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