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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1:13-24

로마서 11:13-24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사도 바울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이방인 전도를 감당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생적으로 세워진 로마 교회의 성도들에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마 교회는 다수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소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각각 적절한 신앙 교육을 하길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 율법을 지킴으로는 의롭게 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며 죄인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사함을 받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은혜의 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음에 있어서 율법의 준수나 인간의 어떤 행위나 공로는 전혀 관여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택함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유한한 인간은 알 수 없습니다. 택함과 구원은 인간의 이성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택함과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9:14中)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롬9:15中)고 인용합니다. 또한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있음을 말함으로(롬9:21中)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택함과 구원에 있어서 나의 의로움은 털끝만큼도 개입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는 결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함에도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칭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외면하고 ‘자기 의(義)’를 내세움으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롬10:3).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복음 거부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옮겨졌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구원이 옮겨간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모르고 ‘자기 의(義)’를 내세우며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남은 유대인들이 구원받는 이방인들을 보고 시기하게 함으로 남은 유대인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유대인들의 실패가 이방인들의 구원의 풍성함의 결과를 가져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불순종한 유대인들을 사랑하시며 은혜 베푸시길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로마 교회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실패를 보고 자만하지 말며,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답게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13-16절)

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너희’는 로마 교회에 다수를 차지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권면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주님의 도를 전하는 사도임을 밝히며 이를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본국에서 사역하지 않고 먼 이국땅을 순회하며 전도하는 사역이 편할 리가 없었겠지만, 바울은 이를 영광으로 여겼듯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어떤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명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이지만 자신이 맡은 임무 중 중요한 하나로 유대인들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가 있음을 14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14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내 골육’은 바울과 같은 혈통을 가진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의 역할 중 하나가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유발하여 그들 중 얼마를 구원하려 함입니다. ‘그들 중에서 얼마’는 어제 언급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남겨둔 유대인들입니다.

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그들을 버리는 것’이란 하나님께서 복음을 거부한 유대인들을 버린 것을 뜻하며, 이를 통해 ‘세상의 화목’, 즉 이방인들과의 화목을 가져왔다는 뜻입니다. ‘그 받아들이는 것’이란 이스라엘의 남은 유대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하며,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란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처럼 남은 유대인들이 살아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루어질 때 구원의 최종단계인 성도의 부활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전적인 멸망과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오해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을 따르다가 ‘자기 의(義)’에 빠져 주님의 길에서 탈선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유대인들처럼 어려움을 겪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을 보며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주님의 길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자만하지 않고 이런 삶을 살아가도록 곡식 가루와 떡덩이, 뿌리와 가지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는 이스라엘의 믿음의 족장을 가리키며, ‘떡덩이’와 ‘가지’는 믿음의 족장의 후손인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남아있는 유대인들의 뿌리가 믿음의 족장이므로 남아있는 유대인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뿌리는 누구이겠습니까? 바울은 우리를 포함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뿌리가 유대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17-24절)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돌감람나무’는 야생에서 자라는 감람나무인데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비유한 것이며, ‘참감람나무’는 유대인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참감람나무 중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꺾였으며,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인 가지가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기존에 붙어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가지는 죽고 말 듯이 믿음의 뿌리인 유대인들이 없었다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보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구원의 은총을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의 실패를 비난하지 말고, 유대인을 통해 뿌리의 진액을 공급받게 되었음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9절이 말씀합니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먼저 믿은 사람, 교회에 먼저 들어온 사람, 먼저 직분이나 호칭을 받은 사람이 나중 된 사람에게 자랑할 것이 없고 나중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먼저 믿다가 곁길로 벗어난 사람을 보고 자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주님의 믿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구원받은 자들이 겸손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참감람나무의 꺾여진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높은 마음,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다음 구절에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우리 역시 높은 마음을 버리고 항상 구원에 대한 감사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원 가지인 유대인들을 아끼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들처럼 교만하게 된다면 우리 역시 꺾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인자하시지만, 교만한 자에게는 영원한 인자를 베푸시지 않으시고 준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안다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항상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을 지키며 살아감입니다.

23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그들은 참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은 이중부정으로서 ‘믿는데 머무르면’입니다. 참감람나무에서 꺾여져 나간 유대인들이라도 믿음 안에 거하면 다시 접붙임을 받는 회복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나간 유대인들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가지를 꺾으시고 누구든지 믿음 안에 거하면 그 가지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여 주십니다.

24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믿음만이 접붙임, 회복의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23절과 24절의 말씀은, 22절 말미에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는 말씀처럼 접붙임을 받은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높은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예전에 찍혀 떨어져 나간 유대인처럼 떨어져 나갈 수 있고 그 자리에 원 가지가 다시 접붙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 역시 이 말씀에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역사를 배우면서 불순종한 유대인들을 향해 얼마나 그들을 비방하며 자신을 자랑하였습니까? 비단 유대인들만이 아닙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이탈자, 무교회주의자, 방황자, 탕자 등의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높은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살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이런 마음을 버리고 항상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도록 충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산하시는 날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공로나 선행이나 율법의 준수와 무관하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인 저희를 의롭게 해 주심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주님의 몸과 연합하였다고 자만하지 않도록 저희의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참감람나무에 접붙인 가지라도 스스로 높은 마음을 품을 때 찍혀 나갈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하시옵고, 로마 교회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교만이 저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그러기 위해서 늘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며, 충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도 바울이 이방인 전도로 유대인들의 시기심을 유발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거룩하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3.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가 원 가지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4.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은 돌감람나무 가지인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5.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내가 교만하게 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힘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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