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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0:14-21

로마서 10:14-21
찬송가 :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복음의 순종(14-21절)
14-15절에서 바울은 복음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14-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이를 쉽게 설명하면 ‘믿는 자를 부르시고, 듣게 하시고, 전파하게 하시고, 보내심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를 믿는 자들이 맡은 역할입니다. 바울은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라는 이사야 52:7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청년시절, 다니던 교회 대학부에서 한 대학의 캠퍼스로 전도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3-4명씩 팀을 나눠 흩어졌습니다. 저와 다른 청년과 담당 목사님이 한 팀이었는데, 그 청년이 한 학생에게 의욕적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만 그 청년의 말이 꼬여 제대로 복음을 전하지 못했고, 마무리가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실망한 청년에게 담당 목사님이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아무개야,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우리의 ‘입’이 아니라 우리의 ‘발’이다. 복음을 유창하고 설득력 있게 전하는 언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저 순종하여 영혼들에게 다가가는 ‘발’을 아름답게 보신다. 전도는 하다보면 진보가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말아라”고 말하며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격려되는 말인지요? 옆에서 듣고 있던 저에게도 적지 않는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영혼들에게 말을 걸고 다가서는 모습, 그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의 이름 자체가 아름답고, 주의 이름으로 전하는 복음이 생명을 낳게 하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본문의 발걸음이란, 우리의 모든 언행을 의미하기에,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보내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의 일은 보내신 자의 뜻을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 전하도록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말과 행동으로 전해야 합니다. 결코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전달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며, 오직 보내신 분이신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셨고 그렇게 사셨습니다.

즉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를 받은 메신저입니다. 메신저의 삶은 무엇일까요? 이는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드러내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메신저가 메시지를 악용할 때,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메신저가 메시지로 분을 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의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이익을 취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합니다. 메신저가 메시지를 가지고 살 생각보다는, 메신저가 메시지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얻을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뒤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에, 선지자와 제사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꿈과 환상, 기적과 계시, 직접적인 음성과 대면 등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그들에게 수없이 많이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고, 믿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16절입니다.

(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바울은 이사야 53:1을 인용하며, 그들이 실패한 것은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순종의 원어적 의미는 <권위자의 명령을 겸손히 청종한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또 그 말씀에 합당하게 순종으로 반응하고 있는지, 영적으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7-18)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바울은 17절에 “그러므로”라는 결론적 접속사를 사용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즉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이 <경청>이며, 그만큼 중요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지만, 상담가들은 말하길 <경청>이 소멸되는 순간 시작된다고 합니다. 말을 잘하기 위한 기술을 알려주는 스피치 학원을 등록하면,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경청>입니다. 솔로몬도 열왕기상 3장에서 하나님께 구한 것은, 다름 아닌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그 이전에 신앙인으로서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경청>이며 그것이 지혜인 것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또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먼저 말씀하시기 보다는, 가시는 곳마다 모든 사람들의 말에 먼저 <경청>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른 경청을 위한 조건이 4가지 있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공감, 인정, 말의 절제, 이해>라고 합니다. 경청에서 ‘들을 청(聽)’의 한자를 분석하니, ‘임금 왕, 귀 이, 열 십, 눈 목, 날 일, 마음 심',이 있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왕이 귀를 열어 듣는 것처럼, 열 개의 눈과 한 마음으로 그 사람의 말을 최대한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경청>이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다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온몸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또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머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의 들음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 생성됩니다. 그 믿는다는 것은 내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주님께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완전한 나라에 거하기 위해 내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또한 믿는다는 것은, 따르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주님이 따라오시도록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에 내가 따라 살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질 때 곤고한 삶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들음을 통한 믿음의 삶인 것입니다.

(19-21)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19-21절은 '신명기 32:21, 이사야 65:1, 이사야 65:2'를 근거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이야기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에 믿음이 생기지 않았고, 불순종의 결과, 복음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불순종이 아닌 순종의 삶을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른 순종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온 몸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른 순종은, 나의 유익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슬러’는 ‘반항하고 반대하여 말하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나에 대해 반대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데, 그보다 더 나아가 직접적인 반항하고 반대하는 말을 표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끝까지 품으시고, 기다리시고 인내하셨습니다.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노라” 이 말은 마치 손에 닿지 않는 물건을 잡기 위해 몸을 최대한 기울여, 손을 뻗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들의 불순종과 거역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긍휼과 오래 참으심으로, 자비를 베푸셨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거슬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렀던 적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번 생각해봅시오. 하나님을 거슬렀던 죄 많은 삶임에도 불구하고 “종일 내 손을 (너에게) 벌렸노라”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우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여러 므나를 허락하신 주님은, 우리가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손을 벌려주십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힘겨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은 그 손을 종일 벌리십니다. 내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시기 위해, 주님은 종일 그 손을 벌리십니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은 종일 손을 벌려 우리를 안아주시고, 이 위기에서 건져내어 주실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 저희를 주님의 이름 안에 생명으로 부르셔서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귀한 은혜를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고, 그 부르심과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지 않고 거스르고, 제 멋대로 살아왔던 인생이 아니었는지를 반성해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부르심과 말씀을 온 몸으로 응답하며,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는 신앙이 되게 하시옵소서. 힘겨운 문제들 가운데서도 종일 손을 벌려 저희를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시는 그 은혜에 감복하여 살아가는 오늘 하루와 대림절 기간이 되길 원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내가 찾아가야 할 복음의 발걸음인 대상은 누구입니까?
2.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기 위한 신앙의 노력이 어때야 되는지 나눠봅시다.
3. 나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 불순종한 상황이나 거슬렀던 사건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4. 힘겨운 삶 속에서 종일 손을 벌려 나를 붙잡으시는 주님을 경험했다면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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