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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로마서(새벽)

로마서 10:1-13

로마서 10:1-13
찬송가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상당한 분량을 지닌 서신서를 읽다보면 종종 수신자가 누구였는지를 잊게 될 때가 있습니다. 앞서 명시된 수신자는 잊고, 기록된 내용에 따라 유대인이나 헬라인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신서를 살펴봄에 있어, 결코 수신자가 누구인지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의 수신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롬 1:7)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장 먼저 그 수신자들을 향해 형제들이라며 친근하게 부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처럼 서신의 중간에 표현을 달리해서 수신자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자칫 분산된 또는 분산될 수 있는 수신자들의 집중(환기, 전환)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수신자들의 시선을 모은 후, 자신의 속마음을 표했습니다.

바울의 마음(1-10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가장 먼저 바울은 형제로 여기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마음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하나님께 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또렷이 밝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습니다. 여기서 구원(σωτηρία/소테리아)은 율법의 준행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박해했던 심지어 살해하려 했던, 그리고 살해하려는 동족들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구원을 얻기를 마음으로 소원하고, 실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런 그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형상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마음과는 달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너무도 멀어져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바울은 이어질 자신의 말을‘증언’이라는 법정 용어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기술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열성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열심이 올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그는 그릇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열심에 대한 구체적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앞서 바울은 그들이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들이 따르지 않던 올바른 지식의 실체는‘하나님의 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임으로서 그 안에서 하나님께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의는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을 의미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습니다. 특히 이사야 53장은 하나님의 의가 어린 양과 같이 오실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이 의에 대해서 모른다고 기록했는데, 여기서‘모르고’로 번역된 원어 ἀγνοοῦντες아그노운테스는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을 언급할 뿐만 아니라, 알기를 원치 아니하여 모르는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해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는 불순종했던 것이었습니다.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님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자신의 의가 아닌 모든 믿는 사람들이 의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믿음을 통한 의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율법을 모두 성취하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믿는 사람을 그 대상으로 하기에 족했습니다. 결코 특정 민족이나 신분, 계층 등에 차별이나 예외가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따스한 시선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형태의 선민의식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제 바울은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비교하며, 무엇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5)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바울은 율법의 의를 설명하면서 레위기의 말씀(레 18:5)을 인용했습니다.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도 이 율법의 의를 현실에서 온전히 행할 수 없다는 것에 그 문제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은, 그의 삶을 통해 율법을 모두 준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많은 율법 중 하나에 거치면 모두를 범한 자가 되기에, 율법의 의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곧장 믿음의 의에 대해 전했습니다.

(6-8)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바울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신 30:12-14)을 인용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의인화하여, 그 의가 말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시도록 하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하늘에 올라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음부에서 썩지 않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이미 부활시키셨기에, 음부(:죽은 자들의 세계)로 내려갈 필요도 없음을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 구원을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이미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나아가 말씀이 늘 그들의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구원 받는 이의 특징을 입과 마음으로 구분해 설명했습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먼저 바울은 구원을 받는 이는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한다는 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 ‘시인하며’ 로 번역된 원어 ὁμολογήσῃς호몰로게세스는 법적 용어로서 서약이나 약속, 고백 등에 사용된 어휘였습니다. 70인역은 이를 ‘서원하다’는 의미와 ‘맹세하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의 역어로 사용했습니다. 바울은 구원받은 사람은 공적으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한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당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들에게 이 고백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숭배에 심취해있던 로마인들의 틈바구니에서, 로마 황제가 아닌 다른 이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오늘 우리의 신앙고백은 여전히 유효할지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어 바울은 구원을 받는 이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믿는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된 믿음의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앞선 신앙고백의 근거가 되어 줍니다. 바울은 이를 보다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9절의 내용을 앞뒤 순서를 바꾸어 요약한 이 문장은 로마서의 전체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자체로 결코 율법의 행위나 혈통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반증합니다. 바울은 이제 차별이 없는 은혜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차별 없는 은혜(11-13)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이는 구약의 말씀(사 28:16)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9장에서는 이 말씀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인용된 부분의 하반절만 떼어, 11절과 함께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롬 9:33 하) ...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1)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바울은 9장과 달리 11절에서는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넘어, 이것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됨을 강조했습니다. 계속해서 이를 중심으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갑니다.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이방인)을 명시하며, 주님께는 혈통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는 배타적 선민의식으로 가득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목의 가시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를 모를 리 없었지만, 바울은 그들의 왜곡된 신념을 바로 잡는 것과 진리를 전하는 일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며,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다는 것은 베드로 역시 교훈한 내용이었습니다.

(행 10:34-35)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끝으로 바울은 구원의 보편성을 한마디로 정리했습니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 역시 구약 성경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요엘 2:32 상)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당시에나 지금이나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여기서 ‘부른다’는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의미하며, 앞서 살펴 본 ‘시인하다’라는 용어와 그 의미를 같이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구원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하다는 사실입니다.

서두에 로마서의 수신자들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임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은 왜 이들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예수님을 모든 사람의 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을 적어 보냈을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생각을 돕기 위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로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하고, 그 사랑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로마라는 므나를 맡긴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물질이라는 므나, 가족과 일터라는 므나, 재능과 섬김이라는 므나 등 여러 모양으로 존재하는 므나를 맡기셨습니다. 므나가 맡겨진 자로서 이에 충성하고 있는지 함께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더욱이 오늘 말씀이 허락된 므나에 충성하는 일에 있어 촉매가 되면 좋겠습니다.

대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 오신 것과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은 분명합니다. 맡겨진 므나(가정과 일터)에 그 므나(재능과 섬김)를 통해,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믿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기도
힘이신 하나님. 자신을 박해하고 죽이려는 동족을 외면하거나 저주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의 영혼을 마음으로 품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바울에 모습을 살펴보며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믿는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되새겨 봅니다. 이 은혜에 힘입어 구원을 얻은 우리의 마음에 자리한 것은 무엇인지 조명하여 주십시오.
주님.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감염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 방역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이웃들, 예상치 못한 경제적 어려움에 신음하는 이웃들. 이들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저희들이 될 수 있기 소망합니다.
대림절 둘째 주간. 맡기신 므나들을 헤아리며, 여러 모양의 므나들에 있어 충성할 것을 결단합니다.
저희의 오늘을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바울이 원하는 바와 내가 원하는 바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2. 올바른 지식에 기인한 열심을 내고 있는지 돌아 볼 때,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있는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4. 예수님을 주님으로 많은 이들 앞에서 고백해 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어떠셨습니까?
5. 저희 삶에 허락된 므나를 통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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