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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레위기 19:1-18

 레위기 19:1-18 


찬송가 216장 ‘성자의 귀한 몸’

일상생활 속의 거룩(1-8절)
레위기 18-20장은 하나님의 백성의 윤리적 기준, 즉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18장의 마지막 절의 마지막 부분이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입니다. 그리고 19장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또는 “나는 여호와이니라”가 15번이나 나옵니다. 그래서 18장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윤리적으로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서 19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은 일상에서도 거룩한(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학생다워라”, “의사다워라”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이미 학생이고, 의사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아닌 사람에게 학생다우라고 말할 수 없고, 의사가 아닌 사람에게 의사다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이미 거룩한(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 중, 제5계명과 4계명에 상응하는 명령입니다.
십계명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경외하라’라고 말씀합니다. ‘공경하다’는 ‘무겁게 여기다’의 의미인데, 그 무거움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부모를 경외를 경외하고, 부모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신의 모든 삶과 모든 시간이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진다는 것(구별된다는 것)은 일상의 삶에 신실한 것입니다.

(4)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의 제1계명과 2계명에 상응하는 명령입니다.
고대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사람들이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해서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이유는 모두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자신이나 가족이든, 부귀영화든, 건강이든, 입신양명이든, 인간관계든 그 무엇이든지, 그것을 우상으로 삼는 것은 오직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신상(우상)들을 만들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희를 위하여_우리를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라는 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우상’을 만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5-8)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셋째 날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힘으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리니 그가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화목제물을 먹는 문제는 7:15-18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습니다.
화목제는 일종의 잔치 제사입니다. 잔치의 큰 특징 중의 하나는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제물 드림을 통해서 드렸습니다. 제물 중에서 번제물은 모두 태워서 드렸습니다. 그래서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소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은 하나님 앞에서 태워서 드리는 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물은 기름과 피는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앞 가슴살, 오른쪽 뒷다릿살을 주고, 나머지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화목제에는 그냥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제’, 어떤 서원이 있어서 드리는 ‘서원제’, 자원해서 드리는 ‘자원제(낙헌제)’ 등이 있었습니다. ‘감사제’로 드리는 제물은 당일에 다 먹어야 했고, ‘서원제’와 ‘자원제(낙헌제)’는 그다음 날까지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셋째 날에도 먹으면 드린 화목제는 무효가 되었습니다.
화목제의 제물은 흠 없는 소나, 양이었습니다. 만약 화목제물을 소로 드렸다면, 제사장분을 빼고도 약 300kg(500근) 정도 남는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양이면, 최소한 1,000명이 먹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이틀 만에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해가 떨어지고 나면 다음 날이 됩니다. 만약 오후 2시쯤에 제사를 드렸다면, 해가 떨어지기 직전일 것입니다. 그러면 만 하루 만에 다 먹어야 합니다.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이 먹어도 다 먹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웃과도 나누어 먹고, 잘 모르는 사람과도 나누어 먹고, 심지어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과도 나누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누어 먹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회생활 속의 거룩(9-18절)
9-18절에서는 사회생활 속의 거룩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곡식을 추수할 때 땅에 떨어진 알갱이는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추수하는 사람이 최대한 조심해서 땅에 알갱이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할까 봐 아예 밭모퉁이는 추수하지 않고 남겨두도록 했습니다. 그것은 추수하는 일꾼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땅이 없는 고아와 과부를 비롯한 가난한 사람들과 이방인(거류민, 나그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와서 보아스의 밭에서 곡식을 주웠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게(구별되게) 사는 것은 자신의 수입 중에는 이웃을 위한 몫도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시는 것입니다.

(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포도 농사에서 수확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달 첫째 주일을 ‘나눔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나눔주일의 의미는 내가 여유가 있기 때문에 이웃을 돕기 위해서 여분의 새 물품을 가져온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개인이 가져오는 쌀 한 봉지, 라면 한 봉지, 기름 한 병, 통조림 한 통 등은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 전체의 필요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에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먹거리를 구입한다는 것은 내 마음과 삶에 이웃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구입한 먹거리가 집 안 한쪽이나 자동차 안에 있는 것을 자녀나 가족이 보는 것은, 삶에 이웃을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수백 마디의 말로 교육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나눔주일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가져온 물건을 받는 사람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풍성한 의미를 줍니다.

(11-12) 너희는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은 상대가 가진 것을 자신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갖게 되는 것을 바른 절차, 정당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바르지 않은 것이고, 틀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누려야 하는 것을 누리지 못하기도 하고, 그 비용을 대신 감당하기도 합니다. ‘속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마땅히 정직해야 할 상황에서 거짓되게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짓말하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약속을 깨뜨리거나 상대를 속이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맹세하는 자신보다 더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존재의 이름으로 맹세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서 상대를 속이거나 거짓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멸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은 속이거나 거짓을 위한 맹세로 인하여 결코 더럽게 사용될 수 없는 이름인 것을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13)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이 말씀은 힘이 있는 사람이 그 힘으로 이웃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더 많은 것을 취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품꾼에게 주어야 할 삯을 주인이 아침까지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품꾼은 삯을 받지 못하면 밤새 그 가족들이 굶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거룩한(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다른 사람이 가진 장애나 선천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인해 상대를 경멸하거나 헐뜯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거룩한 백성의 품격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 역시 나와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법은 유전무죄나 무전유죄도 아니고, 유전유죄나 무전무죄도 아니며, 공평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야 법이 법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공평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6)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돌아다니지 않고서도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바르지 않는 일이고,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것은 더 바르지 않은 일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으십니다.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은 형제자매를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일 때도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라고 증거합니다. 이미 그 마음에서 극도의 증오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람은 ‘심(心)보를 바르게 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바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웃의 삶도 바르게 인도한다고 하십니다.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를 스스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바르지 않는 것은, 인간의 분노는 100%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서도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르게 정리해 주실 것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맡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또한 원수갚음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를 바르게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러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 본받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심, 무소부재하심, 영원하심 등은 우리가 본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하심, 의로우심, 거룩하심 등은 본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사랑하라’, ‘의를 행하라’,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오늘 하루도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서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그것이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진리의 통로로 사는 것입니다.

기 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 사람들이나 가나안 땅 사람들과는 다른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고 구별된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그 구별된 삶이 일상에서 구별된 것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나의 소유와 수입에는 이웃의 몫도 있음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웃과 함께 살아가야 함도 되새기게 하시고,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해야 함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을 향해 눈을 듦으로 거룩한 삶,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한날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거룩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거룩(구별됨)이 있습니까?
2. 추수 때에 모든 곡식을 다 베지 말라 하시고, 포도원의 열매도 다 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이웃이나 함께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배려하고 있습니까?
3.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4. 눈을 들어 하나님을 목적 삼으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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