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레위기 18-20장은 18장 1-5절의 서론으로 시작하여, 20장 22-26절의 결론으로 마칩니다. 이 안에는 성생활(18:1-30), 사회윤리(19:1-37), 예배(20:1-8, 27), 가족관계(20:9-26)를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품위를 지켜나가야 한다는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거룩한 백성의 의식적인 기준을 담고 있던 17장과는 달리 18-20장은 거룩한 백성의 윤리적 기준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중 18장은 근친상간 등 금지된 성관계에 대하여 가장 포괄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아울러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 얽혀 있는 다양한 관계의 범위 안에서 어떤 성관계가 금지된 것인가를 구체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혈육에 대한 정의를 내립니다.
공동체의 윤리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결혼과 가족 관계가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가족이 사회의 기본적인 바탕이고,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있어야 사회가 있기에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이 하는 말을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실 때 사용한 단어인 히브리어 ‘따바르’와 ‘아마르’가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할 것을 표현하는 데도 동일하게 사용됩니다. 이것은 모세가 자기의 생각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 그대로를 가감 없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해야 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모세는 창작자가 아니라 전파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스피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며, 세례자 요한을 극찬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극찬을 들었을까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기자는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마 3:3; 막 1:3)’라고 공통적으로 기록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소리였고, 스피커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데에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소리이자, 스피커로 쓰임 받고 있습니까?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는 소리이자, 스피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편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은 본문 및 이후의 장들의 특징적인 후렴구입니다. 이와 거의 동일한 표현이 십계명의 서론 부분에 나타납니다(출 20:2; 신 5:6). 히브리어로 단지 세 어절로 이루어진 이 짧은 어구가 시내 산 언약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의 구속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인 여호와의 의미를 계시하셨을 때, 이 계시를 자기 백성을 애굽의 속박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약속과 연계시키셨습니다. 출애굽기 6장 6-7절 말씀입니다.
(출 6:6-7)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이처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와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어떻게 택하셨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둘째,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본받아 거룩하게 될 것을 요구합니다. 레위기 11장 4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레 11:44 상)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셋째,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은 특정한 율법을 준수하도록 동기를 제공합니다. 언약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단순히 공식적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한 사랑의 반응으로써 율법을 지킬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이처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라는 말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이 누구인지와 누구를 섬기는지를 끊임없이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를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을 기준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의 주인이 누구이며, 우리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따르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할라크’는 문자적으로 ‘걷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생길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걷지 말고, 본질적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걸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성에 관한 풍속을 따르지 않아야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성에 관한 풍속이 어떠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들을 모방하지 말라고 하시는 걸까요?
먼저 애굽 왕족들은 친족끼리 결혼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습니다. 애굽의 신 중에 호루스는 자기 어머니와 성관계를 맺었다고 그들의 신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애굽 사람 중에 상당수는 이를 모방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애굽 사회에서 근친상간이 성행했다는 것입니다.
또, 가나안 사람들의 성생활도 매우 문란했습니다. 가나안의 신 중 바알은 암소와 성관계를 맺었고, 엘은 자기의 두 딸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그들의 신화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애굽 사람들과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성 문화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도 성적 문란이 심각합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양심이 무뎌진 사람들은 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도 현혹될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을 합리화할 수도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 말씀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과는 다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자손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부르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조건을 배경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변 국가들의 세속적인 가치관과 풍속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끊임없이 강화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을 따라 살아갈 것을 요구하십니다.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거짓을 피난처로 삼지 않고, 말씀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정직하게 살아감으로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변 국가들의 세속적인 가치관과 풍속을 답습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를 지키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그들이 그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안에서 살아갈 때 생명이 보존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생명 나무가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 안에 바로 그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따라서 ‘살리라’는 그저 가나안 땅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고대 사회에 팽배해 있던 세계관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당시 많은 국가는 자신들의 왕을 신격화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자기 백성에게 생명을 준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어 애굽은 신의 아들인 바로가 애굽 백성에게 생명과 물질을 준다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로 인해 살게 됩니다. 주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51절 말씀입니다.
(요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6) 각 사람은 자기의 살붙이를 가까이 하여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6절을 시작으로 근친상간과 관련된 상세한 금지사항이 나옵니다. 이 규례는 단지 남자의 선택만을 규제하는데, 구약 시대에는 남자가 일반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법적인 성관계에 동조한 여자도 똑같이 범죄자로 간주되어 상대방과 똑같은 처벌을 받았습니다(레 20:10).
근친상간은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관계에 있는 사람끼리의 성관계를 말합니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 근친상간의 문제는 다른 문화에서보다 더 문제가 되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자손은 타국인, 특히 가나안 민족과의 통혼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결혼 가능한 대상의 수를 크게 줄였습니다. 둘째, 가족이나 씨족이 상속받았던 땅은 가족이나 씨족에게 남아 있어야 했고, 이로 인해 친척들 사이에서 결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제한 때문에 근친상간에 대한 율법은 필수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절부터 시작되는 금지 명령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각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 자손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모두 이곳에 기록된 기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제시되는 원칙들은 문화와 인종을 초월해서 대부분의 사회가 준수해 왔던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능력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곳에 언급된 내용에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누구도 ‘자기의 살붙이’, 즉 ‘자신의 혈육’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7절 이후부터는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되는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함으로써 간접적으로 혈육이 누구인가를 정의합니다. 본문은 고대 근동의 다른 법보다 더욱 광범위하게 근친상간의 범위를 규정합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어머니, 계모, 누이 또는 이복누이, 손녀, 의붓누이,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 의붓딸 또는 의붓손녀, 아내의 자매와 성관계를 가지면 안 되었습니다. 아울러 아내가 살아 있다면, 처제나 처형과 결혼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규례들은 성적 문란을 최소화하고, 같은 집안의 남자들로부터 여자들을 보호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또, 가정은 육체적인 욕구에 의해서만 결합된 공동체가 아니라 상호 신뢰와 사랑 가운데 세워지는 공동체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당신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그들을 위한 경계를 설정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성관계의 경계를 정해 주시므로 인간의 모든 욕망에는 경계가 필요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에 경계선이 없다면, 그 욕망은 무한대로 팽창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어되지 않은 인간의 욕망은 그저 탐욕으로 점철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삶에 경계선을 그어 주셨습니다. 성적 욕구는 인간의 강력한 욕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욕망마저도 말씀의 경계선 안에서 통제되어야 함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경계 안에서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인생을 말씀으로 가꾸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그어 주신 경계를 잘 지키면, 가정이 날로 건강해질 것이며, 우리 사회와 국가도 날로 건강해질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눈을 들어 하나님이 그어 주신 경계선을 잘 지키므로, 우리의 일상이 영원과 잇대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욕망에도 반드시 경계가 필요합니다. 말씀의 경계선 안에서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그어 주신 경계를 잘 지키므로, 가정과 사회를 날로 새롭게 하는 통로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소리이자, 스피커로 쓰임 받고 있습니까?
2. 당신이 누구인지와 당신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하고 있습니까?
3.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면서 자신을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4. 거짓이 난무한 세상에서 말씀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5. 당신의 욕망 중에서 말씀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작성: 이창선)
'새벽기도 > 레위기(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위기 19:1-18 (0) | 2022.09.10 |
---|---|
레위기 18장 19~30절 (0) | 2022.09.10 |
레위기 17:1-16 (0) | 2022.09.10 |
레위기 16:20-34 (0) | 2022.09.08 |
레위기 16:11-19 (0) | 2022.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