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세상에는 하나님을 비난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 중에는 성경 한번 보지 않고 누군가의 이야기만 듣고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성경을 좀 읽어 본 뒤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떻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냐며 비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잔인하다 말하는 자들은 아마 레위기 20장과 같은 다소 과격해 보일 수 있는 말씀을 보고 하는 소리일 것입니다.
레위기 20장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한 율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죄를 지었을 때에는 반드시 죽일 것을 명하시는데, 죽이라는 명령만 스물 일곱 구절 가운데 열 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읽다 보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이 죄를 좀 지었다고 죽이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곤욕스럽게 하시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시고자 이러한 규칙을 마련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제가 타교회를 섬길 때에 찬양팀 공동체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찬양팀은 정기적인 모임이 있었는데, 약속된 시간에 모이는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고, 제시간에 온 인원들은 늦게 온 인원들을 늘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이러한 문제를 놓고 회의를 하게 되었고, 늘 일찍 오던 자매가 지각에 대한 규칙을 마련하고자 건의했습니다. 이어서 어떤 형제가, 뭐하러 규칙을 만들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냐며 규칙을 만들지 말자고 반대했습니다. 규칙제정에 대한 찬반 토론이 거세지려 할 때, 어떤 청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규칙은 우리를 힘들게 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 그 말이 있은 후, 더 이상의 반대는 없었고 제정된 규칙으로 나름대로 질서가 잡혔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듯 법과 규칙은 누군가를 곤욕스럽게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심도 그들을 해하시기 위함이 아닌,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살게 하시고, 우상에 젖어 든 세속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범죄에 대해 사형을 명하셨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형 자체가 아닌 그 범죄가 사형이 집행될 만큼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형에 대한 율법 안에는 범죄의 위중함을 알리시어 공동체를 보호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오늘 살펴볼 본문은 크게 세 가지 범죄에 대한 처벌 규례를 다룹니다. 몰렉 숭배자에 대한 처벌 규례,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따르는 자에 대한 처벌 규례, 그리고 부모를 저주한 자에 대한 처벌 규례가 등장합니다.
먼저 몰렉 숭배자에 대한 규례를 살펴보겠습니다.
몰렉 숭배자에 대한 처벌 규례 (1-5)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몰렉에 대한 말씀은 이미 18장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20장 말씀에서는 추가적으로 몰렉에게 자식을 주는 자와 이를 방관하는 자를 죽일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서 나그네로 사는 외국인이든지 몰렉에게 자식을 주는 자는 죽임을 당해야했고, 사형 방법은 돌로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수행하는 자들은 그 지방에 거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는 장로나 재판관들이 아닌 평범한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죄를 지은 자들을 왜 하필 돌로 쳐 죽였는지 그 이유는 명시되지 않았지만, 공개적 처형을 통하여 이러한 죄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몰렉에게 자식을 주는 자에게 진노하시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그들을 끊으실거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범죄한 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신의 호흡이 끊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졌다는 뜻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야말로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백성으로 남아있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끊어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상은 범죄한 자가 몰렉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고, 분명 하나님께서 경고하셨으나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여 스스로 관계를 끊어버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행위에 대해 성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4절과 5절은 우상숭배를 방조하거나 눈감아 준 자에 대한 처벌 규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방조하는 행위 역시 우상숭배의 준하는 범죄로 규정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의 연대 책임성을 일깨워주고, 유기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가족이나 이웃이 심각한 범죄에 빠져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갈등을 피하고자 묵과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닌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몰렉을 섬기는 자를 보았음에도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않는 자들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족이나 이웃의 범죄를 묵과했다는 것은 그들도 교묘히 우상에 젖어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관계를 중시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상숭배는, 사형에 해당할 만큼 하나님께서 극도로 미워하시는 행위이며, 이토록 엄히 규정하실 만큼 공동체에 들어와서는 안 될 범죄였습니다. 오늘날도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파괴시킬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처럼, 육신의 호흡을 끊어버리지는 않으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켜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며, 자신의 존재를 높이라는 내면의 소리에 유혹 받을 것입니다. 때때로 그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고, 회개하며 돌이키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을 극도로 미워하실만큼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며,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이 우리를 침범치 못하도록,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아름다운 관계를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따르는 자에 대한 처벌 규례 (6-8)
(6-8)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이란, 모종의 신을 불러내어 사역을 했던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과 다름 없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규정이 20장 27절에서 재차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으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으로 매우 치명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따르는 자들에 대해 몰렉을 섬기는 자와 같이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실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7절과 8절을 보면, 마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7절에서는 ‘스스로 깨끗하여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씀이 있고, 8절을 보면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 구절을 이어서 읽다 보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도저히 거룩할 수 없는 우리를 거룩한 존재로 여겨주시는 주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7절을 보면, 스스로 깨끗하여 거룩하라는 말 뒤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기억하여 우상을 멀리함으로 거룩을 추구하라는 말씀입니다. 8절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임을 기억하여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거룩해질 수 없는 우리이지만, 우리를 거룩케 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때에, 우상을 멀리하며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공급받을 것입니다.
부모를 저주한 자에 대한 처벌 규례 (9)
(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도 죽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모를 저주한다는 뜻은 일상적으로 부모를 향해 화를 내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쓰인 ‘저주’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공경하다’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무겁게 하다’ 또는 ‘영광스럽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반면, ‘저주하다’는 문자적으로 ‘가볍게 하다’ 또는 ‘경멸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부모를 가볍게 여기고 경멸하여 그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위계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며 패륜 행위이기에, 이러한 자는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단절되어 돌로 쳐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9절 말미에 나오는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를 원어로 직역하면 ’그의 피가 그의 안에 있다‘입니다. 즉 이 표현은, ’그가 그 자신의 죽음에 모든 책임이 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공동체가 그를 죽였지만 그것이 결코 살인이 아니라 그가 자기의 행위로 인해 반드시 받아야 할 형벌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세 가지 범죄에 대한 처벌 규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고자, 치명적인 범죄에 빠지지 않도록 확실한 선을 그으셨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선을 넘지 않는 것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비상식적인 몰렉을 섬기지 않는 것, 하나님을 믿는 자가 접신한 자를 따르지 않는 것, 부모를 저주하지 않는 것 모두 굳이 선을 그어 놓지 않더라도 결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범죄가 사형에 해당하다는 것을, 상식선에서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상숭배에 빠졌고 부모를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어 놓으신 선을 이탈하려는 죄성이 있으며, 이내 그 길이 파멸의 길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이러한 행위를 목도하는 자들도 그들을 징계하라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겨 범죄한 이들을 두둔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로마서 1장 32절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 구절은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죄를 드러낼 때 했던 말이지만, 로마서 2장 1절에서 3절을 보면, 율법을 받은 유대인도 이방인과 같은 죄를 지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철저히 하나님을 업신여겼고, 모든 인간이 거룩함에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레위기를 통해 거룩이 무엇인지 배우는 동시에, 인간은 결코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는 철저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를 보면, 고린도교회 안에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의 범죄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근친상간, 도덕적 태만, 우상숭배, 교회의 분열 등 사형에 준하는 문제들이 즐비했고, 사도바울은 이에 고린도교회를 위해 편지를 쓰게 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에 대해 궁극적으로 권면했던 것은, 다시 율법을 붙들고 잘 지키라는 것이 아닌 그들이 내려놓은 십자가를 다시 붙들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으나, 인간은 도리어 그 율법으로 타인을 정죄하고 자신의 의로움을 과시하는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나아가 율법을 온전히 지킨 자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인간은 결코 거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할 뿐이었습니다.
죄로 가득찬 인간을 거룩케 하는 것은 오직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는 자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율법에서 죄로 규정한 수 많은 죄들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오직 십자가이며 우리가 붙든 그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를 의의 길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며 거룩을 위해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하시고 결코 우리의 힘으로는 거룩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십자가로 건져주시고, 그 놀라운 은혜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줄 믿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스스로를 의롭게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 놓고 눈을 들어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시고, 거룩하신 주님을 우리의 삶으로 드러내는 오늘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벌 규례를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2. 몰렉에게 자식을 바친 자를 방관하는 자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선한 목적으로 주셨으나, 인간은 어떠한 도구로 전락시켰나요?
4. 인간을 거룩케하는 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붙들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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