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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레위기(새벽)

레위기 23:23-44

 레위기 23:23-44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23장 23절에서 부터는 가을의 절기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모든 문화권에 나타나며, 특정한 날을 정해서 지킴으로 단순히 기념하는 것을 넘어서, 삶의 양식으로 체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마치 식목일에 산림의 소중함을 되새길 뿐만 아니라, 그날 실제로 나무 심기를 실천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절기를 지키도록 명하시는 것은, 그 절기의 의미가 그들의 실제 삶이 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기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원하시는 삶이 나타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부터는 가을에 지키는 절기로, 일 년 중 절정에 이르는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라(23-25)

(23-2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첫 날은 너희에게 쉬는 날이 될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일곱째 달 첫 날을 절기로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일곱째 달은 애굽에서 나오던 날을 기준으로 일곱 째 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원어로 ‘샤밧’이라고 하여 안식일과 같은 용어를 썼지만, 안식일과 다른 의미의 휴일입니다. 일곱째 달의 첫 번째 날은 그 달 전체를 대표하는 날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은 쉬고 어떤 노동도 하지 않으며, 나팔을 불어 기념해야 합니다. 민수기 29장에서는 이날을 ‘욤 테루아’라고 하여 ‘나팔소리의 날’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절기에 다 나팔을 불지 않고 이 일곱 째 달 첫 날만 나팔을 불어 기념합니다. 이 날 부는 나팔은 연주용 나팔이 아니라, 신호를 위한 나팔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념하다의 원어는 ‘생각나게 하거나 기억하고 회상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그 사건을 회상할 뿐만 아니라, 그 사건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어떤 노래나 멜로디를 들으면, 과거에 연관된 사건이 회상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족속은 그들의 역사 중에 나팔 소리와 연관된 사건을 회상하게 됩니다.
‘나팔을 분다’의 원어 ‘테루아’는 앞서 언급했듯이, 연주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위급함이나 기쁨 등 알리는 경보나 신호 소리’를 의미합니다. 이 나팔 소리가 이스라엘 족속의 뇌리에 강렬하게 심긴 사건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족속은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처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목전에 강림하셨 습니다. 그때 사람이 불지 않은 나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족속이 옷을 빨고 성결하게 하여 시내산에 모였고,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전에 강림하셨습니다. 그때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더 커지며 불 가운데 여호와께서 강림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19). 그 날 그 나팔 소리에 이스라엘 족속은 떨면서 산 기슭에 서서, 불 가운데 강림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온 산을 진동하며 울렸던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족속의 뇌리에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나팔을 부는 것이 그 사건인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레위기의 이 본문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직 나팔 소리가 울렸던 시내산에 있는 중입니다. 아직 그 언약식이 끝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맥락으로 보면, 나팔을 부는 것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고 있는 이 자체를 기념하라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1세대들은 크게 울리는 나팔 소리를 들으면,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들렸던 그 나팔 소리가 떠오를 것입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사람들이 아침 기상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 다시 입대해서 군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뇌리에 심긴 감각적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곱째 달 첫날에 이스라엘 전역에서 나팔 소리를 울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신 그 언약을 떠올리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 후손들은 시내산에서의 나팔 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매년 일곱째 달 첫날마다 나팔 소리로 기념하는 절기를 지키므로 대대로 보전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이 나팔 소리는 우리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들린 나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이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 택하신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은다고 한 날에 우리도 그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 나팔 소리가 은유적 표현 일 수도 있고, 실제 나팔 소리 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불러 언약을 맺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셨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 그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함께 눈을 들어 그 날에 울리는 소리를 바라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나팔절의 열흘 후에는 속죄일이 이어집니다.

그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26-32)

(26-3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어떤 일이라도 하는 자는 내가 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이는 너희가 쉴 안식일이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이 달 아흐렛날 저녁 곧 그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을 지킬지니라

속죄일은 일곱째 달의 열흘날입니다. 곧 나팔절이 있은 후 10일 후에 바로 속죄일로 지키게 됩니다. 속죄일은 매년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날로 절기 중 가장 거룩한 날입니다. 이날 일 년에 한 번 유일하게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위해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제물인 염소의 피를 궤에 바릅니다. 오늘 분문에서는 속죄일에 드려지는 제사는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만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고 일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나팔절과 같이 속죄일에도 다른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일을 하지 않도록 하는 취지는, 그 절기를 지키는데 마음과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다른 일을 하거나 또한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는 사람은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이 절기가 단순히 형식적인 기념일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실제가 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날 동안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스스로 괴롭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라는 말의 원어는 ‘영혼’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로 사람의 전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괴롭게 하는 것은, 내면과 외면을 포함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괴롭게 한다는 원어는 ‘겸손하게 하다, 굴복시키다’란 뜻입니다. 이는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고, 마음으로도 슬퍼하고 굴복함을 의미하는 말이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금식과 회개 기도와 같은 참회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매년 속죄일을 이스라엘 족속이 실제로 범하는 죄와 상관없이 연례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삶에 회개와 금식과 같은 참회가 항상 있어야 할 것이지만, 이렇게 정례적인 절기로 지키도록 하는 속죄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범한 실제의 죄와 관계없이 절기로서 매년 속죄일을 정해 금식과 회개 기도를 하는 것은, 자신이 죄인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백성 삼은 사람들은 그 이전에도 죄인이었으며, 그 이후에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신을 괴롭게 하며 죄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참회를 하며 그 외의 364일은 의인의 신분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죄에 대한 심판과 그에 따른 용서와 해방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속죄일에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과 자복이 요구되지만, 대신 나머지 364일은 죄에 대한 자유와 해방이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속죄일이 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우리의 속죄로 믿습니다. 그의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는 죄없다하심과 의롭다하심을 동시에 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가 매일 자신을 괴롭히며 죄책감 속에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의는 우리가 더 보충해야하는 불완전한 의가 아니라,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의입니다. 우리는 참된 회개와 참된 의인의 신분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달 15일부터 22일까지는 초막절입니다.

초막을 짓고 그 곳에 지내라(33-41)

(33-3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이 일 년 중 마지막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 지내기 때문입니다. 이 초막절도 다른 절기와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며 성막에 모여 화제를 드립니다.

(39-44)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초막절은 일곱째 달에 토지의 소산을 모두 거두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레 동안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 부릅니다. 이레 동안 초막에서 지내는 이유는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지내던 것을 기억하기 위합니다. 이 초막절에 온 가족이 초막에서 지냈습니다. 이를 통해 출애굽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기념되고 자녀들과도 공유되어 전해지게 됩니다.

이 초막절은 또한 추수를 모두 마치고 감사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초막을 짓는 나무 가지는 아름다운 실과가 있는 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들로 풍성함을 나타냅니다. 토지의 소산을 모두 거두고 나서 지키는 절기이기에 추수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의 다른 이름은 수확을 의미하는 수장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일 년의 절기 중 절정인 초막절은 추수의 풍성함에 대한 감사와 애굽에서의 구출을 기념하는 의미가 결합돼 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지키라하신 절기들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일곱 절기는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에서 구출돼 나오는 과정과 곡식의 수확 과정이 결합돼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주신 절기에는 창조 질서에 따른 절기와 하나님의 구원에 따른 절기가 결합돼 있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이스라엘 족속의 삶이 되게 됩니다. 이는 시간과 우주를 무의미한 우연의 조합으로 보는 현대의 과학주의적 세계관과 다릅니다. 시간은 목적 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순간의 연속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님의 목적을 이뤄가는 순간들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족속들과 같이 율법의 절기들을 기념하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족속에게 절기를 주셔서 기념하도록 하셨으며, 그 이후로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서 ‘나를 기념하라’ 곧 희생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율법의 일곱 절기를 더 이상 지키지 않는 대신에, 예수님께서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그 말씀을 주일마다 또 각자의 삶에서 믿음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들은 무의미한 순간의 연속이 아닌,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리는 그날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절기를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때, 눈을 들어 온전히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온전한 백성으로 들이기까지 이 장구한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마치 무의미한 시간 속에 흘려가듯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우리의 시간을 의미 있는 영원한 시간으로 잇대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에서 기념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일곱째 달 첫날의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에 비해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 것인지 묵상해 봅시다.
2. 일 년에 한 번인 속죄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날이 있으므로 이스라엘 족속과 우리에게 어떤 삶의 영향을 주게 되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초막절을 비롯한 절기의 독특한 특징에 대해 생각해보고, 하나님께서 절기를 지키도록 하심으로 이스라엘 족속과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4. 하나님께서 절기를 통해 이스라엘 족속에게 기념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기념하라고 하신 것에 대해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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