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569장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1-7)
시내산에 머물며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율법을 듣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안식년과 희년의 율법이 선포됩니다. 23장에 언급된 절기들이 7일마다 반복되는 안식일에 기초하여 매년 반복되는 절기들이었다면, 25장은 7년마다 도래하는 안식년과 안식년의 7번 반복으로 돌아오는 희년을 소개하는 점이 다르지만 근본은 안식일에서 출발한다고 하겠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에 대해 듣고 있지만 지금 시내산에 머물고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당장 의미가 있는 율법은 아닙니다. 나중에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 정착한 이후부터 지키게 되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한 치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지금하시는 까닭은 수백 년간 애굽에서 노예로 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땅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이 받을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입니다. 그렇다면, 그 땅을 바라보는 시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꿀 필요가 있으며, 땅의 사용 방법도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안식년과 희년의 율법을 통해서, 땅을 매개로 한 빈부의 격차가 영구히 되는 것을 막고 인생 가운데서 최소한 한 번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1-5)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육 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육 년 동안 그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둘 것이나 일곱째 해에는 그 땅이 쉬어 안식하게 할지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가꾸지 말며 네가 거둔 후에 자라난 것을 거두지 말고 가꾸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1년에 52일을 쉬게 되고, 7년간 쉬면 모두 364일, 1년을 쉬게 됩니다. 땅은 사람과 같은 흐름으로 쉴 수 없으니 사람이 7년 중 1년을 안식일로 쉬듯이, 땅도 7년에 1년은 생산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5절에 나온 대로 땅의 안식년이면서, 4절에 나오는 대로 여호와께 대한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쉼이 필요한 분이 아니지만 성경 곳곳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출20:11).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7일째 되는 날에 쉬셨고, 7년째 되는 해에 쉬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의 쉼과 땅의 쉼은 하나님을 닮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사이클을 따라 하나님을 닮기 위해 쉴 수 있습니다. 사람의 탐욕대로 그대로 방치한다면, 사람은 쉴 새 없이 땅의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덤벼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디디고 사는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쉼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삶의 원리가 다른 민족들과 어떻게 다른지 체감하기를,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기를 의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단지 1년만 쉬는 것입니다. 1년이 길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땅을 백성들이 6년 동안 힘써 씨를 뿌리고, 가꿔서 그 수확한 것을 먹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백성에게 기꺼이 내어주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1년간 쉰다고 해서 불평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7년째가 되면, 그 땅에 어떤 인위적인 행위도 금지되었습니다. 씨를 뿌리거나 가지를 치거나 잡초를 뽑는 등의 행위도 하지 않았습니다. 6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농사지었다고 해서, 7년째 그 땅에서 자란 식물을 내 것이라고 우길 수도 없었습니다.
(6-7) 안식년의 소출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너와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품꾼과 너와 함께 거류하는 자들과 네 가축과 네 땅에 있는 들짐승들이 다 그 소출로 먹을 것을 삼을지니라
하나님은 안식년의 소출을 너희, 곧 너와 네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거류하는 자들과 가축 뿐만 아니라 들짐승까지 나눠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6년 동안 자신의 것이었다고 해서 7년째 수확할 수 있는 것도 네 것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안식년의 식물을 들짐승들을 포함하는 식물이 필요한 모든 개체가 공동으로 먹었습니다. 부자라고, 땅이 조금 더 많다고 많이 먹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 달려가다가도 안식년이 되면, 그 삶을 멈추고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일상 가운데서 체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날마다 공급하시는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의 빚을 지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인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청지기로 여겨 맡겨주셨다는 것을 늘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매 7년마다 땅을 안식하게 둠으로써 거뒀던 효과였습니다.
안식년 규례를 주신 목적 자체는 땅을 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땅을 쉬게 만들어 농작물을 키워내느라 소진된 지력을 자연스럽게 회복시키는 차원이었습니다. 지질학적 차원에서 출발한 안식년이 7년이라는 사이클을 따르면서 주변 나라들과 대비되는 이스라엘만의 거룩의 의미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신앙의 영역을 서로 나누지 않으며 이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안식년이 역사적으로 잘 지켜졌는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땅이 안식했다는 기록을 성경에서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왕정 시대, 남유다의 히스기야 때에 안식년을 지켰다는 흔적이 남아있을 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지켰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난 이후에야 70년간 휴식했다고 나옵니다.
레위기 율법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신명기 15장을 보면, 안식년은 서로의 빚을 탕감해주는 해이기도 했습니다. 매 7년마다 극빈층들이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바로잡는 해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문자적으로 안식년을 지키지는 않지만 안식년의 정신은 우리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실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선용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 자신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 여기지 말고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등입니다.
칠년이 일곱 번인즉(8-12)
다음으로 희년이 소개됩니다.
(8-10)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는 뿔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뿔나팔을 크게 불지며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안식년이 7번이 지난 49년째 되는 해 일곱째 달 10일에 뿔나팔을 불어 희년을 알리도록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희년을 요벨이라고 하는데, 희년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의 재료, 숫양의 뿔이 요벨이기 때문에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희년을 알리게 한 것입니다. 희년은 49년째가 절반쯤 지난 시점에 시작되며, 속죄일에 시작된다는 점이 의미심장합니다. 자유가 선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셨던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로의 빚을 탕감해주고 자유를 주어야 했습니다. 살기 위해 노예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희년에는 자유민이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살다보면 생길 수밖에 없는 왜곡된 계층 구조와 압제를 없애고 처음 가나안 땅에 입성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을 받았을 때의 상태로 되돌림으로써 일생 가운데 최소한 한 번은 새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게 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어떤 속박도 없는 자유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애굽의 종되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참 자유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이에서도 생길 법한 속박과 굴레를 없애고,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해 희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는 식의 방종을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일구며,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 따르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희년이 선포되면 모든 이스라엘이 처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으로,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가세가 기울면 자기 기업도 팔고, 자기 스스로도 남의 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지만 희년이 되면, 하나님께 처음 기업을 나눠 받았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11-12)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50년째 해인 희년에도 안식년과 같이 씨를 심거나 가지치기와 같은 것은 할 수 없었고, 자연적인 성장으로만 식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안식년과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주셨던 기업의 소출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 곧 하나님께서 키워주신 식물을 먹으면서,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새로운 질서 속에서 차츰 안정감을 찾도록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는 무한경쟁 속에서 혹여나 뒤쳐질까 염려하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남을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며, 다양한 부르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율법을 통해 더불어 함께 살아갈 뿐만 아니라 참 자유를 누리고 살아갈 기반을 마련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신을 세워나가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말씀의 정신 아래에서 참 자유 누리며 살도록 인도해주셨음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식년과 희년의 말씀을 통해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 우리의 일상이 거룩해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생태계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뜻에 부응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잘됨을 위해 너를 디디고 일어나는 세상을 살지 않고, 함께 더불어, 서로를 보듬는 세상을 만들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시내산에 머물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먼 미래의 안식년과 희년과 관련된 말씀을 들려주시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2. 안식년에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일들을 써보고, 하나님께서 안식년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써보세요.
3. 희년은 언제 시작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습니까? (8-10)
4. 안식년과 희년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이런 차이를 두신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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