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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7:35-43

사도행전 7:35-43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초대 교회는 사도들이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도록 구제와 봉사의 일을 맡을 사람 일곱 명을 택하였습니다. 일곱 명의 사역자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사도들처럼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인 디아스포라가 모이는 회당에서 지혜와 성령으로 논쟁자들과 대화를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말을 이기지 못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 증인을 세우고 스데반을 공회에서 재판받도록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이 공회에서 했던 자기 변론이자 설교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고향을 떠나 지금 서 있는 땅을 약속받았던 이야기,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들어간 배경과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된 이유, 그리고 노예 생활로 괴로워하는 조상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던 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데반의 설교 중 애굽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조상들이 모세를 어떻게 대하였는지, 그리고 그들의 범죄에 관한 내용입니다.

거절하던 그 모세를(35-38절)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그들의 말’이란 모세를 거절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말입니다. 스데반이 27절에서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들 위에 세웠느냐”고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더 인용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 어느 누구도 모세가 싸우고 있는 형제들을 말릴 때 모세의 편을 들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 모세가 비록 애굽의 왕자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이스라엘의 관리나 재판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절을 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시내 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 세우시고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습니다.
모세가 후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지만, 과거 애굽의 왕자로 살았던 40년 동안 동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애굽에서 도망을 나와 80세가 될 때까지 광야에서 고독한 나그네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모세를 이스라엘의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관리는 지도자, 통치자, 왕이라는 뜻이 있으며 속량하는 자는 자기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시고 노예로부터 해방시켜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신을 거절했던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그들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스데반이 모세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궁극적으로는 자기희생을 통해 자기를 거절했던 유대인들을 살리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진정한 관리는 통지자이자 왕이신 예수님이시고, 진정한 속량하는 자는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이십니다. 스데반은 공회에서 대제사장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강조했던 점은 ‘과거 너희 조상들이 거절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모세가 진정한 지도자이자 속량하는 자이었고, 현재 너희가 거절한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의 진정한 왕이자 속량하는 자이다’입니다. 스데반이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에게 거절당했던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속량하는 자로 세움을 받아 자신을 거절했던 사람들을 출애굽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과정과 광야에서 40년 동안 기사와 표적을 행했습니다.

37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했던 예언입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스데반이 신명기 18장 15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 신명기에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는 말씀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과거 너희 조상들이 거절했던 모세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면서 기사와 표적을 행했던 역사적 사실을 후대 사람들이 알고 모세를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는데 그 위대한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지니라’고 말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모세가 하셨던 명령을 거절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38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시내 산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 말씀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우리 조상들과 함께 있었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인 율법을 과거 조상들과 지금 우리에게 주신 사람이 바로 모세였음을 스데반이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 교회는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하던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광야는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기에 하나님만을 간절히 찾을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광야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 사람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예수님의 모형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교회에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임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39-43절)

39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출애굽 과정에서 10가지 재앙 가운데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고 마른 땅으로 변한 홍해를 걸어서 건넜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구가 된 모세가 일으킨 기적을 보고도 광야 생활에서 모세를 원망하며 거절하였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여 도리어 애굽의 노예 시절을 그리워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의 노예로 살았던 애굽과 같은 세상에서 출애굽을 하여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때에 겪는 고난으로 인해 옛 시절, 즉 애굽의 삶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은 평탄한 고속도로가 아니며 광야 길입니다. 광야에서는 편히 쉴 수 있고 먹기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휴게소가 없으며 안락하고 시설이 좋은 호텔도 없습니다. 광야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광야 같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광야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40 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

모세를 거절했던 백성들이 모세의 형에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은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눈에 보이는 신이 참신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한 신이심을 알지 못하고 아론에게 신들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사람이 신을 형상화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참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을 형상화하는 이유는 결국 자기만족과 자기 경배를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신이 인간의 필요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신이 과연 신이겠습니까? 결국 인간에 의해 형상화된 신은 말을 할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나무나 돌이나 금속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위하여 신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모세 시대 사람들처럼 신을 형상화하지 않겠지만, 자기 인생의 미래와 자기 필요에 따라 신을 요구한다면 모세 시대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고 말한 사람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41 그 때에 그들이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

시내 산에 올라간 모세를 기다리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출애굽하게 만든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 앞에 제사하며 기뻐했습니다. 우상은 언제나 자기만족과 자기 경배를 위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송아지 형상을 기뻐했다고 합니다. 어찌 자기 손으로 만든 형상이 자신을 살린 하나님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눈에 보이는 돈과 물질을 쌓아두고 기뻐하고 있다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어 기뻐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송아지는 애굽 노예 시대에 애굽 사람들이 섬겼던 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의 노예 아래 있었을 때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삶이 지속될 경우에 유기(遺棄)될 수 있습니다.

42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것만큼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송아지 섬기는 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온갖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 즉 일월성신을 섬기는 일까지 내버려 두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마음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시고 불의, 추악, 탐욕, 시기, 살인, 분쟁, 사기 등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구원과 풍성한 은혜를 잊고 자기만족과 자기 경배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께 제대로 된 희생과 제물, 즉 예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40년 광야 생활에서 제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짐승으로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지 않았던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43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몰록은 암몬의 우상 몰록을 뜻하며, ‘신 레판의 별’은 앗수르 사람이 섬기던 토성(土星)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나라에서 섬기는 우상까지 섬겼습니다. 그러니까 어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냥 두실 수 있으셨겠습니까? 이스라엘을 패망시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이스라엘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스데반은 설교 중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세를 거부하고 동시에 하나님을 거부하며 우상숭배를 했던 조상들의 죄와 허물을 언급함으로써 현재 공회에 참석한 사람들 역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자기만족과 자기 경배를 위해 하나님을 도구삼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영의 눈으로 보려면 매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이 생길 때 사도 바울의 눈에 비늘이 벗겨져 주님을 보았던 것처럼, 그리고 시각장애인 바디매오가 눈을 떠서 주님을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이 시대에 진정한 주님을 따르는 사람, 팔로워로 살아갈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스데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담대히 전할 수 있음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관리와 속량자를 거절하는 죄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해 주셨사오니, 광야 교회의 성도가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희생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시옵소서. 오늘 하루 광야 같은 세상에서 힘이신 하나님을 보며 주님을 따라가는 사람, 팔로워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위한 질문
1.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했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무엇으로 세워주셨습니까?
2. 모세가 거절당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거절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거절했던 사람들을 위해 하셨던 일은 무엇입니까?
3. 광야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을 형상화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5. 광야 같은 인생에서 주님을 따르는 사람, 팔로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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