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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13:1-12

사도행전 13:1-12
찬송가 447장 ‘이 세상 끝 날까지’



바나바와 사울 - 파송(1-3절)
사도행전은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의 말씀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7장은 ‘권능을 받음’, 즉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것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사역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8-12장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예루살렘에 큰 박해가 있어서 주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로 간 빌립 집사의 사역과 예루살렘에서 북서쪽, 지중해 연안 도시인 룻다와 욥바, 가이사랴 등지에서 이루어진 베드로의 사역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룻다에서는 애니아의 중풍을 치유하고, 욥바에서는 다비다를 살리고, 가이사랴에서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복음은 시리아를 넘어 지금의 터키 땅인 안디옥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3-28장은 복음이 땅끝이라고 여겨졌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어떻게 전해졌는지를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것의 출발로, 안디옥 교회에서 누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와, 그들의 첫 선교지인 구브로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전해줍니다.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당시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 즉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5명의 명단입니다.
①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그는 구브로 출신의 유대인이었고, 일찍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주님께 드렸던 사람입니다.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그의 믿음과 삶에 감동받은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나바’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그것은 그가 그만큼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다섯 명 중에서도 으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②‘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입니다. 본문은 시므온의 나이나, 신분, 가족 등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니게르(niger)’였다고 증거합니다. 이 단어의 뜻은 ‘검다’로, 여기에서 ‘흑인’을 뜻하는 영어 ‘니그로(negro)’가 파생되었습니다. 즉 시므온은 흑인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흑인이었다면, 이방인임이 틀림없습니다. 당시는 인종차별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안디옥 교회에는 이방 흑인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교인이 아닌, 교회의 지도자로서 말입니다.
③‘구레네 사람 루기오’입니다. ‘구레네’란 아프리카 북쪽 지중해 연안, 즉 지금의 리비아에 그리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였습니다. 루기오가 그 도시 출신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른 특별히 소개할만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역시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④‘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입니다. ‘젖동생_쉰트로포스(suntrophos)’는 ‘같은 젖을 먹고 자란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죽마고우(竹馬故友)’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나엔이 분봉 왕이었던 헤롯의 젖동생이었다면, 그 역시 당시 최고 귀족 출신임이 틀림없습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집권층의 유대인이라면, 일반 유대인들에게는 매국노로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⑤‘사울’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바리새파 출신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라면 주님으로부터 위선자로 질타를 받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주님을 부정하고 주님의 말씀을 짓밟고, 주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폭군이었습니다. 자격으로 따진다면 그는 교회의 지도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교인 자격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이것이 안디옥 교회의 특징이었고,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한 그룹으로 묶일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안디옥 교회는 주님 안에서 국적, 신분, 지역, 계층, 인종, 사상을 초월하여, 한 지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웠다는 것은 교인들도 동일한 믿음과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안디옥 교회야말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초월하는 주님의 지체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때까지 유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던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안디옥 교회로 사도행전의 축을 옮기셨습니다.

(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성령님께서 이방인을 위한 주님의 도구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울 것을 안디옥 교회에 명령하시고, 이에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보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로 보낼 사람을 선정하는데 ‘제비뽑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 맛디아를 정한 것이 성경에 나오는 제비뽑기의 끝입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구제와 재정 출납을 담당할 7명의 집사를 뽑을 때도 ‘제비뽑기’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비뽑기만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로 파송할 사람을 세울 때,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하는 것은 그 일이 쉽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을 선교사로 따로 세우라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보내니라_아폴뤼오(apoluo)’ 동사는 ‘풀어주다(release)’, ‘놓아주다(to set free)’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사람을 보내기 위해서는 보내기 이전에 먼저 나로부터 풀어주어야 합니다. 즉 나로부터 먼저 자유케 해주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보내어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의 사람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자신들로부터 진정으로 풀어주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 – 구브로 전도(4-12절)
13:4부터 14장 마지막까지는 약 2년간의 바나바와 바울의 1차전도 여행입니다.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마침내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브로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하여 실루기아로 내려갔습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 남서쪽 약 26Km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였습니다. 이때 실루기아에서 구브로로 가는 배를 타는 바울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실루기아 항구를 출발한 배는 단순히 바울이 탄 배가 아니었습니다. 그 뱃길이 바울의 인생을 바꾸었고,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이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서 처음 도착한 곳은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처음부터 땅끝까지 보내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들을 갈릴리로 부르신 다음,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의 증인된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제자들의 고향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바울을 부르신 주님께서는, 바울이 그 즉시 복음을 증거하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주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13년이나 다소에 거하게 하신 다음 안디옥으로 불러내셨습니다. 다소는 바울의 고향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우리가 새겨야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땅끝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의 출발은 언제나 자기 고향, 자기를 아는 사람들 앞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잘 아는 사람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때에만 우리는 우리를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살라미(Salamis)’는 구브로 섬의 가장 동쪽에 있는 항구였습니다. 바나바와 바울 일행은 살라미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의 여러 회당을 찾아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회당’은 단수(單數)가 아니라 복수(複數)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는 상당히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브로 섬에는 B.C. 약 320년경부터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주로 새로운 도시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할 때, 그곳에 회당이 있으면 회당을 찾아서 그곳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고, 그 회당을 이방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로 삼았습니다.

(6-7)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살라미’가 구브로 섬의 동쪽 끝에 있는 항구라면, ‘바보(Paphos)’는 서쪽 끝에 있는 항구입니다. 그러니까 바나바와 바울 일행은 문자 그대로 구브로 섬 한가운데를 관통(약 180km)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바보에는 총독 서기오 바울의 관저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바울 일행은 총독을 만났는데, 그 곁에 ‘바예수’라고 하는 거짓 선지자 마술사가 있었습니다. ‘마술사_마고스(magos)’는 점성가, 마법사, 무당 등을 뜻합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든 그는 ‘거짓 선지자’라고 증거합니다. 그의 이름 ‘바예수’는 ‘여호수아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히브리식 이름인 ‘여호수아’는 구원자란 뜻이고, 그 이름의 헬라식 표기가 ‘예수’입니다. 따라서 그는 스스로 구원자의 아들, 즉 자기 역시 구원자임을 사칭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이 총독 서기오 바울이었습니다. 총독이면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판단력이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당시의 사람 중에 가장 총명하고 뛰어난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자신 곁에 ‘마술사, 무당’을 두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지혜가 이러합니다. 2000년 전만이 아니 아니라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배운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점집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신문에 ‘오늘의 운세’도 빠지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 중에 무속인에게 빠져있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어도,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하나님을 목적 삼지 않는다면, 서기오 바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다(잠 1:7, 9:10).’라고 단언해서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으면 근본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8)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참된 진리에 목마름이 있었던 서기와 바울은 바울 일행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마술사가 방해했습니다. ‘엘루마’도 ‘마술사’라는 의미입니다. 그가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힘쓰다’라고 하는데, ‘못 하게 하다’의 원뜻은 ‘왜곡시키다’, ‘비틀다’입니다. 즉 바울이 전하는 말마다 마술사가 그 뜻을 비틀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응입니다.
(9-12)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이제까지 스스로가 구원자인 것처럼 행동했던 바예수는 그 눈이 멀게 되어 자신을 인도해 줄 사람을 찾아야 했고, 그 모습을 본 총독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마술사는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했다’라고 증거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 후에는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다시 시력을 얻은 후에는 거짓 선지자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새 출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3-28장은 땅끝이라 여겨졌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어떻게 복음이 전해졌는지를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역할을 예루살렘 교회가 아니라 이방인 지역에 있었던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가셨습니다. 그것은 안디옥 교회가 하나님만을 자신들이 힘으로 삼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차별의 장벽을 넘어, 찾아가야 할 사람을 찾는 주님의 통로로 사는 한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안디옥 교회는 인종, 직업, 계층, 학력, 배경, 사상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안디옥 교회와 같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그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께서 따로 세우라고 하는 사람을 세워 파송하였습니다. 우리 각자가 그렇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땅끝에서까지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일지라도 그 시작은 나를 아는 사람이 있는 곳, 우리 삶의 자리인 것도 잊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절대화하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화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도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에서 차별의 장벽을 넘는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와 교사들은 인종, 직업, 계층, 배경, 사상을 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당신의 삶에서 바르지 못한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고 있습니까?
2.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에서부터 복음을 전했습니다. 당신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되고 있습니까?
3. 서기오 바울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혜는 마술사를 곁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영원한 지혜를 당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4. 장벽을 넘는 안디옥 교회가 되고,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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