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13:13-41

사도행전 13:13-41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13-15절)

사도행전은 1-7장에서 권능을 받은 교회를, 8-12장에서 유대와 사마리아에 전해진 복음에 대해 전합니다. 이어지는 13-28장은 당시 사회의 땅 끝이었던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전하며, 13장은 그 시작점인 전도여행팀의 초기 정신과 메시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13-15절)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요한을 비롯한 전도팀은 구브로 섬 동쪽 항구 살라미에서 서쪽 항구인 바보로 이동해 복음을 전한 후, 지중해를 가르는 배에 탑승해 현재 터키 남쪽 지중해 연안 지방인 밤빌리아 도시 중 하나였던 버가로 이동합니다. 이전까지는 바나바를 가장 먼저 언급하며 팀의 대표임을 알렸지만, 13절부터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명칭으로 전환하며 전도팀 대표가 바울로 바뀌었음을 알립니다. 교회를 박해했을 뿐 아니라 스데반 순교의 공범 중 하나였다는 편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바울이 교회사 전면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고의 세월을 지나 새로운 사역을 시작한 바울이 맞이한 첫 번째 현실이 ‘갑작스런 이별’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가 요한이라는 동역자가, 자신을 파송했던 안디옥교회도 아닌, 집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며 전도 여정을 포기합니다. 구브로에서 보았던 말씀의 압도적인 승리감을 일순간에 가라앉게 만들었고, 향후 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갈등을 초래할 정도로 큰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전도팀은 지체함 없이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릅니다. 팀원 이탈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해발 2km에 달하는 고봉으로 이뤄진 험산준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차도로 200km 정도의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처에 강도와 산적들이 숨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우르스(Taurus) 산맥을 도보로 이동한 것입니다. 예수의 길을 걷고, 예수를 전하는 길을 걷는 전도자는 ‘그럼에도 더 나아가야 하는 지점’을 만나곤 합니다. 예측할 수 없고, 배신감이 느껴지며, 의견이 갈리고, 맥이 빠지는 지점에서 한 걸음씩. 그렇게 올라간 산맥 너머 도착한 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나아가고 더 나아가야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16-41절)

(16-19절) 바울이 일어나 손짓하며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과 및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들으라,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그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사십 년간 그들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바울은 일어나 손짓하며 시선을 모은 후 설교를 시작합니다. 본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의 첫 번째 설교문이기에, 그가 초기에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는지 알려줍니다. 그는 먼저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되어 사막을 지나 약속의 땅으로 이동했던 ‘출애굽 사건’을 다룹니다. 그는 하나님을 주어 삼으며 ‘역사의 주관자시고 인생의 주어되심’ 을 주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십니다. 높여 주십니다. 인도해 주십니다. 참아 주십니다. 기업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관념이나 정보나 적당한 위안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노예들을 택해 높여 주신 강력한 사랑입니다. 오해와 무시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사십 년간 참으신 인내인 동시에, 끝까지 사랑을 이뤄내시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는 능력이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점령 하에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를 이집트 노예 상태였던 과거의 지점으로 이어줍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상황이었기에,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같은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임을 전합니다. 그리고 강조합니다.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하나님 역사의 시작과 결과 사이에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0-22절)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그 후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람을 찾기 위해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사사와 선지자와 왕. 이름도 직책도 기질도 사역 내용도 달랐지만,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시며 자기 역사를 주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등장합니다. 22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났다’라고 번역된 ‘휴리스코’는 ‘관찰하여 발견하다’는 의미입니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찾고 찾으며 마주한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는 구절은 원문으로 ‘내 마음을 뒤따르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추구하고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마음보다 하나님 마음을 우선으로 두었던 것이 다윗의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뤄갑니다. 비록 그도 연약하고 실수하며 부족하고 추악했지만, 그럼에도 허우적거리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증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함이 아닌 순전함을 높게 보신 것입니다.

(23-31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가 오시기에 앞서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 발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아브라함의 후손과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그들 관리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그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지라,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그들이 이제 백성 앞에서 그의 증인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 즉 하나님 뜻을 따르고 이뤄갈 사람을 찾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역사를 주관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의 대표자로 세우십니다. 역사 속 수많은 인간 군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으셨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바로 예수라는 것이 바울이 전한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23절의 ‘이 사람의 후손’이라는 말은 사무엘하 7장 12절에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약속하셨던 통치자(네 몸에서 날 네 씨)가 예수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삼하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존경했던 세례 요한은 달려갈 길을 마치며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내 뒤에 오시는 이를 주목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매주 안식일마다 낭독했던 말씀들이 어떤 이야기의 맥락인지 살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마음보다는 자기 마음을 우선시 했고, 하나님 뜻보다는 자기 해석을 앞세웠던 안식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에 대해 말하면서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은 정죄 당하고 죽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할 것도 아셨기에 구약의 말씀들을 통해 고난을 예언하셨습니다. 오히려 이를 통해 인간 죄악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시고, 그럼에도 구원해 주신 인내와 능력의 사랑을 증명하십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님은 ‘부활’, 즉 ‘살아계신 분’입니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그 말씀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질서와 채움과 계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라는 생명의 말씀을 마주했고, 이것이 그의 삶에 ‘구원’이 됩니다. 세상과 자기 삶에 대한 맥락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삶에 채워졌으며, 자신이 그 도구와 통로가 되어 나아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경험한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구원의 말씀을 마주하기를 권면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증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32-41절)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이르시되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며, 또 다른 시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일렀으되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바울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함께 전합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하나님이 주어 되셔서 전해 주셨던 ‘약속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조상들로부터 이 약속이 성실히 이어졌음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구절을 인용합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는 시편 2편 7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주겠다’는 이사야 55장 3절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고 확실한 은혜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는 시편 16편 10절 약속을 통해 이 특별한 은혜는 부활과 영생이라 말하고, ‘일러줄지라도 도무지 믿지 못할 일이라 하며 멸망하게 되었다’는 하박국 1장 5절을 반면교사 삼아 믿기로 결단해야 함을 경고하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바울의 첫 번째 설교문을 묵상했습니다. 그의 설교는 편안한 책상에서 사색하며 나온 것이 아니라, 당황스러운 이별과 험산준령을 넘고 또 넘어서는 나아감 가운데 정리되었던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전하기 위해 역사를 탐구했고, 그 속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로 현실을 재해석하고, 기억하고 있던 말씀들을 그 이야기에 적용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는 막연한 누군가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오셔야만 했던, 우리를 구원해야 했던, 그리고 지금도 살아 있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여 하나님 뜻을 완성하신 분이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시고 인생의 주어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사람을 찾고 세우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이고, 높임 받았으며, 그분의 인도하심과 참아 주심에 기대어, 결국 있어야 하는 지점에 서게 될 것을 배웠습니다. 녹록치 않은 시기를 보내는 중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와 인생의 주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힘이 되어주심을 의지하며 ‘더 나아가야’ 합니다. 편견의 장벽을 허물고 복음만을 기준 삼아 사람을 세워야 합니다. 말씀을 깨닫고 체화시키며 전해야 합니다. 역사와 사회 속에 깊이 녹아있는 하나님 증언의 맥락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이 아닌 하나님 마음을 전하는 확신 있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러한 전도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불편하고 지난하며 버거운 현실을 견디고 극복하며 ‘더 나아가는’ 하루되기 원합니다. 편견의 장벽을 허물고 바울을 지도자로 세웠던 전도 공동체를 본받게 해주시옵소서. 내 마음대로 내 뜻을 이루려는 시도를 멈추고, 하나님 마음을 살피고 따라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해 복음이 이어지게 해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 역사의 주관자와 주어되사 뜻을 이뤄 가실 것을 신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바울 사역의 본격적인 시작이 마가 요한의 이탈이었음을 기억합시다. 그럼에도 전도팀은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견디고 이겨내며 나아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역사의 주관자시고 인생의 주어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와 ‘이 사회’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신지 살펴봅시다.
3. 바울은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맥락으로 정리해 설교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성경을 어떤 이야기로 소개할지 생각해 정리해봅시다.
4. 바울은 많은 구절을 근거로 예수님에 대해 전합니다. 좋아하는 구절들을 적어 봅시다. 그 구절들을 언제 어떻게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5. 완전함이 아닌 순전함을 높게 보시며 ‘마음에 합한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다짐하며 기도문을 적어봅시다.

'새벽기도 > 사도행전(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 14:1-18  (0) 2022.09.15
사도행전 13:42-52  (0) 2022.09.15
사도행전 13:1-12  (0) 2022.09.15
사도행전 12:1-25  (0) 2022.09.15
사도행전 11:19-30  (0) 2022.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