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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사도행전(새벽)

사도행전 27:1-26

사도행전 27:1-26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바울의 말로 인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사이에 큰 다툼이 생겼던 날 밤, 천부장의 명령에 따라 군영에 있던 바울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행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에서와 같이 로마에서도 주님에 대해 증언해야 한다는 사명은 마치 그를 단숨에 로마로 이끌어 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살해 음모를 피해 단숨에 가이사랴로 이송된 바울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미결수의 신분이었음에도, 그는 자그마치 2년의 세월을 갇혀 지내야만 했습니다(행 24:27). 
감옥에서의 2년을 하루 같이 여긴 바울에게 마침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 된 항해: 가이사랴에서 미항까지(1-8)
(1)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은 바울과 죄수들을 이탈리아로 이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송의 책임은 황제의 직속 부대인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겼습니다.  
미결수였던 바울과 달리 당시 이탈리아로 보내지는 죄수들은 이미 사형이 선고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중의 유희를 위해 원형 경기장에서 비참히 죽게 될 운명이었습니다. 율리오는 지체 없이 해상을 통한 이송을 시작했습니다.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아드라뭇데노는 소아시아 북서쪽 끝에 있던 항구도시였습니다. 아드라뭇데노 배는 그 지역에서 건조되어 그 도시를 출항지로 삼았던 선박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이 배는 수리아와 소아시아를 항해하는 무역선으로서 필요에 따라 여러 곳에 기항했습니다. 
율리오는 바울과 죄수들을 이 배에 태웠고, 정확히 어떤 신분으로 동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의 동역자 아리스다고도 승선했습니다.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이튿날 배는 시돈에 도착했습니다. 지중해 연안의 대표적인 항구였던 시돈에 정박한 배는 화물을 싣고 내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율리오는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어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하역을 마친 배는 다시 출항했습니다. 

(4-5)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시돈에서 소아시아까지의 항로는 구브로 남쪽 해안을 따르는 것이 최단거리였고 일반적이었습니다. 시돈을 떠난 아드라뭇데노 배 역시 이 항로를 이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불어 닥치는 거센 맞바람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이내 바람을 피해 구브로 섬의 동북쪽을 끼고 돌아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해안을 지나는 행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배는 2주 만에 겨우 무라에 정박했습니다, 무라에서는 좋은 소식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때마침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난 율리오는 죄수들과 함께 곧장 배를 갈아탔습니다. 이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까지 애굽의 곡물을 운반하는 대형 곡물 운반선이었습니다. 승선한 인원이 276명이었다는 사실(행 27:37)을 통해, 우리는 그 배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로 가는 일반적인 항로는 그레데 남방을 거쳐 가는 것이 최단거리였고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우회 항로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아드라뭇데노 배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대형 선박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배도 몰아치는 북서풍을 이겨낼 수는 없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는 곧 출항했습니다. 

(7-8)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알렉산드리아 배는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렀습니다. 순풍을 타면 이틀이면 도착할 거리를 여러 날이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이마저도 더욱 매서워진 바람으로 인해 더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더는 거센 바람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알렉산드리아 배는 그레데 섬을 바람막이 삼아 남쪽으로 돌아 간신히 미항에 도착했습니다. 
고된 여정에 지친 이들은 미항에서 잠시 숨을 돌렸지만, 예상보다 지체된 일정 탓에 이송 책임자였던 율리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광풍 유라굴로(9-26)
(9-10)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인들의 대속죄일로 양력 9월 말이었습니다. 당시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돌풍으로 인해 항해가 거의 불가능한 시기였습니다. 과거 난파의 경험(고후 11:25)을 지닌 바울은 배와 짐 뿐 만 아니라, 자칫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미항에 머물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율리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11-13)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
선장과 선주는 미항이 겨울을 나기에는 많은 불편이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동시에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뵈닉스 항으로의 이동할 것을 추천했습니다. 이곳은 겨울을 나기에 적합할 뿐만 아니라, 한쪽은 서남쪽을 다른 한쪽은 서북쪽을 향해 있어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음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는 할 수만 있다면 속히 로마에 도착하고 싶었던 율리오에게 솔깃한 이야기였습니다. 때마침 불기 시작한 순한 남풍에 율리오는 주저 없이 닻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14-17)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순풍을 맞으며 누렸던 출항의 기쁨은 잠깐이었습니다. 섬 가운데서 일어난 광풍 유라굴로는 순식간에 거대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마구 뒤흔들었습니다. 이전에 만났던 맞바람은 미약하게나마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지만, 유라굴로는 방향을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매서웠습니다. 이들은 해안선에서 밀려나 어디론가 떠밀려 가게 되었습니다. 
그레데 섬의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인 가우다 아래를 지날 때, 이들은 간신히 거루(거룻배)를 갑판 위로 끌어 올렸고, 밧줄로 선체를 동여 맬 수 있었습니다. 배가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고 있음을 눈치 챈 이들은, 북아프리카의 모래톱 스르디스에 걸려 파선될까 싶어 조금이라도 떠밀려가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닻(σκεῦος)을 내렸습니다. 유라굴로는 여전히 기세등등했습니다. 

(18-20)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광풍이 이틀째 계속되자 선원들은 생존을 위해 바다 위로 짐들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사흘 째 되는 날에는 없어서는 안 될 배의 기구들까지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더이상 배에 탄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그저 버티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아무리 무서운 광풍이라 할지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지나가기 마련인데, 유라굴로는 여타 광풍들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여기서 기자는 당시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여러 날 동안에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뱃사람들에게 해와 별은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또 그것들은 망망대해 칠흑 같은 어둠을 밝혀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기준점을 잃고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은 이내 절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1-26)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바울은 굶주린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선 바울은 지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배는 파손되겠지만, 생명에는 손상이 없을 것이라 선포했습니다. 그는 이것이 간밤에 자신을 찾아 온 하나님의 사자의 메시지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광풍 유라굴로 속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며칠이나 지났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절망했습니다. 
반면 동일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바울만은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가 약속의 말씀을 모든 것 위에 두고 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그가 가이사랴의 감옥에서 2년을 하루 같이 여길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았습니다.   

바울로 하여금 미결수의 신분으로 감옥에서 2년을 보내게 하시고, 광풍 유라굴로를 경험하게 하신 이유는, 그가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각 성과 각 마을을 다니셨던 것과 같은 이유였습니다(눅 13:22). 바울에게 이와 같이 고된 시간을 허락하신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276명(바울 포함)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행 27:44). 바울을 로마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도 이와 같았습니다.

주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하루하루를 해석해 가고 있는지 돌아 보면 좋겠습니다. 유라굴로와 같은 상황과 환경입니까? 약속의 말씀입니까?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유라굴로와 같은 상황과 환경을 마주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바울과 같이 말씀을 기준 삼아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결단하는 우리의 오늘은, 
틀림없이 누군가로 하여금 변질 된 삶을 청산하고 변화의 삶으로 이끄는 주님의 부르심이 될 것입니다. 


기도
힘이신 하나님. 2년간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에게 새로운 하루는 힘차게 시작되었지만, 이내 주어진 상황과 환경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게 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여정은 막연히 꽃길 위를 걷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먹먹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저희의 이름을 불러 주셨음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유라굴로와 같이 느껴지는 상황과 환경을 진리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석해 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희 삶이 그 누군가를 구원으로 초대하는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변질이 아닌 변화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아드라뭇데노 배를 타고 구브로 섬을 지나갈 때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2. 우리 삶의 광풍 유라굴로와 같은 것(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3.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절망하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4. 바울을 로마로 이끄시는 것과 같이 주님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계신 것 같습니까?
5.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오늘의 상황과 환경을 마주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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