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17:1-14

창세기 17:1-14
찬송가 102장 ‘영원한 문아 열려라’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란에 머물고 있었던 75세 아브라함에게 집을 떠나라고 하시면서 약속하셨습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 이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과 분가한 이후에 거처할 땅을 찾아야 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차지할 영원한 땅과 후손의 번성함을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때 아브라함은 아무리 많은 상급을 주셔도 그것이 자식이 없는 자신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자신의 종 엘리에셀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세 번째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공수표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이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앞서 두 번의 경우와는 달랐습니다. 단지 말씀으로 약속하지 않으시고, 암소와 양과 비둘기를 쪼개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를 ‘횃불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쪼개어진 짐승 사이로 타는 횃불이 지나갔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 언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횃불 언약식이 있은 후, 아브라함은 있었던 일을 아내 사라에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를 달리 해석하였습니다. 늙은 자신은 임신할 수 없으니, 자신의 여종을 남편 아브라함에게 주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온 지 10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사라의 여종 하갈이 아브라함을 통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았을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그리고 1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창세기에는 이 13년 동안 있었던 일을 전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이 13년이 흘러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며 언약을 맺은 사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1-2절)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을 강조하신 이유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이 여종의 몸에서 난 씨가 아닌 아내 사라의 몸에서 날 씨로 성취될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인데, 아브라함이 이를 목격하도록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는데, 그 언약을 사람이 스스로 완전히 행하여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완전히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때 그 언약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언약은, 쌍방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 즉 은혜 언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이 성취되도록,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3-8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왜 엎드렸겠습니까?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는데, 아브라함이 엎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린 이유를 유추해 본다면, 첫째는 아내 사라의 요구대로 여종 하갈을 취한 것에 대한 회개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들이겠다는 복종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엎드린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내 언약’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베푸시는 은혜 언약입니다.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은 이 언약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도록 해 주시겠다는 의미로 아브라함의 이름을 개명해 주셨습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 두 이름의 공통점은 ‘아브’인데 이는 ‘동일 혈통의 창설자 또는 서열이 높은 자’를 뜻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이름의 차이점은 ‘람’과 ‘라함’입니다. ‘람’은 ‘높고 힘있는’을 뜻합니다. ‘라함’은 ‘군중’ 또는 ‘열국’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과거 제한적 범위의 ‘높고 힘있는 존재’에서 앞으로 광범위한 차원의 ‘열국의 아버지’, 즉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개명한다는 것은 생애 큰 전환을 뜻합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개명할 때, 시몬이 베드로로 개명할 때, 사울이 바울로 개명할 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약속과 동시에 사명을 주셨기에 그들이 생애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생애 큰 전환점을 맞아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비록 외적 이름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새로운 본질을 의미하는 새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2절에 이어서 6절에서 재차 번성을 약속하셨습니다. ‘심히’라는 부사를 사용하시어 번성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브라함의 후손들과도 영원한 언약을 삼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 백성이 아닌 사람을 백성으로 삼아주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은 종국적으로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우리 스스로 성취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약속이 성취되도록 우리를 이끌어가십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께서 은혜 언약으로 주신 그 말씀을 지키는 일입니다.

언약의 표징이니라(9-14절)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요구에 할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례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십니다.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포피는 남성 생식기를 덮고 있는 피부입니다. ‘이를 베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할례가 언약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표징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언약의 백성임을 알리는 신체의 표시입니다. 그렇다면 왜 포피를 베어서 그 표시를 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사람이 신체에 무언가를 표시할 때 귀나 코를 뚫을 수 있고 낙인을 찍거나 문신을 새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으로 포피를 베어라고 하셨습니다. 남자가 할례를 받게 되면, 그 표시를 매일 보게 됩니다. 귀나 코에 구멍을 뚫으면 거울을 보아야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겠지만 할례는 거울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할례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늘 인지하도록 합니다. 사실은 육신의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가 더 중요함을 신약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할례의 대상과 시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上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할례의 대상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남자 외에 이방 사람까지 가능했습니다. 이방 사람의 경우에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할례 언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놓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할례의 시기입니다. 태어난 지 8일에 할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지만, 훗날 제정된 율법을 보면 산모의 부정한 기간 7일이 지난 다음 날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는(그리고) 한 주간이 지나고 새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 옛 것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날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 할례가 구원의 표징이듯이 신약 시대 세례가 구원의 표징입니다. 세례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은 후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나 새 삶이 시작됨을 의미합니다.

13下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원받은 백성의 표징이 몸에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표징이 몸에 있어야 합니다. 과거처럼 할례를 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례는 할례처럼 몸에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흔적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언약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구약 시대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이든 신약 시대이든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끊어지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주님 안에 있으며 예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흔적을 지니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목적으로 살아가십시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불변하시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가심에 감사드립니다. 저희 믿음이 약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일 년 또는 한 달조차 기다리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개명하심으로 언약의 확실함을 보여주신 아버지께서, 저희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자녀삼아 주셨음을 잊지 않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하시옵소서. 구원의 표징을 베풀어주신 하나님, 저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음을 잊지 않고 매일 하나님을 목적 삼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때를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2. 어떻게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해질 수 있겠습니까?
3.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었듯이, 나의 존재가 새로운 시작이 되었던 시점을 돌아봅시다.
4. 나에게 어떤 구원의 표징이 있습니까?
5.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언약의 백성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새벽기도 > 창세기(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18:1-15  (0) 2022.09.30
창세기 17:15-27  (0) 2022.09.30
창세기 16:1-16  (0) 2022.09.30
창세기 15:12-21  (0) 2022.09.30
창세기 15장 1절-11절  (0) 2022.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