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15장 1절-11절

창세기 15장 1절-11절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이 후에‘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오늘 본문은 성경 전체의 핵심에 해당되는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앞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앞서 조카 롯이 네 나라의 연합군에게 포로로 사로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람은 사병 조직을 이끌고 올라가서, 연합군을 물리치고, 포로로 잡혀간 조카와 사람들 그리고 재물을 되찾아왔습니다. 돌아온 아브람을 살렘 왕 멜기세덱과 소돔 왕이 환대하며 축복했고, 되찾은 재물은 다 갖되 사람만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전리품을 사양하면서 함께 싸운 병사들의 분깃만 취하겠다고 합니다. 당시 전쟁에서 승리자는 사람은 물론 전리품도 모두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동행한 병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분깃만 취했습니다.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휴대전화를 택시에 두고 내린 승객이 하차 뒤 2분 만에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돌려받았는데, 사례비로 1만원을 건넸더니 기사가 10만~20만원을 요구해 결국 5만원을 줬다는 사연이 게시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20만원을 심했고, 그렇다고 1만원도 아닌 것 같다, 5만원 정도는 적당하다’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렸습니다. 아브람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신앙인이 많아도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방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아브람의 삶은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존경받고 있습니다. 헤브론의 마므레에 살고 있는 그가 실제로 헤브론의 사람,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말씀대로 사는 진정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처음부터 헤브론의 사람으로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7절의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하란, 세겜을 거쳐 애굽에 도달했을 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자 아내 사래를 애굽 왕에게 양도했던 비겁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아내를 되찾게 되면서 그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애굽에서 나와 다시 가나안으로 온 그는 가축들 먹이 문제로 조카 롯과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는 조카에게 선택권을 먼저 양보했습니다. 기름진 땅을 택하고 떠난 조카 롯에게 서운한 마음이 가득한 그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땅과 후손을 약속하셨고, 이후 그는 헤브론에 정착했습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진정한 헤브론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임하셨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등장에 아브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하면 인간은 자신의 죄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죄인인 자신의 실상이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도, 다윗도, 이사야 선지자도, 사도 바울도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했다는 것은 공포감에 겁에 질려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두렵다’로 해석된 히브리 동사 ‘야레’ ‘경외하다’라는 뜻입니다. 경외는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심판자이신 동시에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제물로 내놓으실 만큼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한 아브람이 두려움에 휩싸인 것은 그로 하여금 일평생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방패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곤경에 처하면 구해주셨고, 곤고할 때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셨고, 적군과의 전쟁에서 방패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는 방패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이 앞서 소돔 왕의 전리품을 다 취하라는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람은 자신의 재물이 상급이 아니며,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땅 역시 상급이 아니고, 오로지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이 자신의 상급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시다’는 이 말씀을 세상적인 관점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은 나의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2~3)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람은 하나님을 향해 성경에서는 처음으로 ‘주 여호와‘로 고백합니다. 아브람이 헤브론의 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유는 바로 아브람이 하나님을 ’아도나이‘,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묵묵히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15장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마치 아브람이 하나님께 따지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해주겠다(12:2)’, ‘이 땅을 내 자손에게 주리라(12:7)’,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13:16)’라고 말씀하셨지, 누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경우,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가업을 물려받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양자로 들여서 가업을 잇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대에도 자식이 없는 경우, 양자에게 가업을 물려주곤 했습니다. 아브람은 아직 자식이 없었기에 충직한 종인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에게 가업을 상속해서 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4)’라고 확실하게 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늘의 별들만큼 내 자손을 주시겠다(5)’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자식이 없는 그로서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성경의 핵심 주제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는 바로 창세기 15장 6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인입니다. 아브람도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람을,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이 여전히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신 주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계속 이전의 잘못된 습관을 버리지 않고 세상적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아니면 비록 넘어질지라도 나를 믿어주시는 주님께 한걸음 더 가까이 가야 할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여전히 죄인인 나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신다는 이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의로운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의’라는 말은 ‘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세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계속해서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러자 아브람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8) 묻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해서 표적을 구한 것이 아니라 앞서 상속자가 누구인지를 물어본 것처럼, 언약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유학 중인 제가 처음 주님의 소명을 받았을 때, 저는 소명을 회피하고 도망쳤습니다. 소명 받은 것이 확실한가를 놓고 기도하는 저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셔서 제가 소명을 인정하게 해주셨습니다. 유럽 여행 중인 생면부지의 부부의 여행 일정을 어긋나게 하셔서 계획에도 없는 스위스 제네바로 오게 하셔서 저희 부부를 만나게 해주셨고, 그들 부부와의 교제와 기도를 통해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9~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삼 년 된 온전한 제물을 바치되, 작은 새는 쪼개지 않고, 나머지 동물은 모두 반쪽을 내어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게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제물을 준비했습니다.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사체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를 노리는 솔개나 독수리가 등장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아브람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제물을 노리는 솔개를 쫒았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습니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신 예수님을 사탄이 방해했지만,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고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지내기까지 한순간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새벽에 향품과 향유를 준비해서 예수님의 무덤에 간 그녀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한 증인이자, 부활의 소식을 전한 첫 메신저가 되는 영예(榮譽)를 얻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이 같은 영예를 얻게 했을까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제자들과는 달리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식을 보지 못한 아브람이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여기셨습니다. 믿음만이 나의 방패이시며 나의 지극히 크신 상급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게 해주신다는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믿되 신앙인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해서 시간이 갈수록 더 깊고 넓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성탄의 의미를 모르고 먹고 마시며 하루를 즐기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다는 이 사실을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조금만 힘든 상황에 처할 때면 예전의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나약한 우리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주님께서 인도해주신 삶의 자리에서 맡은 바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시간이 갈수록 방패이시오 지극히 큰 상급이신 주님과 바른 관계를 온전히 이루어가는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하십니까?
2.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4. 나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5. 주님께서 인도해주신 삶의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새벽기도 > 창세기(새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세기 16:1-16  (0) 2022.09.30
창세기 15:12-21  (0) 2022.09.30
창세기 14:17-24  (0) 2022.09.30
창세기 14:1-16  (0) 2022.09.30
창세기 13:14-18  (0) 2022.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