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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0:25-43

 창세기 30:25-43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야곱이 고향을 떠나온지 14년이 지났습니다. 첫 칠 년을 라헬을 얻기 위해 섬겼고, 두 번째는 라반의 계략으로 레아까지 얻어 칠 년을 더 섬겼습니다. 두 번째 칠 년 동안 야곱은 첩과 아내를 얻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동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어머니 리브가의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약속한 기간을 모두 섬기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내 고향 나의 땅으로(25-27)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이제 야곱이 라반을 섬기기로 한 기한이 모두 찼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고향으로 가도록 보내달라고 합니다. 야곱은 14년 동안 라반을 섬기며, 그에게 의존되어 있었습니다. 품삯 없이 라반의 가축을 치며 라반의 딸들에게 장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라반에게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도록 보내 달라고 합니다. 야곱이 ‘내 고향 나의 땅’이라고 하는 것에서, 야곱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올 때, 하나님께서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야곱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이제 그 땅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자유롭게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 였습니다.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야곱은 라반을 섬겨 그 댓가로 레아와 라헬을 얻었지만, 아직 원소유주인 라반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해야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얼마나 계약을 성실하게 이행했는지 누구보다 라반이 잘 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라반이 자신을 속였음에도 끝까지 라반을 섬겼습니다. 야곱은 간사한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그는 라반을 섬길 때 간사함 없이 진정으로 그를 섬겼습니다.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오기 전과 온 후로 라반의 재산에는 변화가 있었으며, 그것에 대해 라반도 부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반 또한 그 사실에 대해서 이렇게 진술합니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라반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을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라반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야곱이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반이 깨달았다고 할 때, ‘깨닫다’는 말의 원어는 ‘점을 쳐서 알게 되다’는 뜻도 있지만, ‘경험이나 관찰을 통해 알게 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실제로 야곱으로 인해 라반의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에, 라반은 눈에 보이는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이용해 야곱에게 마치 자신이 약자로서 자비를 구하는 듯이 야곱의 선량한 양심을 이용하려 듭니다.

그렇다고 야곱의 신앙을 쉽사리 추켜세울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야곱은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의 삶의 지향점이 단순한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려는데 있지 않고, 여호와께서 그의 조상과 자신에게 한 언약에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그는 형으로 부터 장자권을 가로챘고, 말년에는 애굽에서 여생을 마감함에도 가나안 땅의 조상들이 묻힌 막벨라 굴에 장사되기를 원했습니다.

지금도 야곱은 더 큰 성읍이나 비옥한 지역으로 가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원했다면, 브엘세바로 갔을 터인데 그는 세겜에서 거주했습니다. 그의 삶은 신앙적으로 화려하지도 성공적이지도 않지만,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땅을 향해 있었고 죽어서도 그곳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야곱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신앙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속적인 인물도 아니었으며 그의 말년의 고백처럼, 온몸으로 인생의 풍파를 맞아낸 현실 속의 신앙인이었습니다. 우리는 탁월한 신앙적인 삶은 살지 못하더라도, 현실 속에서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고 있어야 하는지 야곱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한번 신앙과 현실 사이를 헤매입니다.

네 품 삯을 정하라(28-34)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라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쉽게 말을 바꾸고 꾀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하는 말이 옳은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라반은 야곱을 품꾼 중 한 명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14년 동안이나 자기를 섬긴 조카이자 사위인 야곱을 마치 처음 만난 품꾼 중 한 명처럼 대합니다. 자신은 약자처럼 야곱에게 자비를 구하면서도, 야곱에게는 정해진 품삯에 따라 공정하게 하겠다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이 말에는 정당한 품 삯 외에는 한 푼도 너에게 줄 것이 없다는 야비한 속셈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의 속셈이 뻔함에도 그에게서 돌아설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야곱에게는 독립할 재산이 없었고, 아직은 그 아내와 자식들도 완전히 자기의 손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대로 라반과 계약이 끝난다면, 야곱은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갈 수 없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곱에게는 가족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갈 방안이 필요했습니다. 만일, 라반이 제안하는 것처럼 노동자의 품삯을 받게 되면, 대가족을 이끌고 돌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게 됩니다. 야곱이 마주한 현실은 라반이라는 간사한 인물로 인해 더욱 험난했고, 마치 자신이 뿌려놓은 덫에 빠져든 것 같은 좌절스러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치열한 경쟁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야곱은 가장 현실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평생 일하고 돈을 모아도 가족이 살 수 있는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야곱처럼 현실을 어떻게든 해쳐나가며 신앙 또한 붙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우리는 야곱이 어떻게 현실을 쫓아갔으며,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볼 수 있습니다.

(32-33)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야곱은 라반에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까지 수많은 계산과 묘안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묘안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대신 야곱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제시해서 라반을 안심시켜 그가 제사하는 계약을 수락하도록 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양과 염소 중에, 아롱지고 점 있는 것을 품삯으로 받겠다고 합니다. 야곱이 말한 종류의 양과 염소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들입니다. 점이 있거나 아롱진 것은 변종이거나 열성이기 때문에 개체수가 적습니다. 만약 아롱지고 점 있는 양과 염소의 값어치가, 일반적인 품삯보다 많았다면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반이 보기에도 이 계약은 다른 방법 보다 자기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 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계약을 이용해 자신의 재산을 늘리려는 계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야곱이 가족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품삯을 받고 섬긴다면 그의 귀향은 기약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그렇다고 지금 당장 라반을 떠난다면 가족을 책임질 방도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도 라반 못지않게 간사한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또한 그가 여호와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보여주는 것은 그가 처한 현실 속에서,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땅을 삶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땅을 주셔서 민족을 이루고, 그와 그 자손으로 모든 민족이 복을 얻게 하시겠다는 여호와의 언약이 있는 그 땅으로 가길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때에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자기의 시신이 그곳에 장사되기까지 그는 그 언약의 땅을 바랐습니다. 우리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무엇을 지향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야곱을 어떻게 평가하시고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다음 문단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34-43)

(34-36)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라반은 야곱에게 주기로 했던, 얼룩무늬가 있고 점이 있는 것들을 가려내서 자기 아들들에게 가져가 버렸습니다. 실제로 라반은 야곱에게 조금의 재산도 줄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라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야곱의 인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야비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그는 눈앞에 이익에 눈이 먼 사람처럼 보입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계략을 짰다면, 라반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라반에 뒤지지 않을 만한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야곱은 이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꾀와 방법으로 노력을 멈추지 않습니다.

(37-39)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마치 야곱의 계략이 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쓰는 방법이 효과가 있었던 것이 아님을 31장 12절에서 말씀합니다. 야곱이 만들어 놓은 나무 가지 때문에 얼룩지고 점이 있는 새끼를 낳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얼룩지고 점이 있는 수컷이 교배를 해서 새끼를 낳은 것입니다. 6년 동안 야곱은 같은 방법을 계속 썼고 심지어는, 더 튼튼한 것을 가지려고 다른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보이지 않는 대결에서 야곱이 이기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6년 동안 야곱은 매우 번창해졌습니다.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은 매우 번창했고,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까지 많아졌습니다. 양 떼를 나타내는 원어는 큰 무리의 양과 염소 떼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야곱은 이때까지도 자신의 수완으로 인해 자신이 이렇게 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31장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이 매우 번창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번창하게 하심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간사하고 자만한 야곱을 왜 인도하시며, 왜 번성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에게 그럴 만한 의로움은 없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인도하시고, 야곱은 그 하나님을 따르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삶의 지향점은 그가 처한 험악한 현실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그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라반은 삶의 지향점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두 사람의 지향점을 다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내려고, 입시에 취업에 결혼에 자녀교육과 노후로 아등바등하며 여느 사람들과 바를 바 없어 보이는 삶을 살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지향점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과 피로 새롭게 하신 언약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가 돌아오도록 하나님의 나라를 언약하셨습니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이 가리키는 본향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그러한 삶을 지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의 등불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이 현실 속에서 부르짖으며 눈을 들어 그 본향을 바라보며 사는 오늘 하루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야곱이 하란에 온 지 14년이 되었을 때, 다시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꾀를 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번창하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게 하셨습니다. 간사하다고 평가되는 야곱이지만, 그의 삶의 지향점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현실을 헤치고 나가기 버거워 때론 막막하기도 할 때가 있지만, 우리의 삶의 지향점을 잃지 않고 그곳을 향해 가는 삶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나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들어가는 그날까지 그곳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야곱은 라반을 섬기기로 한 14년이 모두 지났을 때, 그 이후로 어떻게 하기를 원했는지 묵상해봅시다.
2. 고향으로 가려고 하는 야곱에게 라반은 무엇이라 했으며 그가 그렇게 한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보고, 야곱과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시다.
3. 품삯을 정하라는 라반에게 야곱은 무엇을 제안했으며 야곱이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는 야곱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될 때 어떻게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4. 야곱은 매우 번창하게 되었는데, 야곱이 번창 할 수 있었던 이유와 그로 인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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