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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1:1-16

 창세기 31:1-16 


찬송가 440장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야곱 탈출을 감행하다(1-3)
앞선 30장에서는 31장으로부터 6년 전에 야곱과 라반이 야곱의 품삯을 정했던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반과 야곱은 양 떼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 검은 것, 염소 떼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서 야곱의 소유로 삼기로 결정했고, 이후 6년 동안 야곱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31장에서는 부자가 된 야곱과 이를 지켜보던 라반 일가가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고, 야곱이 라반을 떠나게 되는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2)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지난 6년 동안 엄청난 재산을 모은 것이 자기 아버지의 소유를 빼앗은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야곱이 아내의 몸값으로 처음 14년을 종살이 하면서도 한 푼도 모을 수 없었던 지난날과 품삯을 여러 차례 삭감했던 자기 아버지의 저열함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라반의 아들들은 그동안 야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덕분에 자신들이 야곱 곁에서 누렸던 번성의 복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하나님의 주권적 결과로 부자가 된 야곱을 시기하기 바빴습니다.
사실 라반의 아들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이미 6년 전에 라반이 야곱과 품삯을 두고 계약을 할 때, 모든 점과 줄무늬가 있는 짐승들을 골라 자기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야곱이 맡은 짐승 떼와 3일 거리를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야곱의 소유가 많아질 것을 대비하기 위해 라반 스스로 안전장치를 충분히 걸었던 계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성찰해보아야 하지, 벌어진 결과만을 두고 야곱을 시기한다는 것을 옳지 못합니다. 이런 결과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이 아니고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야곱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겉으로는 야곱이 라반 곁에 있으며 재산을 축적한 것 같지만 라반이 그동안 누렸던 번성의 복은 오히려 라반이 야곱을 곁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라반과 그 아들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원래 그들이 주어야 할 몫을 제대로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셨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저 불편함만 느꼈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사람의 타락한 본성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 느끼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본위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자기 주변을 둘러싼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읽으려 하며,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는가가 성숙함의 척도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신앙인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자기 주변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건강함을 지켜가야 합니다. 살다보면 인간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긋남 이면에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늘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다보니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라반과 라반의 아들들과 같이 눈앞에 보이는 것들만 신뢰하고 살아가는 일이 우리에게 없어야 하겠습니다.

라반의 아들들과 마찬가지로 야곱을 바라보는 라반의 눈도 변했습니다. 야곱이 느끼기에 라반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전과 달랐습니다.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았다는 2절을 직역하면, “라반의 얼굴이 야곱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같이 있을 마음이 없어져 적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3절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시는 말씀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과 정확하게 대조됩니다.

(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라반의 얼굴은 야곱과 더 이상 함께하지 않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까닭은 이제 그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 회피했던 현실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 땅이 내가 네게 보여줄 땅, 곧 미지의 땅이었던 데 반해 손자 야곱에게는 조상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계획을 야곱에게까지 착실히 이루실 계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속이는 자였던 야곱은 지난 20년을 라반과 함께 지내며 많이, 지긋지긋하게 속았습니다. 14년은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는 지참금 대신에 일했다고 치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꾼 기간은 마지막 6년에 집중되어 있을 것입니다. 말이 좋아 바꿨다는 것이지 삭감했을 것입니다. 밧단아람으로 오기 전까지 야곱의 인생에 인간관계에서 이토록 큰 시련이 있었겠습니까? 라반은 정말 지독하게 야곱을 이용했습니다. 이 세월이 무조건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이 시간을 통해 결국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지,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고,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았던 지난날의 자신의 모습을 진심으로 뉘우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소통하되 무조건 불신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부족한 가운데서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를 변화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이들과도 함께함을 믿으며, 신의로 대하며 목적으로 대하되 지나치게 기대거나 과도한 기대를 품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인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요한복음 2장 24절에,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으시고, 늘 신실하시며 자기 뜻을 한결같이 이루시는 하나님만이 의지의 대상이 되십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라반을 떠나기로 작정한 야곱이 그 첫발을 내딛습니다.

레아와 라헬을 설득하다(4-16)
야곱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의 아내들, 레아와 라헬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충성스러운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야했던 것처럼 레아와 라헬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작정해야 야곱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있는 들로 레아와 라헬을 부릅니다.

(5-9)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야곱의 말은 스스로를 피해자 내지는 희생 당한 사람으로, 라반을 가해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0년의 시간 동안에 한두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별별 어려움을 다 겪었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라반을 막으셨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음을 야곱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본문에 나오지 않지만 그가 라반 때문에 속앓이했던 그 수많은 시간 동안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처지를 신원해주시기를 간절히 부르짖었지 않겠습니까? 너와 함께하겠다 약속해주셨는데 야곱의 부르짖음을 못본 체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처럼 비열한 라반으로부터 가축을 강탈하여 야곱의 소유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지 못한 거래와 가진 자의 횡포로부터 약한 이들을 지키시고, 그들의 설움 섞인 기도에 응답하시며, 모든 것을 바르게 되돌려놓으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라반이 공정하게 야곱을 대하고 그에 상응하는 품삯을 지급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라반의 재산을 강탈하여 야곱에게 주는 오늘과 같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던 말씀을 야곱에게까지 이루셨습니다. 라반은 조카였던 야곱을 실질적으로 저주하다시피 대하여 그 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에게도 함께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위해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인생을 살아갈 때, 이 은혜가 함께합니다.
지금 야곱이 자기 아내들을 설득하는 대목에서도 야곱의 이야기가 많이 치우쳤다거나 까닭없이 아버지를 음해하는 내용이었다면 조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스스로의 지난날을 하나님 앞에서 정리하고, 그동안 라반의 횡포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라헬과 레아는 자기 아버지의 이야기임에도 야곱의 말이 맞다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14-16)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라헬과 레아도 야곱보다 더 긴 세월을 아버지와 함께하면서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겪어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야곱이 결혼을 위해 지불했던 지참금을 딸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는커녕 모두 자신이 챙겼습니다. 당시에는 신랑이 신부집에 지급했던 지참금의 일부를 신부의 몫으로 남겨두던 관습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죽고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 딸이 혼자서 살아갈 최소한의 방편을 마련하도록 돕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습니다. 라반은 그마저도 모두 자신이 챙겼던, 딸조차 자기 재산을 불리는 데 물건처럼 사용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두 딸들은 결혼 전에 목동으로 일했었지만 거기에 대한 몫도 챙겨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라헬과 레아는 아버지를 떠나 남편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에 동의합니다.
야곱으로서는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 무척 두려웠을 것입니다. 에서와의 해묵은 감정도 해결해야 하고, 그보다 앞서 자기를 죽이려고 들지 모르는 라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리하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하시겠다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을 유일한 위로이자 힘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야곱에게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혼자서 혈혈단신으로 아버지의 집을 떠나 들에서 잠을 청할 때, 자신을 찾아오셔서 지키시고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해주신 곳이 벧엘이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함과 동시에 바로 나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았던 곳이었습니다. 오늘 나에게 벧엘은 어디입니까? 내 인생 가운데 벧엘은 어떤 시점이었습니까? 내 인생 가운데서, 수렁에서 건져 올리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소망을 주셨던 때가 언제입니까? 그냥저냥 살아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경험했던 그 때를 기억하며 살아서나 죽어서나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시며, 우리와 함께하셔서 하나님을 중심에 놓고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함께하시는 은혜를 체험하는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순간에도 자기 백성과 함께하시고, 그 눈물 닦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임과 모든 것을 바로잡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임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말씀 따라 살아가는 힘을 공급하여 주시고, 주변 사람들을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을 어떻게 비난했습니까? (1) 그들의 비난이 잘못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의 핵심과 약속은 무엇입니까? (3)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는 어떻게 적용됩니까?
3.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요?
4. 야곱이 두 아내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던 까닭에 대해 묵상해보고, 오늘 나의 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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