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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1:17-42

창세기 31:17-42 


찬송가 446장 ‘주 음성 외에는’


야곱의 귀향 vs. 라반의 추격(17-24절)
오늘 본문은 가나안으로 돌아가려는 야곱과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라반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야곱은 20년 만에 고향 가나안 땅,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야곱은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설렜을 것입니다.
(17-18)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그 모은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일어나다’는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서 굳은 결단을 하고 행동에 옮기다의 의미입니다. 야곱은 아내들의 동의를 얻자마자 가나안으로 향하는 것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18절의 ‘이끌다’는 ‘강압적으로 내몰다’, ‘재촉하여 끌고 가다’의 의미입니다. 야곱은 마음이 굉장히 다급하여서 급하게 움직였던 것입니다.

야곱이 왜 그렇게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또 그때 라헬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19-20)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라반은 양털을 깎으러 나갔고,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서 야곱의 가족은 몰래 도망을 갔습니다.
당시 양털은 겨울이 지난 뒤 기온이 올라가는 봄에 깎았고, 목축을 하는 사람에게 양털 깎기는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추수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양털을 깎는 일에는 모든 가족이 동원되는 것은 물론 사람을 사기도 했고, 보통 3일 동안 이어졌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21-22)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야곱이 도망한 지 3일 만에 그 소식이 라반에게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라반이 야곱과 계약을 맺으며 두 사람 사이가 사흘 길이 되도록 했기 때문이었습니다(30:36). 즉 누군가가, 라반이 심어놓은 사람이 야곱이 도망가자마자 라반에게 달려가 그 소식을 전했던 것이었습니다.

(23)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라반이 그의 형제(일가친척)들을 동원해서 야곱을 7일 동안 추격해서 야곱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10일 동안 도망간 것이었습니다.
야곱이 떠난 밧단아람과 도착한 길르앗은 약 480km 정도라고 합니다. 야곱은 매일 48km씩 도망을 간 것이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가 약 400km가 됩니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려고 하면 2주일(보름) 정도 걸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려면 매일 25-30km씩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10일 만에 480km를 도망갔습니다. 그것도 청장년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이부터 노년까지의 사람이 다 있었고, 가축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열심히 도망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반은 하루에 약 70km씩 쫓아갔습니다. 라반이 복수의 칼날을 깊이 갈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걸어서는 그렇게 갈 수 없고, 말이나 낙타를 타고 추격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야곱 일행이 시야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일단 추격을 멈추었습니다. 눈에 보이기 때문에 내일 또 쫓아가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라반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말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선악간’의 문자적인 의미는 ‘선으로부터 악까지’입니다. 즉 야곱이 너에게 ‘가장 잘한 일부터 가장 못한 일까지’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라반의 추궁(25-35)
25-35절은 라반이 야곱을 추궁하는 내용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25-26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마침내 라반은 야곱을 따라잡고서, 그 곁에다 장막을 쳤습니다. 라반의 추궁내용은 몰래 도망갔다는 것이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내 딸들’을 끌고 갔다며 소리를 높였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라반의 딸들을 끌고 간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들과 함께 갔던 것입니다. 라반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라반은 자기 딸들이 야곱과 결혼한 것을 사랑의 결실로 본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 일꾼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결혼했음에도 아들에게 집착하여 아들을 남자로 어머니와 이에 반발하는 며느리 사이의 갈등을 그린 ‘올가미’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유명한 카피가 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넌 내 아들에게 사준 장난감에 불과해.”
라반은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내 딸들에게 붙여준 머슴에 불과해.” 라반에게 야곱은 사위로 보이지 않고 자기 집의 머슴이나 일꾼 정도로만 보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자기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다”라고 했습니다다. 그 말의 문자적인 뜻은 ‘전쟁에서 패한 포로를 끌고 가듯이 갔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라반의 억지였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딸과 결혼한 것은 14년간의 노동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라반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14-16절을 보면, 딸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길, “우리는 아버지에게 받을 유산도 없고, 아버지는 우리를 팔아먹었고, 우리에게 줄 돈도 가로챘다”라며 자발적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라반은 나에게 미리 말했다면, 악단도 불러서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너는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미리 말했다면 잔치는커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아두려고 했을 것이고, 착취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라반이 도망가는 야곱을 또 그렇게 먼 거리까지 악착같이 추격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그것은 야곱이 라반의 드라빔을 몰래 도둑질하여 갖고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모하다’의 문자적인 의미는 ‘수척하다’, ‘창백하다’입니다. 야곱은 자기의 고향으로 몹시 돌아가고 싶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드라빔’은 가문의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하는 우상이었습니다. 드라빔은 나무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은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라헬은 왜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을까”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드라빔은 점을 치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라헬은 이미 아버지에 대한 신뢰는 없었습니다. 자신과 남편이 도망을 가는데 드라빔이 자기네들의 도망가는 길을 아버지에게 알려주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에 상당히 가격이 나가는 우상이었습니다. 자기 남편 야곱이 아버지에게 착취당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에 가지고 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출발한 밧단아람에서 가려는 가나안까지는 약 800km나 되었습니다. 그 먼 거리를 가는데 라헬은 두려웠을 것이고, 드라빔이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이 드라빔을 갖고 왔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그것을 찾으면 그 사람은 살지 못할 것(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단언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라반의 수색이 시작되었습니다.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반의 수색 순서는 야곱, 레아, 두 여종(실바, 빌하) 그리고 라헬이었습니다. 이 순서는 의심이 많이 가는 사람에서 적게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반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라헬은 갖고 가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라반은 라헬이 자기와 똑같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라반은 야곱 가족의 장막 속을 다 뒤졌지만, 드라빔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이러하였습니다.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 안장 아래에 숨겼습니다. 오토바이 안장 아래에 상당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 여러 물건을 둘 뿐만 아니라, 헬멧도 둘 수 있습니다. ‘낙타 안장’은 낙타를 탈 때, 위에 두고 앉는 광주리나 요람과 같은 형태의 공간이 있는 안장이었었습니다. 그 안장 위에 카펫을 깔고서 앉았습니다. 그래서 안장 아래에 드라빔 정도는 충분히 감출 수 있었습니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라반은 낙타 안장 아래는 찾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생리 중인 여성과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 여성이 잡은 물건도 부정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안장을 수색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것은 그것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드라빔을 깔고 앉아 있습니다. 드라빔에게 신적인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신적인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믿지 못할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 깔고 앉기도 하고 믿기도 합니다. 모순입니다.

야곱의 항변(36-42절)
야곱은 드라빔을 찾지 못한 라반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왜 나를 급히(불길처럼) 달려드십니까?”라고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외삼촌의 집에서는 아무것도(숟가락 하나도) 갖고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암염소나 암양을 낙태하지 않았다는 것은 양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돌보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숫양은 젖과 새끼를 제공하는 암양보다 경제적인 가치가 작았습니다. 그래서 숫양은 목자가 제사나 손님 접대를 위해서 임의로 한 마리씩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사실도 있었습니다.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당시 맹수가 와서 가축을 죽이는 것과 같은 일은 목자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계약서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맹수에게 물려 찢겨 죽은 것도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서 배상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둑맞은 물어내야 했습니다. 라반이 청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은 가축들이 손해가 있을 때마다, 야곱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도 손해배상을 청구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야곱은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와 싸우며 눈붙일 시간이 없었다고 합니다. 밧단 아람은 아라비아 사막의 북쪽 끝에 위치했기 때문에 40도가 넘는 일교차는 야곱을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야곱의 삶에도 불구하고 라반은 야곱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않았습니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품삯을 10번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10이라고 하는 히브리 숫자는 만수(滿數)입니다. 10번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10번일 수도 있지만, 자주, 여러 번, 기회가 생길 때마다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42절의 고백은 지금까지의 야곱의 생애 중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야곱은 자신의 재산축적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참 귀한 고백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용기이자 소망입니다. 그 주님을 향해서 눈을 드는 한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은 외삼촌이자 장인인 라반의 집에서 두 아내를 얻기 위해서 14년, 그 후로도 6년 등 20년 동안 온 힘을 다해서 일했지만, 라반은 야곱을 생질로도 생각하지 않았고, 사위로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야곱에게 힘과 소망이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간 내내 함께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우리 삶의 자리에 함께하고 계시는 주님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고 있을 때도 주님은 함께 하고 계시며,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주님은 함께 하고 계시는 것을 늘 새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그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야곱이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라헬은 아버지의 드라빔을 가지고 갔습니다. 당신의 믿음 생활 가운데 때로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라반은 자신의 생질이자 사위인 야곱과 20년을 함께 살았음에도 그를 일군이나 머슴으로만 여겼습니다. 당신의 삶 가운데 관계를 새롭게 정리하고 세워주어야 할 사람이나 일은 무엇입니까?
3. 야곱아 라반의 부당한 대우에도 20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주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4. 눈을 들어 하나님을 목적 삼으며, 늘 함께 계시는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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