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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2:1-20

창세기 32:1-20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라반의 집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야곱은 끝내 잡히고야 말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아버지 이삭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야곱의 일생일대 커다란 위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쌍둥이 형 에서가 부하 400명을 이끌고 동생 야곱을 향해 나아오고 있던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400명은 적어도 야곱의 가족들을 호위하기 위한 자들은 아닐 것입니다. 에서를 향해 초조한 마음으로 행진하던 야곱은 에서를 만나기 전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보호의 표시를 주심 (1-2절)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란, 천사들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야곱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천사들을 보내어 야곱을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무언가를 잘했다거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서 천사를 만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심정이 형 에서로 인해 얼마나 불안한지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이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천사들을 보내어 주심으로 위로와 용기를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야곱은 20여 년 전에도 벧엘에서 천사들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천사를 만난 것에 이어 하나님의 언약을 듣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요약하면 “너에게 땅을 주겠다, 네 자손을 번성하게 해 주겠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입니다. 20년 만에 다시 천사를 만난 야곱은 벧엘에서의 언약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협적인 라반의 손에서 건짐을 받은 것이 자신의 능력이나 운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기인했음을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협적인 에서와의 만남 속에서도 벧엘에서의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하나님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험난했던 야곱의 인생 가운데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은 광야 같은 우리의 삶에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에서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 두려워하던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사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인생 가운데 벧엘 언약이 깊이 새겨진 만큼 우리의 삶에 먼저 찾아오셨던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야곱은 천사들을 향해 하나님의 군대라고 말하며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두 개의 진영’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진영과 야곱의 진영을 가리키며 한곳에 머무르는 진영이 아니라 움직이는 진영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군대가 자신이 향할 고향 땅까지 함께 움직이며 보호해 줄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야곱은 이제 자신의 진영을 신실하게 이끌어 가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야곱을 더욱 긴장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의 메시지를 담아 사자들을 보내게 됩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사자를 보냄(3-6절)
(3-5)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메시지를 통해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는데, 첫째는 야곱이 그 동안 에서의 뒷전에서 일을 꾸미고 있던 것이 아니라 라반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미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으니 결코 자신의 유산을 챙기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이 두 가지를 알리며 형의 적대감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기대와는 달리 사자로부터 의외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당시 정황을 고려하면 400명은 상당한 규모의 군대입니다. 성경은 에서가 그 많은 부하를 이끌고 온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지만 결코 야곱이 듣기에는 희소식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에서를 만나기 위한 야곱의 준비(7-12절)
(7-8)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소식을 들은 야곱은 두려움 가운데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싸울 수 없는 병력이며 그렇다고 라반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의 재산을 두 패로 나누었습니다. 에서가 한쪽을 치게 되면 남은 한쪽은 피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의 방법만을 취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모진 풍파를 겪어온 야곱은 자신의 인생과 자신에게 속한 가속들을 자력으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야곱이 겪은 거센 풍파는 그토록 이 땅만 바라보았던 시선을 눈을 들어 하늘로 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고난이 그저 고난으로만 끝나면 너무나 허무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과정이 되었다면 인생의 보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크고 작은 고난들이 있습니다. 라반과 에서와 같은 자들이 우리의 인생을 가로막거나 위협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고난에 좌절하기보다 담대히 직면하여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쓰디쓴 고난이 유익한 보약이 되어 우리의 삶을 성숙시킬 것입니다.

자신의 꾀와 경험만 의지했던 야곱이 인생의 보약을 삼킨 뒤 드디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9-10)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베푼 선하심을 먼저 언급한 다음,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은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떠났던 자신이 이제 “두 떼”나 소유한 큰 부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주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너무도 작고 나약하며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고백은 야곱이 드린 기도 가운데 너무나 값지고 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힘겨운 인생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 기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하나님께 받은 은총이 받을만해서 받게 되었다는 생각을 청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고백이 나올 때까지 모난 마음을 다듬으시고 잔뜩 힘이 들어간 고개를 숙이게 하시며 겸손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내 인생을 움켜쥐었던 손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 하나님을 목적 삼는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야곱은 이제 절박한 마음으로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특히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야곱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절박한 심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야곱이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형 에서가 자신을 해할 뿐만 아니라 아내들과 자식들까지도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할 뿐 아니라 한번 하신 말씀을 번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와의 만남을 앞둔 상황에서 야곱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이 상황을 직면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며 기도를 드린 야곱은 이전처럼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인해 안일하게 처신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매몰되었다면 적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는 하란으로 돌아가거나 약속의 땅을 포기하여 다른 길로 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봄과 동시에 침착하게 방법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서를 위한 야곱의 선물(13-20절)

(13-16)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야곱이 찾은 작전은 에서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혹자는 이 방법에 대해 순수하지 않다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야곱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에서에게 준 짐승의 숫자가 550마리에 달했다고 하는데, 단순히 짐승을 갖다 바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서에게 전달할 가축들을 떼로 나누고 각 떼마다 거리를 두게 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어릴 적부터 임기응변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자기보다 더한 라반을 만나 모진 고난을 겪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한층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짐승을 세 떼로 나누어 에서에게 전달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선물을 받게 되면 에서의 마음이 풀어지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적으로는 이 선물들을 접수하는 에서의 행렬은 현저히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물로 에서의 마음을 돌리고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는 야곱의 치밀한 계획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전달할 종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담게 됩니다.

(17-20)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은 자신의 종들이 에서를 만났을 때 받게 될 질문을 예상하여 그에 맞는 답변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스스로를 에서의 종이라 표현하며 제물을 바치려 합니다. 이는 자신과 가속들의 생명을 지킬 수만 있다면 자신을 낮추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며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언약을 바라보는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야곱의 인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위기가 빗겨 가거나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19와 같은 고통스런 삶의 무게를 세상 사람들과 함께 견뎌야 합니다. 그럼에도 참 감사한 것은 고통과 두려움 속에 매몰되지 않는 비결을 야곱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벧엘에서 말씀하시고 마하나임에서 그 언약을 붙들게 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2천년 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십자가 희생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의 언약을 오늘도 기억하라고 말입니다. 벧엘 언약을 기억하여 정신을 차린 야곱처럼, 십자가 앞에서 주님이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며 통곡했던 베드로처럼 우리의 삶에 자리에서 붙잡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일 것입니다. 지금 이 기도의 자리에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사랑의 언약을 붙들고 오늘도 하나님 사랑의 증인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교우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얼마나 정확하고 놀라운지를 보고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붙잡아주셨던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인생도 붙잡고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두 귀와 두 눈을 고정하게 하사 두려움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더 깊이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맡겨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 사랑의 증인이 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위기를 만난 야곱이 두려움에 매몰되지 않았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2. 야곱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구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3.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한 뒤에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4. 우리의 삶에 모진 풍파가 불 때 그것을 어떤 기회로 삼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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