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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1장 43-55절

 창세기 31장 43-55절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베스트팔렌 조약, 베르사유 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 등 역사적인 평화 조약들이 있습니다. 이 조약들은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국가 간에 평화가 유지되게 하는 큰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이 땅의 전쟁과 평화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도 인간관계 속에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누군가와 갈등을 맺을 수도 있고 싸움이 일어날 때도 있지만, 어떻게 잘 화해하고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이 그 사이에 계심을 기억하고 평화를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그 사이에서 증인이 되어 주시기를 바랐던 라반과 야곱의 언약에 대해 말씀합니다. 도망갔던 야곱 일행을 뒤쫓아 만남으로 라반과 야곱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서로의 안전을 위해 언약, 곧 불가침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라반과 야곱의 언약(43-49절)

(43-44)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라반은 야곱이 가진 모든 것과 그의 아내들과 자식들이 모두 자기 것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습니다. 그는 아마도 야곱의 부와 번영이 자기 집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논리를 펼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자신을 떠나겠다고 말했다면 절대 그냥 보내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 전 꿈에 나타난 하나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야곱 일행을 보내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지난날이 어찌 됐든 이제는 좋은 추억만 가지고 헤어지자는 취지로 계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 라반이 언약을 세우고자 했던 목적은 첫째, 재산 상속권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함이고, 둘째, 훗날 야곱이 강성해진 후에 지금까지 자신이 행했던 악행에 대해 보복할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야곱이 도망간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보내주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림으로써 야곱을 박대하여 도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조약 체결의 방법이 등장합니다.

(45-46)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라반의 제안에 야곱은 흔쾌히 인정하고 돌을 가져와 기둥을 세웠습니다. 당시 두 집안이나 두 국가 사이에 언약을 체결할 때는 돌을 세워 놓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대표 기둥을 먼저 세우고 이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돌을 가져다가 쌓도록 했습니다. 당시 증인은 사람으로만 제한되지 않고 돌기둥 또는 돌무더기 등도 증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두 사람의 언약에 하나님이 개입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47-49)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라반은 여갈사하두다라고 불렀고, 야곱은 갈르엣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갈사하두다는 성경에서 최초로 쓰인 아람어 단어이며, ‘증거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갈르엣은 히브리어로 역시 ‘증인의 무더기’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기록으로 볼 수 있습니다. 미스바는 ‘자세히 관찰하다’라는 단어 ‘차파’와 장소, 수단을 가리키는 단어 ‘미’가 결합된 ‘망루’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라반과 야곱이 헤어진 후에 서로 맺은 언약에 대해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는가를 하나님께서 망대에서 살펴보는 파수꾼처럼 감찰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 미스바는 훗날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을 일으키던 중요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라반은 다시금 하나님이 증인 되어 주시기를 바라며 야곱에게 진지한 당부의 말을 합니다.

증인되시는 하나님(50-55절)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두 사람만의 약속,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증인 되시는 언약임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라반은 조카 야곱이 자신의 딸들을 박대해서는 안 되고, 또한 두 딸 외에 다른 아내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하나님을 증인으로 세워 강조합니다. 이 약속대로 야곱은 앞으로 다른 아내를 구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어서 서로 그곳을 넘어 침범하지 말자는 내용의 약속을 언급합니다.

(51-52)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이 증인이 되실 뿐만 아니라 돌기둥과 돌무더기가 두 사람 간의 언약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 한쪽이 먼저 침범하게 되면, 평화는 이내 깨지게 되고 곧 전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평화 조약은 잘 마무리가 됩니다.

(53-54)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음식을 먹는 것은 쌍방이 계약을 체결하고 맹세했던 신들 앞에서 언약을 잘 이행할 것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두 사람은 언약 체결 후에 함께 먹고 마시고 화해하며 기쁨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러한 평화 조약으로 인해 두 가문은 좋은 관계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라반은 비록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꿈속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두려움과 또한 하나님을 향한 기대와 바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서 믿음의 사람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 삶에서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체험을 통해 깨닫고 고백헐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욱 겸손히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라반의 인사와 축복으로 본문은 마무리가 됩니다.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라반은 일이 잘 해결된 것에 기뻐하며 딸들과 손자들에게 입맞춤의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축복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라반은 지난 20여 년 동안 야곱을 이용했습니다. 야곱 역시 당하고만 있지 않고 외삼촌 라반을 향해 복수하듯 결과적으로 그를 이용했으며, 그 근본은 자신의 욕심이었고, 욕망이었습니다. 그런 연약함과 죄성을 가진 야곱이었음에도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아 주시고, 믿음의 혈통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봅니다.

우리 역시 믿음으로 하나님과 언약 관계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존재,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언약이며 은혜의 언약입니다. 이 은혜의 언약을 기억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라반과 야곱 사이에 계셨던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말미암아 막혔던 담을 십자가로 허물어 주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사역을 늘 기억하며 감사하며, 우리 역시 이 땅에서 평화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는 1202년에 중병을 앓은 후로 일생을 오직 가난한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며 자신은 평생을 걸인처럼 살면서 주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어느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밤 누군가가 프란치스코의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초라한 걸인이 비에 온몸이 젖어 추위에 떨며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그를 안으로 데리고 간 프란치스코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한센병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너무 배가 고프다며 저녁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고름이 흐르고 썩은 냄새가 나는 환자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개의치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막 잠들려고 할 때, 그 걸인이 다가와 너무 춥다며 같이 잘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결국 그 한센병 걸인과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걸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지만 프란치스코는 오히려 그 걸인을 자신의 두 팔로 안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녹여 주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 되어 프란치스코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옆자리에 누워 자던 걸인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 이상하다 싶어 다시 잠자리를 살펴보았는데 그 사람과 같이 잔 흔적 자체가 없었고, 오히려 방안은 깨끗하고 빛이 나며, 냄새마저 향기로웠습니다. 그 순간 프란치스코는 상황을 깨닫고,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주님께 그의 침상에서 영혼으로 부르짖으며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기도가 바로 유명한 '평화의 기도'입니다. 올 한해가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갑니다. 새해가 되면 한 번쯤 읽고 듣는 이 기도의 내용처럼 우리가 밟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기를 바라며, 일평생 우리 역시 그런 평화의 도구로 드려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하나 됨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라반과 야곱의 언약을 보며 우리 역시 하나님이 증인 되시는 삶을 살고,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전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연약하여 항상 우리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나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올 한해 더욱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분열이 있는 곳에 하나 됨을 이루어내는 평화의 도구로 쓰임 받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기 위해 더욱 더 우리가 말씀의 사람이 되며, 생명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어 기도하는 하루하루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믿음의 사람을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나의 인생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떠올려 봅시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십니다. 나의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개입과 도우심이 필요한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3.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라반과 야곱은 평화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필요한 이 민족과 열방의 나라는 어디인지 묵상해 봅시다.
4. 눈을 들어 더욱 주님을 바라보며, 평화의 도구로 드려지기 위해 오늘 어떠한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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