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창세기 36장 7절에 보면 에서와 야곱은 서로 가축과 재물이 풍부하여 서로 함께 할 수 없어 에서는 세일 산에 거주하게 되었고, 야곱과 그 자녀들은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는 배경으로 오늘 말씀이 시작됩니다.
요셉과 형제들(1-11절)
(1-2)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야곱의 가족은 재물이 풍부하였고,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족보를 설명하는데, 나이 순서대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 먼저 나오고, 형들에 대해서는 그저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야곱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유독 요셉을 더욱 사랑하였습니다. 요셉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도 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라엘에게서 낳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편향적인 사랑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힌 것으로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채색옷은 소매가 있고 발까지 가려지는 긴 옷으로 평상복이 아닌, 예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는 유목사회 인데 채색옷은 목동 일을 하는 사람이 입고 다닐 수 없는 옷입니다. 이러한 편애 때문에 요셉의 형들은 그를 미워하였고, 요셉은 어릴 때부터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했기에 미움을 더욱 많이 받아 결국 본문 4절처럼 형들은 요셉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사이가 되었습니다.
분명 야곱은 믿음의 가정이지만 문제는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창세기 34장에서 디나가 세겜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아버지 야곱과 전혀 소통하지 않고, 자신들의 결정으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들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되어 있었다면 대화로 모든 일을 풀어갈 수 있었을 텐데 대화의 단절은 결국 그들의 갈등을 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창세기 35장에서는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는 성적 타락을 보여줍니다. 이것 역시 당시 야곱 가정이 겉으로는 물질의 복을 받았을 수는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대화의 단절과 올바르지 않은 가족관계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의 가정에 이렇게 불편한 기운이 흘러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은 자신이 어머니의 편애로 인해 고통을 받았음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머니 리브가의 편애로 인해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별해야 했고, 형 에서를 피해다니며 불안해 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문제를 또 반복하였고 결론적으로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지만 결국 이 일로 인해 요셉을 멀리 떠나보내게 되었고, 나이가 들어 추후에 만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사실 어느 부모라고 할지라도 다수의 자녀를 동일하게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숙한 부모라면 특정 자녀를 사랑하는 모습을 드러나게 하거나 차별하는 모습을 나타내서는 안 됩니다. 야곱은 이러한 면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고, 이로 인해 다른 아들들과의 관계는 더욱 나빠져만 갔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가정은 겉모습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가족관의 소통이 원활해야 하고, 서로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물질의 복이 그 가정의 행복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의 가정은 어떠하십니까? 야곱의 가정처럼 서로 소통이 없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느 날 요셉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형들에게 말을 하게 됩니다. 고대 근동 종교와 문화에서 꿈은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통상 꿈이란 신들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전달 방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종종 하나님께서 꿈과 환상을 통해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요셉이 꾸었던 꿈은 무엇이었고, 왜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는지 본문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6-8)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요셉의 첫째 꿈에서는 형들의 단이 요셉의 단에게 절을 했습니다. 이것은 형들이 후에 요셉에게 모두 절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의 꿈이었습니다. 형들도 이 꿈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에게 화를 내며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하며 더욱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의 꿈은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꿈으로 이어집니다.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두 번째 꿈에서 해와 달 그리고 별 열한 개가 그에게 절했습니다. 이번 꿈에서는 형제들뿐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상징하는 해와 달까지 요셉에게 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형들을 넘어 온 집안이 그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과 아버지가 요셉을 꾸짖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내심 억울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은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라 꿈을 꾼대로 말했을 뿐인데 형들과 아버지가 자신을 꾸짖은 것입니다.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0-11)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형들은 요셉의 말에 시기하였고,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나무라면서도 그 말을 간직하였습니다. 간직하다라는 말은 단지 그 말을 흘려 들은 것이 아니라 그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야곱 역시 창세기 28장에서 잠들었을 때 꿈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이 있었기에 요셉의 꿈을 마음에 간직했을 것입니다. 형들이 요셉을 미워하고 있는 감정이 커져가는 가운데 어느 날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로 보냅니다.
형을 찾아 떠나는 요셉(12-17절)
(12-13)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야곱의 가족이 거주하던 헤브론 골짜기에서 세겜까지는 팔십 킬로미터 정도 거리입니다. 십칠 세의 소년이 홀로 가기에는 3일에서 4일은 가야 하는 거리이기에 부담스러운 거리입니다. 형들이 이렇게 멀리까지 길을 떠난 것은 당시 주변에 기근이 심해 짐승들을 먹이기 어려워 먼곳까지 양떼를 먹이기 위해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잘 있는지 보고 돌아와서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먼 길을 걸어 세겜에 도착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형들도 양떼를 먹인 후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을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요셉에게 어떤 사람이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5-17)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방황하는 요셉에게 어떤 사람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물었고, 요셉은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이 사람은 요셉의 형들이 이곳에서 도단이라는 곳으로 떠났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도단은 세겜에세 약 21킬로미터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며,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하루는 족히 걸어야 할 거리였습니다. 이미 몇 일을 걸어와서 지쳤을 요셉이지만 형들을 찾아 도단으로 가서 드디어 만나게 되며 오늘 본문은 마무리가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은 형들에게 있어서는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그대로 아버지에게 전달하는 불편한 존재이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형들에게 악의를 가지고 행동했던 적이 없습니다. 먼 길을 가서 형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왔지만 형들은 이후에 보호해야 할 자신들의 동생을 오히려 생명을 해하려 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형들을 사랑하지 않고, 보해야해 할 때 보호하지 않았던 것처럼 형들도 요셉을 보호하지 않은 것입니다. 야곱의 가정에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이들에게 물질의 복은 있었을 수 있으나 사랑과 신뢰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형들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고,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발견하면 이해하고 덮어주기보다 아버지에게 전달하였으며, 형들도 요셉을 시기하며 미워했습니다. 이 가족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섬겼다면 이들에게 사랑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셉의 꿈을 들을 때에도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신뢰하였다면 모두가 그 꿈을 믿고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와 미움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 가정 안에는 사랑이 아닌 시기와 질투뿐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각자의 가정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가정이라고 하면서 우리도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않고 사랑이 없는 가정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는 다시 말씀 앞에 올바로 서서 각자의 가정을 먼저 믿음으로 올바로 세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을 깊이 나누어야 합니다. 오랜 시간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바로 실행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공동체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각자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하겠습니다.
기 도
하나님, 야곱에 가정에 물질의 복을 주셨지만 가정 안에는 사랑이 없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형제들의 관계 속에 하나님이 계셨다면 이들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신지 우리 주변의 관계들을 돌아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모습들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 주님의 말씀으로 올바로 서서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야곱은 요셉을 더 사랑하였고, 어떤 옷을 입혀 주었습니까?
3. 요셉의 꿈을 들었던 형들과 아버지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4. 각자의 가정에 사랑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위해 오늘 내가 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 묵상해보고 실행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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