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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40:1-23

 창세기 40:1-23 


찬송가 325장 예수가 함께 계시니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네 명의 믿음의 족장(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중 마지막 족장인 요셉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아들이었으나, 형들의 미움과 시기로 일순간에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낯선 이방(애굽) 땅에서, 의지할 이 하나 없는 수많은 노예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은 곧 바로의 친위 대장 보디발의 눈에 들어, 그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보디발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고 계심을 보고는, 요셉을 그의 가정의 총무로 삼아 자신의 소유를 다 맡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게되는데, 이를 피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오해로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일순간 그는 노예에서 죄수로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참으로 불쌍한 신세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으로 자신까지 은혜를 받게 되자, 곧 요셉에게 감옥 안의 죄수들을 모두 맡겼습니다. 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들을 처리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요셉과 함께 투옥된 두 명의 관원장(1-4)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본문은 ‘그 후에’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시점을 명확히 밝히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감옥에 갇힌 요셉이 간수장의 신뢰를 얻어 감옥 안의 죄수들과 온갖 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빵)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인 애굽 왕에게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어진 내용은 그 죄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이 없음을 가늠하게 합니다.

(2-3)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여기서는 그들이 여러 관원들 가운데 장이었음을 밝힘을 통해, 앞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로 불렸던 두 사람의 신분을 정확히 알려줍니다. 술과 떡을 굽는 관원장은 왕의 생명과 직결된 술과 음식 시중을 드는 왕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업무 외에도 국사에 대해 조언을 하거나, 개인적인 말벗이 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술과 음식을 함께 하는 자리는, 단순히 마시고 먹는 것을 넘어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자리가 되곤 합니다.
바로가 노하여 최측근이었던 그들을 옥에 가두게 한 것은, 그들이 죄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기자는 부사 ‘곧’을 활용해 그들이 수감된 감옥이 곧 요셉이 갇힌 공간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앞서 요셉을 가두면서는 그 옥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공간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이는 곧 요셉과 그들이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요셉은 곧 그 관원장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요셉에게 옥에 갇힌 관원장들을 수종 들게 했다는 사실은 친위 대장 보디발의 두 가지 마음을 보여줍니다. 첫째로 보디발이 관원장들은 직접 챙긴 것은, 그들이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힌 상태였지만, 언제든 복직이 되어 왕의 측근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로 보디발이 요셉에게 그들의 수종을 들게 한 것은, 그의 아내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제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고 한다 한들 자신의 아내에게 범죄하려고 했던 이에게 중책을 맡기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관원장들은 얼마 뒤 각각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관원장들이 꾼 꿈(5-8)

(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고대 근동에서 꿈은 개인의 신상이나 미래 등을 점치는 초자연적인 징조로 이해되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를 경험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창 37:5-11, 19, 41:25-45).
꿈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조작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영역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기록된 진리의 말씀(성경)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부분에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요셉은 관원장들의 달라진 낯빛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6-8)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은 아침부터 그들에게 근심스러운 빛이 있음을 보고,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꿈을 꾸었는데 이를 해석할 사람이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해몽은 하나님께 달렸으니, 자신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 해 볼 것을 전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처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죄수의 신분이라는 상황과 환경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심을 신뢰했기에 이처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초라한 상황과 환경에 사로잡혀 무기력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시적인 상황과 환경에 불과합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하여 붙들어야 할 것은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먼저는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게 그가 꾸었던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과 요셉의 해몽(9-15)

(9-11)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역시 현실과 다른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꿈의 전개는 신속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싹이 나고 꽃이 피기까지, 포도송이가 익고 포도주가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꿈속에서는 이모든 것이 삽시간에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요셉의 해몽도 신속했습니다.

(12-15)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요셉은 꿈속의 상징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에게 사흘 안에 전과 같이 바로의 손에 다시금 술잔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요셉은 그에게 잘 되면, 자신은 죄가 없으니 석방될 수 있도록 힘써 줄 것을 덧붙여 말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에 대한 해몽이 좋은 것을 듣고는, 떡 굽는 관원장도 요셉에게 그가 꾸었던 꿈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관원장들의 꿈과 요셉의 해몽(16-19)
(16-17)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시작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끝이 달라 보이는 꿈이었습니다. 역시나 요셉은 꿈속의 상징을 매우 구체적으로 풀어 전했습니다.

(18-19)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요셉은 떡 굽는 관원장에게 사흘 안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쉽게 전할 수 있지만, 좋지 않은 이야기는 전하기가 어렵기 마련인데, 요셉은 이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 그 꿈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해몽대로 이루어짐(20-23)
(20-22)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요셉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모든 신하가 보는 앞에서 직책이 회복되어 전과 같이 바로의 손에 술을 따라 올리게 되었습니다.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모든 신하가 보는 앞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관원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제 요셉의 꿈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지 기대하게 됩니다. 그러나 23절로 이루어진 창세기 40장의 마지막은 다소 씁쓸합니다.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요셉은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습니다. 그가 꿈을 해몽하지 못해 근심에 사로잡혔을 때, 요셉은 그의 꿈을 구체적으로 풀어 주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는 극한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요셉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요셉의 그 한 가지 부탁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다시금 술 맡은 관원장의 자리에서 선 그는, 옥 안에서 큰 도움이 되어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한 채 잊어 버렸습니다.

아버지의 가장 사랑받던 아들에서 일순간에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요셉의 삶은, 복수와 보복을 준비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주 선 이로 하여금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천한 이방 노예에서 또다시 일순간에 옥에 갇힌 죄수 신분으로 전락한 요셉의 삶은,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주 선 이로 하여금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직접 들어내 보이지 않는 방법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의지해야 할 이는 흐릿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요셉과 함께하셨던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다음 장(41장)은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된 직후에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요셉을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방 죄수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상황과 환경으로 초대하십니다.

어려울 때 도움을 주었던 누군가로부터 무언가를 기대했던 까닭에 실망하고 계신 분이 혹시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본문을 통해 요셉도 그 사람에게 잊혀졌다는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에게는 잊혀졌지만, 하나님께는 결코 잊혀질 수 없다는 사실이 큰 소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허락된 삶의 자리에서 늘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 때, 마주 선 이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고백)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삶은 필시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해를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셉은 뜻하지 않은 오해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지만, 극한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원망이나 불평, 비난 등으로 삶의 자리를 채워가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자리에서 맡겨주신 이들을 한결같이 섬기며, 마주한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동행을 발견하고 고백하게 했습니다. 우리 역시 허락된 자리에서, 마주한 이들로 부터 이와 같은 고백을 듣고 있는지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잊혀지지만, 하나님께 영원히 기억하심을 기억하며 눈을 들어 함께 해주시는 주님을 보게 해주시옵소서. 허락된 오늘이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의 해를 전하는 통로가 사용되어지는 한날로 사용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만약 저희가 하루아침에 관원장에서 죄수의 신분이 된다면 어떠한 심정이시겠습니까?
2.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던 꿈으로 인해 힘들었던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시겠습니까?
3. 꿈이 현실로 나타났던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면 정리해 보시겠습니까?
4. 사람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숙고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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