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인생을 다루어가실 때 '꿈'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요셉의 이야기에는 세 번의 꿈이 등장하는데, 각 꿈을 꾼 이후에 극적인 상황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처음 등장하는 꿈은 요셉이 직접 꾸게 된 꿈이며,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으로 인해 형들은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두 번째 꿈은 요셉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있었을 때 만난 두 관원장의 꿈입니다. 요셉이 말한 꿈의 해석처럼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세 번째 꿈으로 요셉이 감옥에서 나와 애굽의 총리가 되는 계기가 되는 바로 왕의 꿈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 이년 후에(1절)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한 이후로부터 바로 왕이 꿈을 꾸기까지 만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전직에 회복되면 바로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 나와 복직하자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습니다.
이 2년의 시간 동안 요셉은 어떤 마음으로 감옥에서의 생활을 이어갔겠습니까?
처음에는 간수장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드디어 그날이 왔구나’라고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또, 감옥에 나가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미래를 꿈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미래에 대한 꿈은 좌절로 바뀌었고, 2년의 시간은 관원장으로부터 걸었던 모든 기대를 내려놓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요셉은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리는 41장을 통해 세상은 감옥에 있는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잊지 않으셨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요셉도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후에 요셉이 바로 왕 앞에서 꿈을 해석해 주시는 분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담대히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잊혀진 사람, 그리고 잊혀진 시간은 없습니다. 만약 관원장이 복직한 직후에 요셉이 바로에게 알려졌다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이루실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기다리며, 주어진 환경에서 주님을 바라본 요셉은 2년 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하심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2년의 시간이 결코 잊혀진 시간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길 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루 속이 코로나가 종식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변하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요셉이 감옥에서 겪은 2년의 시간처럼 이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은 두려움과 사람들에게서 잊혀진 존재로 여겨진 것만 같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악과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여전히 우리가 낙심과 외로움 속에 짓눌려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셨고,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살게 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 안에서 잊혀진 시간은 없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따라 살아가기에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은 우리를 잊어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때와 하나님의 때는 다르다는 것과 우리의 때보다 하나님의 때가 더 바른 길임을 인정하며 오늘의 삶을 주님을 더욱 뚜렷하게 바라보는 시간으로 가꾸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번민하여(2-8절)
(1-4)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애굽의 궁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꾼 꿈 때문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이 두 꿈을 꾸었던 것처럼, 바로 왕도 비슷한 두 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 두 편의 꿈에는 애굽의 색채가 짙게 깔려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의 마음을 불안하게 할 만큼 끔찍한 꿈이었습니다.
먼저 첫 번째 꿈에서 아름답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더위와 파리를 피해 나일 강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다가 풀을 먹으러 강가에 나와 서 있었습니다. 평소 나일 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요롭고 평온한 장면입니다. 나일 강은 애굽의 힘과 풍요와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뒤 이어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왔습니다. 앞서 아름답고 살진 암소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의 암소들입니다. 더욱 끔찍한 것은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아름답고 살진 암소를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초식동물인 소가 다른 소를 잡아먹는 모습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놀란 마음에 꿈에서 깬 바로 왕은 다시 잠이 들어 두 번째 꿈을 꾸게 됩니다.
(5-7)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두 번째 꿈은 앞선 꿈과 동일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마른 이삭이 삼키는 끔찍한 꿈이었습니다. ‘동풍’은 5월과 10월에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 즉 열풍을 말합니다. 뜨겁고 파괴적인 이 바람은 성경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로의 꿈에 등장하는 소, 갈밭, 이삭이 당시 고대 근동에서 모두 식량을 상징하기에 이 꿈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2년 동안 바로는 여러 꿈을 꾸었겠지만, 그 어떤 꿈도 이번만큼 바로를 괴롭게 한 적이 없었습니다. 두 꿈으로 말미암아 바로는 '마음이 번민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이와 똑같은 표현이 다니엘 2장 1절에서 느브갓네살이 꿈을 꾼 이후에도 등장 합니다. 또한 시편 77편 4절에서 고민에 찬 시인이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로 표현합니다.
바로가 이 꿈들로 인해 마음이 괴로웠던 것은 이 꿈이 자신과 애굽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로가 이 꿈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마음의 괴로움이 없었다면, 요셉은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며,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번민함을 사용하셨습니다.
바로는 번민한 마음으로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 즉 지혜로운 모든 사람을 불러모아 꿈을 해석하게 하였으나 그 누구도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어 바로의 마음의 번민함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이제 바로는 그 누구에게라도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힌 히브리인 노예의 말까지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준비를 하나님께서 마음의 괴로움으로 다루어가셨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노력과 열심으로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과 우리를 짓누르는 짐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않습니다. 그 어떤 권력을 가진 자라도, 그리고 이 땅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일지라도 주님의 은혜의 손길이 없이는 결코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애굽의 권력의 정점에 있는 바로 왕과 애굽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 모두 모였으나 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한 사람, 이제 막 감옥에서 나온 히브리인 노예에 귀를 기울여야 했고, 그것이 곧 다가올 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며, 나의 선택과 계획 속에 살아가는 우리를 낮추어 가십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온 마음의 괴로움도 사용하셔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고백했던 것처럼, 세상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인 십자가의 길을 겸손히 걸어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9-13절)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바로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모인 모든 점술가와 현인들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어 고개를 가로저을 때, 술 맡은 관원장의 머리에 한 사람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기억하지 못하고 잊었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죄'를 복수형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에게 '오늘 내 죄들을 기억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는 2년 동안 요셉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 요셉에 대한 죄이며, 바로에 대한 죄임을 깨닫고 '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나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특히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주인이 알지 못하는 죄를 먼저 꺼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 감옥에서 만났던 히브리 노예였음을 확신하였고, 지난 2년 동안 요셉을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며 요셉을 소개합니다.
(10-13)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소개하기 위해 2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과거의 일들은 바로에게도 그리고 관원장에게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만난 히브리 청년의 꿈 해석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근거를 설명해야 했기에 관원장은 요셉의 해석대로 자신이 복직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이제 친위대장의 종된 히브리 청년 요셉은 바로 왕 앞에 섭니다. 요셉의 말에 권력의 중심에 선 애굽의 왕과 그 땅의 모든 지혜롭다 여기는 자들이 귀 기울입니다. 요셉이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모든 순간마다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관원장의 머리속에서 요셉을 기억하게 하시고, 꿈으로 인해 마음이 번민한 바로 왕과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해 고개 들지 못하는 그 땅의 모든 지혜로운 자들 앞에 하나님의 사람을 세워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꼬여 있는 것 같고, 너무나 큰 걸림돌이 우리의 삶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길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길이 높다는 것과 우리의 지혜보다 언제나 하나님의 지혜가 크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눈을 들어 우리에게 은혜의 해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바라보며,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요셉이 바로 앞에 서기까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이었고, 겉으로 보기에 억울한 길, 절망의 길, 사람들에게 잊혀진 길 위에 서 있어 보이나,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여전히 일하고 계셨음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삶을 보이는 것으로만 쉽게 판단하지 않도록 보이지 않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의 삶이 아무리 꼬여 있는 것 같고, 너무나 큰 걸림돌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도 주님의 은혜의 해를 살아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는 주님의 자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요셉에게 바로 앞에 서기 전, 2년의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2. 바로는 어떤 꿈을 꾸었으며, 왜 그의 마음을 번민하게 했나요?
3.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에게 요셉을 소개하기 전 무엇을 고백했나요?
4. 요셉이 바로 앞에 가기까지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하며 나의 삶에 이루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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