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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39:1-23

 창세기 39:1-23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1-6절)
창세기 39장부터는 요셉의 13년 노예 생활의 전반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형들에게 팔려 노예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거듭되는 부당한 고난의 연속으로만 보이지만 요셉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셉의 인생은 일시적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끝내는 영원한 승리와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성경은 보디발을 이집트 사람이며 파라오의 신하이며 친위대장으로 소개합니다. 이러한 세개의 수식어는 그가 그 나라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사람인지를 가늠하게 합니다. 그가 요셉을 능동적으로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에게 요셉을 보내신 것입니다.

(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흥미롭게도 이야기 속 주인공은 요셉인 듯 보이지만 성경기자는 의도적으로 ‘여호와’를 문두에 위치시킴으로써 실제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동사가 등장하는데 원문의 느낌을 살린다면 ‘깨닫다’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디발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심을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크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는 이 땅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형통함의 비결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4-5)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던 보디발은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됩니다. 요셉이 누리는 복의 근원이 보디발에게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교훈하고 있는 것 입니다. 4절의 ‘섬기매’라는 말은 원문에서는 ‘솨라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비천한 일이 아닌 높은 권력자를 섬기거나 예배와 관련된 사역을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즉 보디발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요셉을 보고 그에게 크고 중요한 업무를 맡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복이 보디발의 가정과 모든 생활권에 미칩니다.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의 복이 두번 등장함으로써 요셉이 누리는 복이 보디발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즐겁고 경쾌한 운율로 소개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요셉을 위해 보디발에게 풍성한 복을 주셨다는 사실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복의 전달자가 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6)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위탁하다’로 번역된 원문 ‘나탄’은 맡겨둔 일은 잊어버리고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권한을 넘겨주었음을 의미합니다. 보디발은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만 보았던 것이 아니라 그의 정직함과 신실함도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도 또한 가리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매사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시는 우리 모든 교우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요셉(7-19절)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그 후에’라는 말은 보디발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요셉이 전보다 나아진 삶을 살아가던 때를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 뒤에 사단의 시험이 올 수도 있음을 교훈합니다. 그 유혹이 무엇입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성적인 관계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동침하기를 청하니’를 원문의 느낌을 살려 바꾼다면 ‘나와 함께 누워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명령형으로써 유혹이나 간청이라기 보다 힘 있는 자가 부리는 횡포에 더 가깝습니다. 즉,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청을 거절할 경우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8-10)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요셉은 조금의 오해의 소지도 남지 않도록, 또한 죄가 틈 탈 기회조차도 허용되지 않도록 분명한 태도를 취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 가정에서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있어지만 자신이 결코 넘지 말아야할 선이 무엇인지를 명백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요셉이 이 일을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으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사람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정직과 윤리를 지키려 했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바른 신앙인으로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마음껏 누리되 그분이 금하신 일은 조금의 양보도 없는 분명한 태도로 끊어내는 결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11-12)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죄의 유혹이 얼마나 치밀하고 끈질긴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요셉이 분명한 어조로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합니다. 요셉이 자신의 옷을 버린 행위를 원문에서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즉각 버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요셉은 유혹과 싸우는 것이 아닌 유혹의 장소를 떠나는 방법으로 유혹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13-19)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보디발의 아내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습니다. 요셉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순수하거나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불타오르는 욕정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의 죄가 드러날 지경에 이르자 회개하기보다 요셉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기까지 합니다. 성경은 이 사건이 기록된 12절에서 18절에 이르기까지 총 6번에 걸쳐서 요셉의 옷을 언급합니다. 즉 그의 옷은 요셉이 얼마나 순결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물입니다. 그럼에도 순결의 증거물은 보디발의 아내에 의해 죄의 증거물로 둔갑되어버렸습니다. 죄로 무감각해져버린 양심이 자기 합리화를 넘어 상대방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20-23절)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간음죄는 사형에도 내려질 만큼 중죄였습니다. 하물며 종이 주인의 아내를 강간하려했다면 더더욱 목숨을 건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죽음을 면하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디발의 마음을 주관하셨기 때문입니다.

(21-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감옥에 갇힌 요셉이었지만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셨습니다. 21절에 인자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우리가 익히 들은바 있는 ‘헤쎄드’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돕는 신적인 은혜와 섭리를 설명할 때 ‘헤쎄드’를 자주 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동행하여주시고 헤쎄드를 주신다면 그곳이 감옥이라 할지라도 형통의 장소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님들. 지금 계신 곳이, 지금 처한 상황이 암울하고 답답하게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나 자신에게 집중했던 눈을, 하나님께 들어 그분을 주목하십시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의 주님이심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주님께만 눈을 드는 복된 인생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 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요셉에게 주신 복과 은혜는 2022년을 살아가는 저희들에게도 동일한 것인 줄 믿습니다. 저희가 어느 곳에서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든지 주님께서 함께하여 주옵시고 늘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서 있는 곳이 예배의 자리인 줄 알고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봅니다. 오늘 하루 저희에게 주신 복으로 가족과 주변 이웃들에게도 그 복이 넉넉히 흘러 넘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하루가 되도록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성도를 형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이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습니까?
2.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지 않았던, 혹은 했었던 불신자와 다른 행동은 무엇입니까?
3.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잊은 채 혼자라고 느껴본 적은 언제입니까? 그런 감정이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4.날마다 하나님께 눈을 들고 그분과 동행하기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결단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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