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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47:27-48:7

 창세기 47:27-48:7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27-31)
이스라엘이 생육하고 번성하였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가 증가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을 통해 인류에게 주신 복,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붙들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땅을 만났습니다. 애굽으로 가기를 주저했으나 하나님은 애굽을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만드는 모판과 같이 사용하셨습니다. 어쩌면 애굽은 이스라엘에게 노아의 방주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세상에 엄습한 재앙을 피하는 임시처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가져온 그곳을 마치 정주해야 할 곳으로 여기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나중에 광야에서의 핍진한 삶에 불평했던 이스라엘이 애굽을 그리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17년을 평안하게 살아온 야곱은 다릅니다.

(28-29)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야곱이 애굽 땅으로 이주해 온 지도 1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 17년은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던 이전의 삶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이었습니다. 노년에, 죽었다고만 믿고 살아온 아들 요셉이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아들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평안하고 안락한 세월을 보냈을 것입니다.
야곱이 그 이전에 살았던 인생은 정말 험악한 나그네길이었습니다. 젊어서는 형 에서와의 긴장이 있었고, 도망간 끝에 찾아간 외삼촌 라반과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라반과의 갈등을 해결했지만 에서와의 갈등을 풀기 전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하나님과 씨름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이전의 갈등을 해결하고 와서는 딸의 강간 사건으로 세겜 족속과의 긴장도 있었습니다. 이후로 편하게 살아보나 했으나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마음 한 켠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 살아온 인생이었습니다. 살면서 소소한 행복도 많았겠지만 정말 그의 인생은 험악했다라는 말로 요약될 만큼 파란만장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평안하고 안락한 삶은 야곱이 애써서 누리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물처럼 주신 삶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의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습니다.
요셉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로 넣게 합니다.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랑하는 종을 불러 자기 대신 이삭의 아내를 찾아오라고 명령할 때 이렇게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게 했습니다. 여기에서 허벅지 아래는 남성의 생식기에 대한 완곡 어법입니다. 꼭 지켜야 하는 맹세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생명의 근원에 손을 넣고 맹세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죽고 없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맹세라는 뜻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죽고 나면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라고 합니다.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애굽에서 장사하지 말고,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할머니 사라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헷 족속 에브론에게서 산 헤브론의 막벨라 굴입니다. 이곳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가 묻혀 있고, 자신도 아내 레아를 이곳에 장사했습니다. 스스로도 죽어서 이곳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말은 지금 애굽에서 아무리 충만하고 번성하더라도 이곳이 우리들의 종착지가 아님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구가하고 있더라도 이곳에 시선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애굽으로 내려가는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예배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라고 말씀해주신 바 있습니다.
이처럼 애굽이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임시처소라는 것을 잊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돌아가야 할 본향 가나안 땅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이 믿음이 있습니다. 당장 머무는 곳이 좋다고 해서 이곳이 좋사오니 외치는 믿음이 아니라 바라보아야 할 곳, 하나님의 약속이 가리키는 곳을 잊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속해서 그 약속의 실현을 기대하며 시선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야곱이 묻히고자 한 막벨라 굴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종묘와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조상들이 대를 이어 묻혀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젠가 주시겠다고 한 땅,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대로 400년 뒤에 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그 믿음으로 그곳에 묻혀왔던 것입니다. 거기에 야곱도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애굽으로 내려가면서도 그곳으로 가야할지에 대해 마음에 근심하며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나서야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17년을 평안하게 지냈다고 해서 그저 애굽에서의 삶을 즐기면서 살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이 살아있어 기뻤고, 애굽에서의 삶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지 결코 그곳에서의 삶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삶으로 이루어야 할 지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야곱은 자신의 장례마저도 약속의 땅에서, 가족묘에서 지내도록 약속하게 하고, 요셉이 이를 받아들입니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은 재차 요셉에게 맹세까지 요구하고, 요셉이 맹세하고 나서야 야곱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브엘세바에서 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축복을 받기 위해, 이 땅에서 출세하기 위해 목숨 걸었던 사람 아닙니까?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라고 거래를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생 가운데서 수많은 역경과 사건을 만나게 되면서 자기 힘과 능력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하나님을 붙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인도하셔서 족장으로서 그가 감당해야 하는 믿음의 분량을 다하도록 힘주셨던 것입니다. 그 야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하시며, 그 어떤 역경과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 바라보고 살도록 힘주십니다.
야곱이 자신의 장례를 요셉에게 부탁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환기했던 것처럼 믿음의 사람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의 시선을 공유합니다. 요셉도 나중에 죽기 전에 유언을 하면서 약속의 땅을 언급하고, 출애굽할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약속의 땅으로 가지고 가라고 유언합니다. 우리 사이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나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 말씀을 심고, 뿌리고, 살아내어야 할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48:1-7)
죽음이 가까워오자 야곱이 모든 아들들을 불러 축복하기 시작합니다. 48장은 본격적으로 야곱의 아들들을 축복하기에 앞서서 요셉의 두 아들, 곧 자신의 손자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는 에피소드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야곱의 축복을 받는 유일한 손자들입니다. 요셉이 연로한 아버지를 뵙기 위해 두 아들을 데리고 옵니다.

(1-2)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이제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야 할 만큼 야곱의 기력이 많이 쇠했습니다. 계속 누워있었을 것입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점차 기력을 잃고 침상을 떠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누구나 이런 날을 맞이합니다. 누워만 있어야 하는 날이 언젠가는 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지금이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날이 온다는 것을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없는 날들이 오기 전에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잊다’라는 뜻의 므낫세와 ‘번성’이라는 뜻의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을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간신히 침상에 앉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3-6)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루스는 벧엘입니다. 형의 살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아내를 구하러 간다는 구실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던 중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했던 곳입니다. 자기 한 몸 피할 곳 없어 밧단아람으로 피신을 가는 야곱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을 주셔서 후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는 말씀을 해주신 일을 요셉에게 말합니다. 야곱은 지금 요셉에게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는 이 고센 땅은 임시처소에 불과하며, 이스라엘이 정착하고 살아야 할 땅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 가나안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 일로 자녀들의 양육권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야곱이 손자 두 명을 아들로 입양한다는 것은, 이들이 야곱의 아들들과 똑같은 법적 권리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야곱은 이미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먼저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에브라임을 므낫세를 대신하여 장자로 축복하려고 결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같이 야곱의 아들로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 받습니다.
이렇게 야곱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유산 중 두 몫을 요셉에게 주겠다고 밝힙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두 배의 상속권이 있음을, 요셉이 실질적 장자임을 명확하게 합니다. 지금 현재는 야곱의 이 말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야곱이 평생 일군 재산이 많다고는 하나 총리가 된 요셉의 재산과 비교할 바가 있겠습니까? 야곱의 재산을 12등분하여 한 분깃씩 차지한다고 해서 아버지 요셉의 재산을 나누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400년 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난 뒤에는 말이 다릅니다.
요셉의 두 아들이 야곱의 아들들로 확정됨으로써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땅을 분배할 때, 각 지파의 지분 변화를 의미하는, 아주 큰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 에브라임 지파는 북이스라엘의 중심 지파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당장 현실적으로 내 삶에 눈에 보이는 플러스 알파가 없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축복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믿음의 여정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 그 축복의 말씀을 실현하기 전까지 야곱의 축복은 400년 전의 한 노인의 유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입양과 축복의 말씀을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후일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마음에 품고 이루어나가야 할 지향점을 잊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믿음 소유하셔서 하나님의 도우시고 붙드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어떤 상황에서 살게 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라보고 지향해야 할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나가는 성도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야곱이 17년을 애굽 땅에서 풍요롭게 살아왔으면서도 약속의 땅을 잊지 아니하고, 그 땅에 묻히기를 소망하고 요구하는 오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머물러야 할 곳, 기도해야 하고 소망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자녀로 입양하여 요셉이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을 받도록 해주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미 요셉의 재산이 야곱보다 많았으므로, 야곱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큰 삶의 의미는 아니었을 것이나 야곱의 축복이 후일에 약속의 땅에서 크나큰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를 붙드시고 그 뜻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오늘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에 애굽에 정착한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27) 이를 통해 애굽은 이스라엘의 번성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2. 야곱이 요셉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 아래에 넣고 맹세하게 한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내용이 왜 중요하겠습니까?
3. 쇠약해진 야곱, 침상에 겨우 일어나 앉는 야곱을 보면서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합니까?
4.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입양하는 까닭은 무엇이며, 이 결과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듣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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