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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창세기(새벽)

창세기 49:1-21

 창세기 49:1-21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애굽에서 17년의 세월을 보낸 야곱은 생을 마칠 즈음에 열두 명의 아들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유언합니다. 창세기 49장은 야곱의 유언이자 그의 아들들에게 내린 축복의 말입니다. 이 축복은 야곱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희망사항이 아니었으며, 앞으로 아들들의 후손을 통해 형성될 지파들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태어난 순서에 따라 축복하지 않고, 그들의 어머니의 순서에 따라 축복합니다. 그는 제일 먼저 레아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다음에 두 첩인 빌하와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헬을 통해 얻은 아들들을 축복합니다. 특이한 것은 첩 빌하를 통해 얻은 두 아들 단과 납달리를 나누어 실바를 통해 얻은 아들인 갓과 아셀을 감싸게 하여 축복한다는 점입니다.

레아의 아들이 받는 복(1-15)
1절에서 15절까지는 레아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입니다.

(1-2)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방식은 그의 아버지 이삭이 아들들에게 복을 빌어 주었던 방식과는 대조를 이룹니다. 이삭은 사적인 장소에서 비밀리에 에서를 축복하려 했었고,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린 리브가와 야곱이 공모하여 그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반면 야곱은 모든 아들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공개적으로 복을 빌어줍니다. 평상시에 요셉과 베냐민을 편애하던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야곱이 아들들에게 하는 축복은 그들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포는 아들들의 믿음을 요구합니다. 야곱이 빌어 주는 복은 그의 아들들이 살아 있는 동안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야곱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지금부터 선포하는 내용이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임을 전제합니다. 만일 자신이 마음대로 선포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좋은 것들로 그의 유언을 채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유언은 앞으로 될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였기 때문에 그는 받은 대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말씀은 당장 우리 눈앞에서 성취되지 않고, 그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말씀은 우리 눈에 좋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를 불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귀합니다.

(3-4)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야곱은 가장 먼저 레아의 첫째 아들이자 자신의 장자인 르우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야곱의 장자로서 르우벤은 아버지의 능력과 기력의 시작이었습니다. 능력은 일반적인 힘을, 기력은 정력을 뜻합니다. 우리가 보는 성경이 ‘시작’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단어는 ‘첫 열매’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첫 열매로써 아버지에게 누구보다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르우벤은 형제 중에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했습니다. 장자로서 그는 형제들 사이에 가장 존귀한 위치에 있었으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위풍당당함을 지녔습니다.
이처럼 르우벤이 가진 것은 모두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죄로 인해 이 모든 것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습니다. 야곱이 장자권을 그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르우벤이 ‘물의 끓음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거친 파도’라고 번역합니다. 르우벤의 무모함은 거친 파도와 같아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첩이자 다른 형제들의 어머니였던 빌하를 범함으로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습니다.
야곱은 르우벤에게 장자권을 주기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르우벤이 더는 형제들 사이에서 으뜸이 되지 못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르우벤이 장자로서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존귀한 위치를 죄로 인해 빼앗긴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르우벤에게 빌어준 복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습니다. 르우벤은 가인, 이스마엘, 에서처럼 죄로 인해 장자권을 잃어버렸습니다.
르우벤은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다가 스스로 밀쳐져 진창 속에 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침상을 범한 죄로 인해 그는 너무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처럼 죄는 순간적인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결과적으로 삶 전체에 비극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죄에 관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애초에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5-7)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묶어서 복을 빌어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레아의 둘째와 셋째 아들이자 야곱의 둘째와 셋째 아들인데도 잔혹성 때문에 장자권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이 공모하여 세겜 족속을 살육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들을 ‘형제’라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연합이나 동맹에 대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두 사람이 한통속이 되어 연합체를 형성하고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새번역 성경은 ‘단짝 형제’라고 번역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연합하여 좋은 일을 했으면 괜찮았는데, 잔인한 일을 공모하고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연합하면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 변하였습니다.
우리의 연합은 좋은 일을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누군가를 진창에 밀쳐 떨어뜨리기 위해 다른 이와 연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혹 세속적인 가치관의 물결에 함께 빠져 사는 단짝 친구가 있는 것은 아닙니까?
야곱은 자신은 절대 이들의 일에 동조할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야곱은 그 이유로 그들의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성을 들었습니다. 6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6, 새번역) 나는 그들의 비밀 회담에 들어가지 않으며, 그들의 회의에 끼여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고, 장난삼아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

시므온과 레위는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고, 장난삼아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습니다. 소의 발목 힘줄을 끊으면 소가 움직이지 못하여 소의 노동력을 중요시했던 당시 사회에서 그 소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야곱이 이들을 질타하는 것은 상습적으로 필요 이상의 폭력을 자행하는 그들의 잔인함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화가 나서 사람을 죽이고, 장난삼아 사람이나 동물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절제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낭떠러지 아래로 밀쳐 떨어뜨리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에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붙들어주심이 은혜입니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자손들이 이러한 잔인함으로 인해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임을 선포합니다. 야곱의 예언은 훗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처음부터 독자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땅을 분배받지 못하였고(수 14:4),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기업 중에서 몇몇 성읍을 받았지만(수 19:9), 얼마 지나지 않아 유다 지파로 흡수되어 역사 속에서 슬며시 사라지게 됩니다.

(8-12)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야곱이 레아의 넷째 아들이자 자신의 넷째 아들이기도 한 유다에게 빌어 준 복은 요셉 다음으로 깁니다. 야곱은 유다에게 영원한 왕권, 주권, 번영 등을 빌어줍니다. 유다는 모든 형제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형제들은 그를 찬송할 것이고, 원수들은 그에게 짓밟힐 것입니다. ‘사자 새끼’, ‘규’, ‘통치자의 지팡이’ 등 통치권에 관한 표현들이 이러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야곱은 열방이 유다에게 순종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유다는 형제들에게는 풍요를 가져다주지만, 적들에게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공포의 존재가 될 것입니다. 형제들에 대한 통치권과 열방이 그에게 순종하게 될 것이라는 선포는 메시아 사상과 연결됩니다.
메시아 즉 그리스도가 유다 지파에 속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유는 다윗 언약 때문인데(삼하 7:16), 이 다윗 언약의 첫 번째 성경적 근거가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유다에게 부여된 예언적 축복은 다윗과 그의 집을 통해 성취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이스라엘의 통치권이 유다의 세 형들을 지나 그에게 임한다는 점에서 장자권이 그에게 임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두 지파의 몫을 받는 실질적인 장자권은 요셉이 두 아들을 통해 받았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하나님의 선택은 유다 지파에게 있었습니다. 시편 78편 67-68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시 78:67-68) 또 요셉의 장막을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가 사랑하시는 시온 산을 택하시며

그렇다면 유다 지파는 형제들을 통치하는 권능을 언제까지 누리게 될까요? 야곱은 ‘실로가 오시기까지’라고 말합니다. 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이라고 번역합니다. 즉 유다 지파는 보좌의 참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그의 형제들을 통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한 우리의 그릇된 삶을 참회하는 절기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생 보좌에 앉으시고, 우리의 참 주인이 되어 주신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하고, 그 주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3-15)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스불론은 레아의 여섯째 아들이자 야곱의 열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본문과 모세의 축복(신 33:18)에서 스불론은 그의 형이자 레아의 다섯째 아들인 잇사갈 앞에 등장합니다. 또한 이 두 곳에서 스불론은 형 잇사갈보다 더 긍정적인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땅 분배를 위한 제비뽑기에서도 스불론에게 우선권을 주십니다(수 19:16-17).
잇사갈은 레아의 다섯째 아들이자 야곱의 아홉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그에게 특별한 복을 빌어주지 않으며, 다른 형제들에게 얹혀살게 될 것을 선포합니다. 잇사갈은 사사기에서 가장 경시되는 지파입니다. 그들은 사사기 1장의 지파들의 목록과 가나안과 미디안의 전쟁에 관한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사사시대 동안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암시합니다.

빌하와 실바의 아들이 받는 복(16-21)
16절에서 21절까지는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입니다.

(16-18)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은 빌하의 첫째 아들이자 야곱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그는 야곱이 첩을 통해 얻은 아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언급될 뿐만 아니라, 이 목록에서 일곱 번째로 등장하여 형제들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암시합시다.
야곱은 단에게 두 가지 복을 빌어주었습니다. 첫째, ‘심판하다’라는 동사에서 비롯된 그의 이름 ‘단’이 뜻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을 정의로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지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며, 지파들 사이에 빚어지는 소송들을 판결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둘째, 그는 결코 원수들에게 당하고 있지 않고, 대항하고 공격할 능력을 지닐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길섶의 뱀, 샛길의 독사는 위치가 노출되어 위기에 처한 뱀을 뜻하는데, 이처럼 단의 자손이 숫자가 적을 것임을 예언합니다. 그러나 그는 맹독을 품은 뱀처럼 원수들에게 위협을 가할 것입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아들들에게 축복하는 중간에 갑작스레 기도가 등장하기에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야곱이 아들들에게 빌어준 복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주님의 구원을 바라는 기도가 이곳에 등장하는 것이 적절하게 느껴집니다. 야곱은 아들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구원의 은총이 임하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습니다.
매일매일의 삶이 눈물 골짜기를 걷는 것 같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통과하는 것 같을지라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며 기도하십시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주셨음을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19-20)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갓은 실바의 첫째 아들이자 야곱의 일곱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갓이 결코 순탄한 삶을 살지 않게 될 것을 예언합니다. 그의 후손들은 군대의 추격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갓은 쫓기기만 하는 군대가 아니라 역습하는 군대가 되리라는 축복을 받습니다. 즉, 남에게 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훗날 요단강 동편 북쪽에 정착한 갓 지파는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아람 사람들과 시리아 사람들의 침략을 여러 차례 받습니다. 이처럼 많은 전쟁을 통해 갓 지파는 용감무쌍한 용사들로 유명해집니다(대상 12:8).
아셀은 실바의 둘째 아들이자 야곱의 여덟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아셀 지파가 이스라엘의 가장 기름진 땅을 차지하고, 땅의 소산물을 마음껏 즐기게 될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훗날 아셀 지파는 갈릴리 호수 서쪽에 위치한 옥토를 차지했습니다. 갈멜산에서 시작된 이 기름진 땅은 북쪽으로는 시돈까지 이르렀습니다.

(21)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는 빌하의 둘째 아들이자 야곱의 여섯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그에게 암사슴의 복을 빌어 주는데, 암사슴은 아름다움과 함께 떼지어 다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납달리는 암사슴처럼 자유와 민첩성을 누릴 것입니다(합 3:19). 만족하고 배부른 짐승들이 뛰논다는 점을 생각할 때 납달리는 풍요를 누릴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처럼 야곱은 아들들에게 복을 빌어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지파들의 미래에 대해 예언하였습니다. 비록 어떤 아들에게 한 축복은 저주같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야곱의 축복은 야곱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야곱이 아들들에게 한 축복은 상당 부분 그들의 인격과 삶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심은 대로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결과는 자신의 후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어떤 이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은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녀들, 나아가 우리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니 더더욱 우리의 인격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가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하루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므로 현재의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격과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에게 한 축복이 그들의 인격과 삶의 결과라는 말씀이 엄중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인격과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가꾸어감으로 현재의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옵소서. 오늘은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투표에 참여하게 하시고, 새롭게 세워지는 지도자를 통해 우리나라가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로 변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2. 죄의 유혹에 빠져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까?
3.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이 붙들어주신 적이 있습니까?
4. 인생 보좌에 앉으시고 참 주인이 되어 주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까?
5.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인격과 삶을 어떻게 가꾸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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