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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누가복음(새벽)

누가복음 8:40-56

누가복음 8:40-56
찬송가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누가복음 8장 22절부터 본문의 내용까지 연속적으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하게 하셨으며,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를 온전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적 능력은 본문의 혈루증 앓던 여인과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예수님의 신적 능력이 주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 나타나며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증거합니다.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린 야이로(40-42절)
(40-41)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기다렸습니다. 예수님 주위로 모인 많은 사람 중,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은 더 가까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관리인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이 있는 예루살렘의 성전과 달리 회당은 지역 공동체가 운영하던 평신도 기관이었습니다. 회당장이란 감독관으로 공적 모임을 돌보고 질서를 유지하며, 예배할 때 누가 성경을 읽을 것인지를 정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회당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다는 것은 결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앞에서 말입니다. 무엇이 회당장 야이로로 하여금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게 하였습니까?

(42a) 이는 자기에게 열 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린 이유는 죽어가는 열 두 살 된 외딸을 위해서였습니다.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살릴 수만 있다면 어느 아버지가 엎드리는 것을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딸을 살리는 일에 야이로는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야이로가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은 곳이 예수님의 발 아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야이로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오직 예수님만이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치료해 주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분의 발 아래에 엎드린 것입니다. 믿음이 야이로로 하여금 세상적인 지위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만져주시길 간청하도록 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딸이 죽어가는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딸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 아래가 아닌 다른 곳에 엎드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야이로에게 찾아온 고난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은 야이로를 사랑하시고 그와 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제 야이로로 하여금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리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 주님의 발 아래에 엎드립니까? 우리가 그동안 의지하였던 세속적인 가치를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도움을 구하며 그분의 발 아래에 엎드릴 때는, 나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그 어려움을 마주하고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나, 하나님은 그 고난을 통해 우리가 정말 있어야 할 자리인 주님 발 아래에 엎드리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의 고난도 나를 있어야 할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임을 인정하며 오직 나를 도우실 수 있으신 분, 능력의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지금 어디에 엎드리고 계십니까? 주님이 아닌 곳에 결코 참된 도움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와 회당장 야이로와 같이 나의 힘이신 주님께 엎드려 믿음으로 간구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린 여인(42-48절)
(42b-44)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들더라 이에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치더라

예수님을 환영하던 무리 중에 또 다른 믿음의 사람, 열 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증거합니다. 그녀는 야이로처럼 무리 앞에 나와 예수님께 간청할 수 없었습니다. 혈류라는 자궁출혈로 고통받고 있었던 이 여인은 유출과 관련된 정결법으로 인해 사회적 교제에서 배척당했으며, 마가는 그녀가 의사에게 가진 것을 다 허비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야이로가 저명한 남자 지도자였다면, 이 여인은 이름도 없으며 부정한 질병에 걸렸기에 공동체에서 격리된 가난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비록 야이로처럼 무리 앞에 나와 예수님께 아픈 몸을 만져주시길 요청할 수 없었으나, 야이로와 동일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고침 받지 못했던 자신의 병을 오직 예수님은 낫게 하실 수 있으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밀려드는 무리 사이에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고, 그 즉시 그녀의 혈루증은 그쳤습니다.

(45-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와서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여인은 사람들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나음을 받았으나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곧장 여인을 찾아오지 않으시고, 여인 스스로 예수님 앞에 엎드릴 수 있도록 자신에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며 외치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다 알고 계시며 자신의 치유를 숨길 수 없음을 깨닫고, 두려운 마음으로 떨며 무리 앞으로 나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손을 댄 이유를 예수님과 모든 사람 앞에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손을 댄 즉시 자신의 병이 나은 것 또한 말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건 여인이었으나 자신의 병을 낫게 한 것은 자신의 손이 아닌 예수님의 손, 예수님의 능력임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루증 앓던 여인이 예수님 뒤에서 조용히 치료받고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발 아래까지 나오게 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에게 예수님의 발 아래는 믿음으로 간청하는 자리였다면, 이 여인에게 예수님의 발 아래는 예수님의 능력을 고백하는 자리였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혈루증이 나은 것으로 만족했을지 모르나, 예수님은 여인의 혈루증을 치료하신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주님의 능력을 경험한 자 다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최종적인 목적은 치유가 아닌 회복입니다. 치유의 은총을 받았다면 이제 회복된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만약 혈루증 앓던 여인이 치료는 받았지만, 여전히 외면받고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면 진정한 회복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많은 사람 앞에서 주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음을 고백할 때 여인은 몸의 평안뿐만 아니라 영혼의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여인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에게 회복, 안녕, 구원의 평안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녀는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느 자리에 계십니까? 예수님의 뒤에서 급박했던 나의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만족하고 계시진 않으십니까? 예수님의 발 앞으로 나오십시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능력으로 지금의 내가 있음을 고백하는 인생으로 살아가십니다. 회복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도록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49-56절)
(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딸이 된 여인에게 평안을 말씀하실 때, 회당장 야이로의 평안은 사라졌습니다. 야이로는 자신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게 된 것입니다. 비보를 들은 야이로의 심정은 슬픔의 눌림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영혼이 진토에 붙어있는 것처럼 괴로웠을 것입니다. 비보를 전한 사람은 야이로에게 한 마디를 더합니다. ‘선생님(예수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즉, 야이로의 딸이 죽었기에 그녀는 예수님의 손에서 떠났다는 것입니다. 비보를 전한 사람은 야이로에게 더 이상 예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예수님과의 동행을 멈추라고 권면합니다. 이 모든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야이로에게 예수님은 계속되는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의 이 한 마디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이 없었다면, 야이로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처음 주님 앞에 엎드렸을 때의 믿음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고, 전달자의 말처럼 예수님과 동행을 포기하고 홀로 집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말씀이 없었다면 야이로는 죽은 아이로 인해 울며 통곡하는 사람들과 함께 통곡하였을 것이며,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비웃는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은 야이로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였으며 예수님을 치유하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게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펼쳐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주님을 의지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주저앉으려 했던 우리의 무릎에 힘을 주고, 두려움을 이기게 하며, 울며 통곡하는 소리 가운데 소망을 품게 하시고, 비웃는 웃음소리에서도 끝까지 주님과 동행하도록 하십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십시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54-55)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령하시니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렸던 믿음을 멈추지 않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죽은 아이에게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믿음을 보시고 능력의 손으로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님을 진정 괴롭게 하는 것은 주님의 손을 의지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내 손을 떠난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나의 힘이 되신 주님의 손을 의지하십시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손에 옷을 댄 여인처럼, 끝까지 예수님의 손을 의지한 야이로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할 때, 능력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사랑하는 딸아, 아들아 일어나 평안히 가라 말씀하시며 영원한 삶을 약속해 주십니다.

기도
능력의 주님, 오늘도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온전히 주님의 손을 의지하는 주님의 발 아래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또한, 슬픔으로 인해 짓눌리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괴롭게 하는 자가 아닌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는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을 잇대어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회당장 야이로는 왜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나요?
2. 예수님은 왜 자신의 옷 가에 손을 댄 여인이 스스로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 나오게 하셨나요?
3. 진정 예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4. 모든 상황 속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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