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10-21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누가복음 13장 1절에서 9절까지는 2가지 사건과 1가지의 비유인 빌라도의 갈릴리 사람들 살해 사건(1-3절),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4-5절),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6-9절) 비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서 등 굽은 여인을 회복(10-17절)시킨 사역과 하나님 나라의 두 가지 비유인 겨자씨와 누룩 비유(18-21절)가 나옵니다.
열여덟 해 동안 귀신들린 여인의 회복 (10-17절)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당시에 3부로 구성되어 있었던 회당예배는, 회당장의 허락 하에 3부에서는 외부인이 설교와 강의를 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치셨습니다.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성경에서는 이 여인이 정확하게 어떠한 여인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여인이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이 굽은 허리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긴 시간동안 참으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당시 회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귀신에 들려 흉측한 모습으로 정신도 온전치 못했던 이 여인에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부르셨습니다.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여기에서 ‘여자여’는 당시에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의를 다해 따뜻하게 부르셨던 호칭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따뜻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이제 그 여인의 허리가 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보셨기 때문에 이 여인은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SFC라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1달에 1번씩 각 학교의 대표들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기도회를 하고 노방전도를 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2,3명씩 흩어져서 모르는 분들을 찾아 다니며, 전도를 할 때였습니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떤 여자가 우리를 계속 따라오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목소리로 자기를 도와 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오래 씻지 않은 것처럼 냄새도 심하게 났고 말은 횡설수설하며 눈빛이 너무 이상하고 무서웠습니다.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자꾸만 도와 달라고 하는데, 누가봐도 귀신 들린 여자처럼 이상했습니다. 처음에는 함께 있었던 2명의 친구들이 방언기도도 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고 계속 우리를 쫓아오며 이야기를 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로 하고 재빨리 버스를 탔는데, 그 여자도 버스를 바로 뒤따라 타며 쫓아왔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우리는 그 다음 정류장에서 바로 다시 내리기로 서로가 눈빛 교환을 했습니다. 그런데 2명의 친구들은 바로 내렸는데, 저도 뒤따라 내리다가 그만 그 여자에게 제 팔을 붙잡혔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무사히 내렸는데, 이제 버스 안에는 그 여자와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알겠다고 다음 정류장에서 그 여자에게 함께 내리자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내린 버스 정류장은 상당히 어두웠고 인적도 드물었습니다. 저는 그 여자와 함께 버스에서 내려서 맨 땅에 함께 무릎을 꿇고 그 여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기도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무작정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이 여자분을 치유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 40분 정도를 그렇게 기도했는데, 이 여자분의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왔습니다. 저랑 나이가 같았던 18살이었는데, 몇 해 전에 여러 남자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이후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부산역에 갈 때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지만, 그 여자분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 멀리하려고 했고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의 예수님은 귀신 들려서 고통 속에 있던 여인을 먼저 쳐다 보셨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쳐다보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에게 어떠한 문제,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예수님 앞에 우리의 문제들을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놀라운 역사 이후에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꼭 초를 치려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는 일에 대해 분노합니다. 안식일은 안되고 다른 날에 와서 고침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의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오랫동안 전해오는 안식일에 관한 장로들의 구전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축에게는 물을 먹이면서 사람은 고칠 수 없다고 비난하는 이들의 외식을 지적하십니다.
(15-16)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형식과 내용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형식은 내용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존재하는 그릇과 같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해 안식하는 날입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일하는 것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을 예수님은 안식일에 고쳐주시며 이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유 (18-21절)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여기에서 ‘그러므로’라는 말이 먼저 나오고 있는 것은 앞서 일어난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렸던 여인의 치유 사건이 앞으로 이야기하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와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9-21)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겨자씨 한 알’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재배되었던 아주 작은 씨앗 중에 하나입니다. 겨자씨는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지만, 3m정도까지 자라고 나중에는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게 됩니다. 처음에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아주 작은 겨자씨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크게 자랄 수 있습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에서 호떡을 만들어 먹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거기에 누룩을 넣어 따뜻한 곳에 반죽을 두고 한 참을 기다리면 참 신기하게도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누룩을 통해서 밀가루 반죽의 성질이 변화가 된 겁니다. 밀가루 반죽에 비해 누룩은 매우 적은 양이었지만, 누룩 안에 있는 생명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겨자씨 한 알’과 ‘누룩’ 비유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누룩’처럼 작은 우리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든지 펼쳐지며 선하게 변화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 했습니다. 저에게 그 시간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던 것처럼 놀라운 이적을 보았거나 신학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 할 수 있는 그런 만남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향한 계획하심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만남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참 작은 아이였지만, 그 만남을 통해 ‘겨자씨 한 알’과 ‘누룩’ 같은 작은 믿음이 들어갔고 성장하여 나중에 목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 보았던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여인은 약자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아브라함의 딸(16절)’로 인식하셨으며 그녀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한 영혼의 위대함을 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겨자씨 한 알’과 ‘누룩’이 비록 지금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은 모든 사람이 알만큼 크고 강력하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일터와 학교에서, 교회에서 등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진리의 스폿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서 고통 속에 있던 여인을 사람들은 안식일이라는 틀에 매여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먼저 쳐다보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회복시키셨습니다.
우리들에게 어떠한 문제, 어떠한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겨자씨 한 알’과 ‘누룩’ 같은 작은 것들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크고 건강하게 나타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예수님 앞에 늘 진실되게 나아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리던 그 여인과 같이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생이었지만, 우리를 먼저 불러주시고 만나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지금 우리들의 인생이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다고 실망하지 않게 하옵소서. ‘겨자씨 한 알’과 ‘누룩’ 같은 작은 것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믿고 끝까지 믿음의 삶을 경주 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율법의 틀 속에 갇혀서 정말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온전히 바라보아야 할 인생의 스폿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렸던 여인처럼, 당신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2. ‘안식일’이라는 틀 속에 갇혀서 정말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비난했던 회당장처럼 당신은 정말 해야 할 일들을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며 주저하는 것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3. ‘겨자씨’와 ‘누룩’처럼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당신의 인생에서 아주 크게 성장한 것이 무엇들이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4.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이제 당신은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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