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15-30절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하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만나시고, 그 후에 관리를 만나십니다. 먼저 어린아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는 자(15-17)
(15-16)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아이는 당시 사망률이 높고 노동력으로 쓰이지도 못하며 아직 미숙한 인격체로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어린아이를 예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며 데리고 나왔습니다. 만진다는 것은 손이 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혈류병든 여인이 예수님을 만졌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나갔듯이, 병들거나 귀신들린 사람들도 고침 받기 위해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습니다(6:19). 예수님도 손으로 만짐으로(5:13) 고치기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기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데리고 나오는데, 그 사람이 어린아이임을 보았습니다(에이도). 그리고 꾸짖었습니다. 그냥 막은 것이 아니라, 왜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오냐고 질책하며 꾸짖었습니다(에피티마오). 왜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질책했겠습니까? 이렇게 어린아이는 사람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와 도움을 받았지만,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는 도움이 필요한 대상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당시 어린아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였습니다. 15절에서는 어린아기 ‘브레포스’라고 하고 16절에서는 어린아이 ‘파이디온’이라고 하지만, 아기인지 어린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존재감이 가장 작은 소용이 없는 사람의 전형입니다. 우리에게도 존재감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시해도 되는 사람과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아이를 가까이 부르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자의 것이다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런 자’는 어린아이 처럼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기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어린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조차도 어린아이가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는 예수님께 나올 만한 가치도 필요성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과 그렇치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이런 것들이 모두 뒤바뀝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사회에서 어린아이와 사뭇 다른 유형의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람이 나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18-25)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관리는 영생을 얻기 위한 방법을 알기 위해 예수님께 스스로 나왔습니다. 앞서 데리고 나와진 어린아이와는 사뭇 다른 유형의 사람입니다. 관리라는 말은 ‘산해드린공회원’을 뜻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상류 계층에 속한 사람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이 관리는 사회적으로 존재감이 큰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셀러브리티’혹은 ‘셀럽’이라는 말과 같이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입니다.
이 관리는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사람은 이 관리가 유일합니다. ‘선한 선생’이라는 말은 이 관리의 생각을 내포하고 있는 수식어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느냐는 질문’과 선한 선생이라는 말 속에 내포된 이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이 관리가 예수님을 선하다고 한 것은, 예수님이 한명의 사람으로서 선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냐’말은 사람이 선을 통해 구원을 얻는 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는 선한 분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잘 지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관리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질문하십니다. 십계명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계명을 지켰는지 질문하셨습니다.
망설임 없이 관리는 자신은 어려서부터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 관리가 어떤 근거로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지, 분명히 이 관리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음행한 여인을 잡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하신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양심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라면, 이 관리의 자신감은 특별한 무엇인가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밝혀내십니다.
(22-23)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부족한 한 가지가 이 관리에게는 전부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족한 한가지로 인해 결코 관리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밝히기 위해 예수님은 뜬금없이 전재산을 팔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관리는 심히 근심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은 큰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계명을 다 지켰다는 이 관리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 관리가 큰 부자이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양심만으로는 확신할 수 없었겠지만, 자신이 가진 큰 부로는 ‘자신이 계명을 모두 지켰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율법에 따를 때 부는 하나님의 복이자 은총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리는 영생을 얻기 위해 부를 포기하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재물을 팔고 가난해지는 것은 저주이고, 영생을 얻을 만한 자격 없음의 증거로 여겼습니다. 만약 이 사람이 가난했다면, 스스로 계명을 다 지키고 있다고 확신 있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소유를 많이 가지거나 성공하거나 남들보다 일이 잘 풀리면, 무엇이 된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잘 믿어서 혹은 어떤 원인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일이 안 풀리거나 가난하거나 어려움을 겪으며, 그 사람의 믿음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패러다임을 뒤집고 계십니다.
(24-25)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이 관리의 행색만으로 큰 부자라는 사실까지는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화에서도 이 사람이 큰 부자라는 사실을 알만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람의 생각의 메커니즘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뜬금없어 보였지만 관리에게 전재산을 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관리는 자신의 큰 부를 자신의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으로 여긴 것 입니다. 결국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하지도 지키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소유와 재물을 보고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으로 밝혀집니다.
이것을 보신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자인 관원은 철저히 자신이 가진 것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의 길(26-30)
또한 이 관리와 같이 사람들은 여전히 그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자인데,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26-27)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부자, 그것도 큰 부자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자기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다는 생각은 관원만 가진 생각이 아니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가진 생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거기에 있던 사람들보다 더한 질문을 합니다. 큰 부자도 못 한 것을 제자인 그들이 했는데 그들의 공로에 대해 어떤 보상을 받게 될 것인지 묻습니다.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할 수 없고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했지만, 베드로는 제자인 우리는 그것을 해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사람의 노력과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닌 은혜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공로와 노력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믿음을 조건 없는 선물로 주신다면, 그것을 주실만 한 특별한 이유가 나에게 있지 않을까? 라는 미련이 우리 마음 속 언저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복음은 실재입니다.
(29~30)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실재로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의 성령께서 오신 후에 성취가 됩니다. 오순절의 초대교회는 사람들이 자기의 재산을 팔아 나누어 주고 서도,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여러배 받게 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행전에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장차 받을 내세의 증거이자 현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린아이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만짐받기 위해 주님께 데리고 온 바 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공도로 없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가치 없는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관원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사람으로 자기의 공로로 주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관리가 아닌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
은혜의 주님, 우리는 연약한 죄인입니다.
더 잘 살고 싶고 더 많이 가지고 싶고 더 형통하게 살고 싶은 연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주님께서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 은혜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옵소서. 우리가 잘 풀리고 형통할 때 어깨를 으쓱일 수는 있지만, 잠시만 그렇게 하게 하시고 영원한 보화를 위해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에게 그것을 쓸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우리가 구원받음이 우리의 어떠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형벌 대속적 죽음의 공로임이, 그 역사적 사실이 변하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어린아이와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되새기고, 나는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지 묵상해 봅시다.
2. 부자가 왜 근심하였는지 생각해보고, 나는 부자처럼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3. 왜 사람들이 예수님께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물었는지 생각해보고, 나는 그런생각이 없는지 묵상해 봅시다.
4. 하나님은 어떻게 부자와 같이 신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띄어난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를, 우리로 하여금 들어가게 하시는지 묵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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