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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없는 삶2009.10.16강용규목사▒▒▒ 디모데후서 4:6~8

후회 없는 삶2009.10.16강용규목사▒▒▒ 디모데후서 4:6~8




여러분 세월이 참 빠릅니다. 2009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 한해도 지날 듯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죽음을 앞두고 믿음의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바울에게서 두려움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인생에 대한 어떤 후회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선한 싸움을 다 싸웠고 달려갈 길을 모두 마쳤고 이제 후로는 의의 면류관이 내게 임할 것이라는 승리에 찬 말씀을 합니다. 부러운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도 바울처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과거 현재 미래를 두고 말씀합니다. 먼저 바울은 현재의 삶에서 “내가 관제와 같이 지금 부음이 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예배드릴 때 곡식 짐승 등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 중에서 포도주나 감람유를 바치는 것을 가리켜서 관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관제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로마서 1~8장에서 사도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이었을 때 우리에겐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죽음의 자리에서 삶의 자리로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 또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고 말씀합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바울 또한 자신의 삶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살았습니다. 바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제물로 드려질 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떠날 기약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머문 이곳이 좋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랑 되신 예수님을 기다리다가 만나면 떠나듯이 우리도 항상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갔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갔듯이 모세가 이스라엘 해방을 위해 애굽 궁중을 떠났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언제든 떠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움 없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의 과거의 삶입니다. 바울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웠고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과거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표를 던졌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잔해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의 대열에 자신을 끌어내 무대에 세운 바나바와 싸움 후 결별하는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당당하게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모든 허물과 잘못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즉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니라.”고 고백합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허물을 모두 씻어주시고 오늘도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올해 한국호주선교 120주년을 기념하며 호주의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선교대회를 가졌습니다. 선교대회에 참석한 저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헨리 데이빗 선교사가 1889년 10월 2일 부산에 도착했고 언어공부를 위해 서울에 올라갔습니다. 언더우드 박사는 헨리 데이빗 선교사에게 서울에 남아 영어 성경을 조선말로 바꾸는 성경 번역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으나 그는 부산에 바다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복음을 전해야한다며 부산으로 내려갔습니다. 한 달이 걸려서야 부산에 도착한 데이빗 선교사는 그만 천연두에 걸려 5일만에 죽고 맙니다. 최초의 선교사가 그런 일을 당하자 호주 선교회는 위기를 맞습니다. 그런데도 호주 선교회는 부산으로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선교사들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 중에 제 마음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들과 같이 될 때 전도는 일어났지만 그들과 같이 되지 않을 때 전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류구원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푸른 눈의 호주 선교사가 조선 사람이 될 때 전도가 이루어졌지만 푸른 눈의 호주 선교사가 계속 호주인으로 남아있을 때 전도는 실패했다는 정직한 그들의 고백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이번만큼은 전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마지막 때에 믿음을 떠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신앙생활 하다가 믿음을 떠난 안타까운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끝까지 믿음의 사람으로 남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미래에 우리 앞에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게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