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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강용규목사

영적 각성2009.12.17강용규목사성경 : 누가복음 3:1~17

영적 각성2009.12.17강용규목사성경 : 누가복음 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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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로마의 속국이었습니다. 로마는 식민지 국가를 총독을 파송해서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을 관리했던 빌라도가 바로 로마가 파송한 총독이었습니다.

로마는 총독을 파송해서 감독하게 했고 식민지 국가에서 세력을 가진 토착 세력 중에 한 명을 세워 그 나라를 다스리도록 분봉 왕을 세웠습니다. 헤롯은 바로 이스라엘 지역에 로마로부터 세움을 받은 왕이었습니다.

이런 헤롯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에돔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날 것이라고 믿는 메시야 대망사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윗 왕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나타난다면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걱정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오병이어 사건이 그렇게 크게 부각된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대교가 저들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방이 꽉 막혀버린 감옥 같은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오직 하늘밖에 없었습니다. 메시야만을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바벨론 포로기 못지않은 메시야 대망 사상이 넓고 깊숙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메시야를 가장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요한이었습니다.

요한은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빈들 즉 광야로 나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너는 광야에 길을 만들고 사막에 대로를 만들어 메시야의 오시는 길을 예비하라.” 바로 이 말씀이 요한에게 소망을 주었고 그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사람을 본질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요한은 저 단으로부터 브엘세바 이스라엘 전 땅에 영적 각성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오늘 2009년 12월 6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요한처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신앙의 영적각성이 일어날 때 내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우리 주변이 변합니다. 이대로 만족하며 미지근하게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을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입니다. 제사장의 아들은 만30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제사장이 됩니다. 다시 말하면 어렵지 않은 인생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때문에 빈들에 나갔습니다. 빈들은 거칠고 물이 없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빈들은 바로 심령이 가난한 것을 가리킵니다. 요한이 빈들에 나갔다 고 하는 것은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각성이 일어나려면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임하기를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요한은 성전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요한의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는 빈들에 나가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했습니다. 그 소망이 복음의 말씀을 들고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요한이 세상을 향해 외친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회개의 말씀입니다. 그가 회개를 말할 때 추상적인 회개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회개를 말씀했습니다. 그것은 세리에게 “너희는 정한 세 외에는 더 받지 말라. 너희에게 있는 부정과 불의를 버려라.”라고 세리들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군인들에게는 “너희 군인들아 너희가 얼마나 힘이 있느냐. 그 힘을 가지고 약한 자들을 억누르지 말라. 약한 자들을 못살게 굴지 말라. 네가 힘이 있고 배웠고 가졌다면 오히려 그것을 나누고 겸손하게 행하는 삶을 살아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자에게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요단 강가로부터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가는 귀한 영적 각성 운동이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영적각성이라면 두 번째 영적각성은 이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면서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자니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고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옛 자아는 죽고 이제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며 불세례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에서 눈과 비가 떨어진다. 그런데 하늘에서 눈과 비가 내리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그 눈과 비가 땅을 적시고 싹을 나게 하고 거기에서 열매를 맺게 하듯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사람은 자기를 변화시킨 그 복음을 증거할 때 그 복음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얻게 된다고 하는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킨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증거하셔서 나를 변화시키고 내 가정을 변화시키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영적 각성 운동을 일으키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