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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7-30)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7-30)  민경설 목사님

어떤 시인이 말하길 이 세상은 너무 지치고 피곤하고 짐이 무거워 환절기에 독감 걸린 것처럼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이나 동물, 자연 환경 모든 것이 다 피곤에 지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병들고 힘들어하며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1:3-4]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1:8]“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만물이 힘들어 하고 병든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은 이 지구상에 인간이 태어나 살면서 언제 어디서나 살인적인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3:17-18]“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쉼과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슬기 있고 교만한 자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이처럼 겸손한 자에게는 그 길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11:25]“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참안식을 주고 쉴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죄를 감당하고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 예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길을 생각해 보면


1) 주님께 나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우리에게 쉼을 줄 수 있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마치고 쉰다던지, 휴가를 가라던지, 돈을 준다더니, 무엇을 이루어 줘서 쉬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쉼, 즉 안식을 주시는 분은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만이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길을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쉬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어떤 것을 소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쉼을 얻게 하지는 않습니다.


2) 주님의 겸손과 온유를 배워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주님께 나와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마음에 영접하신 분은 이제 주님의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겸손은 어떤 겸손입니까?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순종하신 겸손입니다. 주님의 겸손은 하나님이 지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시며 하나님이 뜻을 이루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을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지금 여기에 주어진 일이 필요하다고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겸손입니다.

 여기에 안식과 평강과 축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진 위치와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일로 알고 순종해야 합니다. 온유는 겸손보다 좀 더 나아갑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아무리 어둡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뜻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현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왕자로 있을 때에는 자기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사람에게 고난 받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때려죽였습니다. 옳지만 격동적이었습니다. 그는 광야 40년 을 지나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온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3) 주님과 멍에를 같이 매어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9-30)

 이 말은 참 역설적입니다. 안식과 쉼을 위하여 멍에를 진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멍에를 지면 더 무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독교의 진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과 멍에를 같이 지는 것이 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연합하면 내 속에 주님이 사시고 내 삶을 그 분이 살아가시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소가 멍에를 같이 하고 밭고랑을 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끼 소와 어미 소가 멍에를 같이 매었다면 새끼 소는 어미 소를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어미 소를 따라가는 새끼 소는 어디를 가도 안식일 것입니다.

출처 : 한나의 정원
글쓴이 : 데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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