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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하는 자들아 유 1:20-21 2009년 12월 06일 (대림절 둘째 주일 낮 예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살면서도 우리는 어쩌면

나의 인간적인 성격과 성품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못난 삶일 때가 참 많습니다.

설교를 하는 저부터 잘난 성질머리 하나 때문에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해드릴 때가 참 많습니다.

생각을 해 볼 때도 어떻게 목사라는 사람이 이런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일단 저지르고 나서 후회할 때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솔직히 제 생각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뭔가 남달라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시선과 편견으로 인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어리석게 하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대표적인 생각이 ‘나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세상을 사는 모습과 교회 안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다른 겁니다.

성도들과 이야기할 때와 내 아이에게 이야기 할 때가 다른 겁니다.

목사와 이야기할 때와 사업 때문에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 할 때가 다른 겁니다.

예배당에 들어와서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닐 때가 다른 겁니다.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만 합니까?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교를 듣고 나면 더 골치가 아파지고 무거워지고 힘들어져 버립니다.

도저히 그 말씀대로 살 용기나 실력이 안 되는 겁니다.

아예 현재의 나라고 하는 존재하고는 도무지 관계가 없는 말씀들로 가득하니까

이젠 들으려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도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극복해가야만 하는 걸까요?

 

하나님의 뜻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해결해야만 합니까?

내 안에 있는 이 영적인 무기력감을 무엇으로 해소해야만 합니까?

 

대림절 둘째 주인 오늘은 유다서의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해볼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의 형제 유다 즉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쓴 서신입니다.

유다서는 초대 교회 당시 교회를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이단의 무리들을

교회의 성도들이 반대하도록 하기 위해서 쓴 편지입니다.

때문에 유다서가 단 1장에 그치는 짧은 편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많은 양의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의 이중성에 대한 오해를 해결할 방법은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경지에 빠져서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방법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악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생각, 행동이 다 죄인이 생각하고 죄인이 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혹은 또 다른 가능성을 보거나 하는 일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길은 우리 스스로 가는 길이 아니라

진리가 이끄는 대로 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진리 되신 말씀이 오늘 우리들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명하게 그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진리 되신 말씀이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를 만큼의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만약에 합당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처음에 말씀드렸던 이중성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아” 라고 부르시는 겁니까?

아니 이미 부르신 겁니다.

유다서에는 우리를 이미 세 번이나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르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조건에 합당하고 적합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고

또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부르신 겁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일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사랑하신 것입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어떤 행위나 생각에 관계없이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오해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사랑하시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본문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우리말 성경으로 그냥 읽으면 이건 4 가지의 동사가 나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축하며, 기도하며, 지키며, 기다리라 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 성경으로는 건축하며,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현재 분사의 시제입니다.

따라서 중단 없이 쉬지 말고 계속적으로 끝까지 하라는 의미입니다. 

건축하되 계속해야 하는 겁니다.

기도하되 쉬지 말고 해야만 하는 겁니다.

기다리되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겁니다.

 

그런데 지키라는 단어는 부정과거 명령형입니다.

그냥 단번에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씀을 드리면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계속 건축하면서,

성령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주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영생에 이르도록 자기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지켜라 입니다.

 

사실 1절에서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지키심을 입고 있는 존재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21절의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의 책임된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우리의 책임을 동시에 말씀하는 겁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나 자신을 지켜야만 합니까?

우리는 영생에 이르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천국이 아니면 우리는 지옥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붙어 있도록 지켜야만 합니다.

이 외에 딴 소리가 필요 없습니다.

천국에 가려면 지키는 것만이 최선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계속적으로 건축해가야만 합니다.

거룩한 믿음이란 3절에 나와 있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말합니다.

 

즉 복음입니다.

복음이 거룩한 믿음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세상과 같지 않다는 겁니다.

세상은 Give & Take입니다.

상대가 해줬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해주는 겁니다.

그러나 복음은 무조건 주신 겁니다.

아무런 대가, 상의, 협상 없이 단번에 그냥 주신 겁니다.

때문에 복음입니다.


고전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무조건 주신 그 은혜 위에서 살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보지 말고 좀 더디고 서툴고 어리석더라도 은혜 위에 살면 됩니다.


성령 안에서 계속해서 쉬지 말고 기도해가야만 합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성령님이 인도하고 도우시는 기도를 말합니다.


롬 8: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항상 말씀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가는 겁니다.

때문에 그 기도는 언제든지 인격적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언제든지 먼저 구합니다.


마지막으로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못된 흔적들도 생기게 됩니다.

우리가 다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주변에서 우리를 흔드는 방해꾼들도 많이 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워낙 우리를 미워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생활을 때려칠까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견디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대림절 둘째 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위에 살고,

기도하면서 살고

인내하면서 사는 거룩한 훈련을 하는 시간으로 삼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운 권세를 회복하고 승리하는

나무목교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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