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2011년의 해가 밝아서 오늘 이제 새해 첫 감사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나무목교회의 2011년 주제 표어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다 같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잘 새겨듣고,
올 한 해 우리 나무목교회 공동체에게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확실하게 붙잡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 나무목교회의 주제 표어가 “사랑 안에 하나 되는 나무목교회” 입니다.
주제를 선정하게 된 본문의 말씀은 바로 요한 사도가 쓴 요한 일서의 5장 1절 말씀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요한 사도는 사랑의 사도라고 하는 별명이 붙어 있는 사도입니다.
그가 죽을 때 제자들이 남기실 유언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물어봤는데 역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물어봤을 때도 역시 서로 사랑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사도 요한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이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니 더 리얼하게 말씀을 드리면 사랑은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요일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때문에 성경 66권의 전체를 압축하면 사랑이라고 하는 딱 한 가지 단어로 요약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의 기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랑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바로 알고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랑이 가장 많아야만 할 교회공동체 안에서 정작 사랑은 발견하기가 힘든 형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먼저 우리가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제대로 내려야만 합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해결할 수 있는
외형적인 어떤 문제가 아닌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아무나 다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분명하게 그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1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자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말이 좀 어렵게 꼬여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간단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이라야만 역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공통분모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사랑해야만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과감하게 표현을 하자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곧 구세주로,
구주로 믿는다는 것의 증거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사랑의 모습이 당연하게 따라 나오는 삶이 이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내 쪽에서 무슨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닌데
굳이 내가 남에게 아쉬운 표정으로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무슨 큰 영광을 보겠다고 내가 남에게 사랑하니 어쩌니 할 필요 없지 않느냐는 겁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이 가장 크게 넘어지는 대목입니다.
남한테 내가 아쉬울 거 전혀 없다는 겁니다.
세상의 철학이 갈수록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신앙 안에도 똑같은 현상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겁니다.
교회는,
성도는
그 이름 자체만으로도 그럴 수 없는,
전혀 개인적이거나, 이기적일 수 없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다시 태어날 수 없었던 그런 악당들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지금 경건하고 거룩하고 점잖게 폼을 잡고 앉아 있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면 도무지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그런 형편 무인지경들입니다.
때문에 오늘 사도 요한이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라고 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겁니다.
이건 정말 엄청난 겁니다.
요한복음 3장에 가보면 니고데모라고 하는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는
꽤 덕망이 높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대화를 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그 대화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다시 묻습니다.
4절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러니까 다시 예수님께서 거듭난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정확한 대답을 해주십니다.
5-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이제 자존심이라고 하는 옛사람의 더러운 본질이 없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살 때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육신의 옛 성품입니다.
거룩한 영으로 거듭나서 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겁니다.
때문에 다 내던지고 살아야만 할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갈 5:13-17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이 곧 우리의 자존심입니다.
남에게 꿀리기 싫어하고,
지기 싫어하고,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고,
내 삶에서 남의 도움이나 남의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때문에 남에게 선뜻 다가가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는 한다는데 도무지 영역 밖에까지 진출을 못하는 겁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을 하는 데까지 가야만 합니다.
자기가 직접 참여해서 가는 겁니다.
직접 해보는 겁니다.
해보는 것만큼의 즐거움과 재미와 기쁨이 있는 겁니다.
요즘 세상의 트렌드 중에 하나가 뭡니까?
나도 직접 해보자는 겁니다.
DIY라고 하는 것이 지금 유행 아닙니까?
DIY는 “Do it yourself”의 준말로 “네 자신이 직접 만들어라!” 라는 말입니다.
전문 업자나 대행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자기 생활공간을
보다 쾌적하게 만들고 수리하는 개념을 말합니다.
제가 올해는 우리 나무목교회 이 강단 벽을 한 번 직접 꾸며보려고 합니다.
신앙생활도 직접 해봐야만 합니다.
현대 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병이 저는 모든 것을 다 교회에 내맡기고,
자기들은 세상 속에서 숨어 지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 년 내내 행사를 한다고 바쁘고,
극히 일부 성도들만 그 행사들로 인해서 들들 볶이고 있는 것이
오늘 교회의 답답하기만 한 현실입니다.
언제까지 교회에다가 책임을 미루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직접 참여해봐야 합니다.
서로 같이 해봐야만 합니다.
나는 시간 없고,
나는 할 줄 모르고,
나는 이것저것 바쁘다고 핑계만 대지 말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사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직접 해봐야만 하는 겁니다.
사랑의 실천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가 먼저 아는 척 안 한다고 나도 똑같이 안하고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할 수 없는 겁니다.
상대의 반응 여부에 관계없이 나는 먼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나더러 먼저 사랑하라고 하셨지,
상대가 사랑하면 그 때 가서 반응을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왜 합니까?
공부를 해야 할 때는 그 의미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게 되면 뒤늦게 그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공부는 공부를 한만큼 세상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신앙생활답게 할 때 그 하는 만큼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쁨의 크기를 알게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신앙생활답게 하는 가장 큰 기준은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웃의 가장 먼저는 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 곧 우리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갈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올 한 해
우리 나무목교회가 “사랑 안에 하나가 되는 나무목교회” 라고 하는
표어를 가지고 함께 달려가려고 합니다.
속도는 절대로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굳이 속도를 내서 달려가지 않더라도 천천히 걸어서라도,
이 사랑의 길에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바람입니다.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가겠다고 하는 방향만 같으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기쁨과 감사,
그리고 행복의 삶이 서로에게 아름답게 전달이 되어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아름답게 누리는 복으로 가득 찬
2011년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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