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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나무목교회

[스크랩] 사람들아 들으라 (행13:13-41)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가 처음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 설교를 보고 있으면 한마디로 격세지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불과 얼마 전에 스데반 집사의 같은 설교를 듣고

분노하고 오히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설교를 합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그리고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사도 바울의 설교 중에

자신의 난처함이나

전에 자기가 저질렀던 과거사에 대한 변명이

조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옛날의 잘못에 대한 회개나 반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보면 정말 화가 날 정도로 뻔뻔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서 최소한의 반성 표시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런 소리는 하나도 하질 않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여기에 복음 전파의 거룩한 위대함이 드러나는 겁니다.


복음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소리이지

사람의 잘잘못을 가리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드러나는 겁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의 이전 모습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변화되고 새로워진 모습에 초점을 맞춰야만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 개인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충분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옳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는 그런 행위가 필요 없습니다. 왜죠?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

그 자체에 이미 하나님의 용서가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넓고 크신 용서가

이미 다 들어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과 허물 많음과 죄악을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 앞에 서서 나도 용서 받았으니까

당신들도 용서를 받자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위대함입니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용서가 복음 안에 들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이미 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아직도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거리낌이 있다면

내가 아직 복음 안에서 용서를 받은 기억이 희미한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뭔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근거를 진리에 두지 못하고

자신의 행위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직 이렇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또는 구원받지 못했다.’ 라고

스스로 엉터리 진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잘못된 죄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엇 때문에 구원이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분명히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고 말들을 하는데

엄격하게 말하자면 틀린 말입니다.

구원의 바른 진리와는 엄청나게 그 방향이 틀린 표현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

또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구원의 근거나 자격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있습니다.


 

오늘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도 바울이

설교하고 있는 내용 역시 그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통치를 강조합니다.

 

제가 불러드리는 말씀에다가 한 번 밑줄을 쳐 보실래요?


17절 “택하시고, 높여, 인도하여 내사”

18절 “참으시고”

19절 “멸하사 기업으로 주시고”

20절 “사사를 주셨더니”

21절 “사십 년간 주셨다가”

22절 “폐하시고 세우시고 가라사대 하시더니”

23절 “구주를 세우셨으니”


이게 다 어떤 내용입니까?

지금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구약성경의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누가 별별 소리를 다하면서

자기를 자랑하고 떠들어도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어제 저녁에 박찬혁 전도사가 결혼 인사차 찾아 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김덕현 목사님의 “건강한 교회”는 어떤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는 괜찮아요. 벌써 교육전도사를 세웠답니다.’ 라고 그럽디다.

 

그런데 밤에 잠이 안 와요.

‘아니 나보다 더 늦게 했는데도 벌써 교육전도사를 세웠다는데 나는 뭔가?’ 라는

한심한 생각과 처량한 마음이 파도를 치는 겁니다.

그래 새벽에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정말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냐?’고...

그랬더니 마음에

‘나무목교회는 네가 하는 목회가 아니라 내가 이끄는 목회다.’ 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너는 기꺼이 건강한교회를 축하해주고 축복해줘라.’라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이 뭡니까?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다스리심에도 불구하고

그걸 외면한 채 자기들이 세운 기준과 잣대로 살아간 것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잘 지켜보려는 생각에

이런저런 기준과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꾀에 빠진 것입니다.

자기들의 의와 공로로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보질 못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쉽다하든지 어렵다 하든지 관계없이

우리 인생의 어느 부분이라도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때가 이르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뭡니까?

기한과 때입니다.


18절 “사십 년간”

19절 “(약 사백 오십 년간)”

20절 “그 후에”

21절 “그 후에”, “사십 년간”

23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기한과 때는 기다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가장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는 건 기다리는 것입니다.


히 6:11-15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기다리는 데에 아주 이골이 나야만 합니다.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인내가 더욱 필요합니다.

아직 영글지 않은 하나님의 때는 참고 기다리면 됩니다.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또 하나는 사도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값없이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하게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죄인 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약속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증거입니다.

모든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된 성경말씀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9절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아무런 차별 없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특정한 어떤 자격조건이나 열심 있는 신앙행위가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도 설교할 수 있고

오늘 저도 설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

이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나는 중도에 포기할 마음도 들고

너무 힘이 들어서 낙심도 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붙들고 가셔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붙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를 붙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기죽을 필요가 없고

교만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배후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붙드십니다.

나무목교회를 붙드십니다.

그러니 실패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설교는 “사람들아 들으라” 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조바심을 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완성할 것입니다.

주눅 들거나 교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삶은 나 때문에 가능한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한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면 당연하게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 앞에서 누리고 서있는 겁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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