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사도 바울이 그의 복음 전파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감당하게 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일생을 통해서 총 3차례의 복음전파를 위한 여행을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전도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입니다.
오늘부터 그의 히브리식 이름인 사울을 완전하게 벗어던지고
로마식의 바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 부르심을 받아서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바울은 바로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바나바와 함께 이방인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나무목교회가 가장 크게 신경을 써야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에서 교회가 가장 모른 척 합니다.
이 말은 선교사를 보내는 일보다
더 다른 일을 우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우선하고 있을까요?
교회 건물 임대료 내는 일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유지 보수하는 일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교회 성도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고 먹고 노는 것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임대료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교회는 세울 때부터
선교사를 보내고 돕고 섬겨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좀 어려우니까 나중에 좀 더 나아지면
그 때 더 뭔가 잘해보자! 라고 생각하는 것은 영원한 숙제일 뿐입니다.
나중에 보자는 사람은 무섭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외상이라면 황소도 잡아먹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가치관은 나중에는 어떻게 될는지 모르니까 오늘 즐기고 보자는 주의입니다.
그래서 노래도 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며는 기우나니라’
그렇죠?
그러나 성경에서 내일에 대한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은
오늘을 충실하게 살라는 겁니다.
오늘에 우선권이 있습니다.
이번에 부활절 감사헌금을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실 우리 교회 입장으로 보면 엄청난 돈입니다.
남들이 생각할 때 우리 교회가 아직 먹고 살만한가보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이번 달에 처음으로 월세를 아직 못 냈습니다.
그런데도 선교헌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모르면 모르지만 선교지에 행사가 있어서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데 최소한의 도리는 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교회가 하는 기본적인 일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는 안디옥교회는 뭐가 제대로 되어있어서
지금 선교사를 보냅니까?
어떤 면에서는 아직 자기들 교회도 제대로 세워지지 못한 초대교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꺼이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 선교사로 보내고 바나바와 바울이 구브로 섬을 제일 먼저 들어가게 합니다.
구브로 섬은 지금으로 말하면 지중해에 있는 키프로스 섬입니다.
로마와 소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거점입니다.
훗날 로마 선교의 중요한 기지가 되는 섬이 바로 구브로 섬입니다.
구브로 섬을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시고
바나바와 바울의 첫 선교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디옥교회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이 발견됩니다.
2절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주를 섬긴다는 말이 바로 교회공동체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주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어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그들이 금식하고 주를 섬길 때에” 라는 말입니다.
예배라는 의미를 가진 worship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주를 섬긴다는 것은 바로 예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무슨 음성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불러서 시키시는 일을 들었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만 할 일들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부디 깨달으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려고 나오는데
안디옥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셔서
일을 시키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자신들이 감당해야만 할 사명을 깨닫고
기꺼이 그 음성에 자신들을 순종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많은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서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차지하고 누리고 갖게 되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다 이룬 줄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더 많이 받았고
누가 더 많이 가졌나를 자랑하는 것으로
귀한 세월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엡 5:15-18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워낙 에베소서가 교회론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교회는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겁니다.
이걸 단순히 술 마시지 말라는 걸로만 이해하면 안 되는 겁니다.
술 취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을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데
술 취해보면 오직 자기 혼자만 즐겁고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주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대해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자기네 어려운 것 탓하거나 핑계대지 아니하고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보내라고 하시니까
아무 말 없이 금식하고 기도하고 안수해서 그냥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계속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말 자기들이 받을 복에 대한 관심으로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예배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들의 모든 예배는 드릴 때마다
나를 하나님의 뜻에 드리는 헌신예배가 되어야만 합니다.
한복 자랑하고
모인 숫자 자랑하고
찬양 잘하는 것을 뽐내는 헌신예배가 아닙니다.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깨닫고
나를 온전하게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자세가 있는 예배이여야만 합니다.
오늘 저녁 기도회도 그런 예배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기만 하면
하나님은 분명하게 삶의 현장에서 우리들을 인도해주십니다.
내가 만나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귀한 영혼들을 만나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전하게 하십니다.
오늘 바나바와 바울을 보세요.
그들이 찾아간 구브로 섬에서 가장 높은 권력자인 총독 서기오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보세요.
바나바와 바울이 먼저 서기오 바울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총독인 그가 먼저 그들을 불렀습니다.
7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장소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바예수는 총독을 모시고 있는 신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총독이 먼저 바나바와 바울을 부른 것입니다.
당시의 총독은 어떤 존재입니까?
이 구브로 섬에서는 최고의 영향력이 있는 실력자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백령도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백령도에는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병대 사령관이 백령도에서는 최고입니다.
그가 명령하는 것이 백령도 전체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천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모든 배들이
다 그의 지시에 의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한마디로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때 백령도의 사령관이 안수집사였습니다.
그런데 해병대에 집회를 들어갔더니 사령관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가 우리한테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움직이려면 대형버스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당장에 45인승 군용버스가 운전기사까지 딸려서 나왔습니다.
백령도에 있는 6일 동안 그 버스가 모든 것을 다 해줬습니다.
누가 이렇게 했을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당시에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때입니다.
오히려 박해받고 핍박받는 것에 더 익숙했던 기독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핍박하고 박해하던 세력 중에
하나가 바로 로마의 세력입니다.
그런데 그런 로마의 총독이 복음을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지금 바나바와 바울은 초보 선교사입니다.
생전 처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구브로 섬의 최고실력자인 총독이
복음을 듣고자 했다면 이건 누가 이렇게 해준 것입니까?
누가 이렇게 하신 것인 줄 모르시겠습니까?
혹시라도 그렇다면 누가 바나바와 바울을 보냈는지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누가 보냈습니까?
4절에 보니까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보내신 겁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열심과 뚝심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의 실력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부터 끝까지 다 하시는 일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겔 39:25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다만 우리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동역자로 인정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언제든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 앞길에 안개가 자욱하고
어려운 골짜기들로 가득하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든지 다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심을”
우리 나무목교회와 여러분 모두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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