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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령이 하시면 (행 1:15-16 / 08년 6월25일 수요기도회)


경제를 살린다는 대통령을 뽑고 나니까 지금 온 국민들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경제대통령 때문에 우리 기독교가 많은 욕을 먹는 것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장로님을 대통령을 만든다고 하더니 경제는 오히려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생각하고 깨달아야만 할 문제가 바로 이 점입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목숨을 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도덕은 문제가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하라고

대통령을 뽑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 민족 전체가 그 문제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삶의 전부를 걸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영적 교훈이 바로 그것입니다.

성도들은 먹고 사는 문제보다 좀 더 나은 가치의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러면 당장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먼저 등장을 합니다.

사람은 몇 사람만 놀러간다고 하더라도 가장 먼저 먹는 것부터 챙깁니다.

본문의 120명은 요즘보다 더합니다.

지금부터 무려 2천 년 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이 움직이고 사는 것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그냥 돈만 있으면 모든 가능한 지금도

120명이 움직이고 먹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주 토요일만 되면 저희 부부는 완전 스트레스입니다.

저는 설교준비를 하고 주보를 만드느라고 그렇습니다.

집사람은 주일 점심을 준비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둘 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요즘 전 생전 사용하지 않던 샴푸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당시에는 어떻겠습니까?

120명이 먹는 게 정말 장난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그 문제로 전혀 염려하질 않습니다. 그런 걱정이 없습니다.

 

오늘 베드로가 일어나서 제자들에게 제안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가롯 유다가 자살 한 것은 이미 성경에 나와 있던 문제라는 것입니다.

또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할 것도 이미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이 가롯 유다의 뒤를 잇도록 세워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성경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자신들의 할 일은 성경 말씀대로 따르고 하자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사실 분명하지 않습니까?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이 입에 달고 살듯이 말하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의식이요, 가치관이요, 신앙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현대가 문명과 문화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믿음의 수준은 전혀 진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 우선하고 삽니다.

우선도 그냥 우선이 아니라 최우선입니다.

 

사실 먹고 사는 형편이 초대교회 때보다 못합니까?

아니 어떤 면에서는 충분히 먹고 살만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보다 훨씬 더 강한 욕심으로 먹고 사는 것에 연연해하는 것 같습니다.


잠30:5-9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개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 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 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먹고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한데 우리는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문제(먹고 사는 문제)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고 사는 것입니다.


‘아니 그럼 말씀을 지키자고 굶어 죽으라는 것입니까?’ 고 물으신다면

저는 그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 성경의 뜻이라는 걸 말씀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되는 일을 내가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하니까 대통령을 믿는 사람을 세워야 한다는 생각에 까지 미치는 겁니다.

아닙니다.

대통령을 믿는 자를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만 합니다.

정치와 신앙의 길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정치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지만 신앙은 하나님을 보고 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부분에서 정말 확실하고 탁월했습니다.

그들이라고 해서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가 전혀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저는 오로지 한 가지 가능성 밖에 없다고 봅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다 해결이 난 것입니다.


제가 어려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왜 그렇게 콧물을 흘리고 다녔는지 모릅니다.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자랑스럽게 그 콧물을 닦으라고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때만 그랬습니까?

초등학교 4-5학년 때까지 싯누런 콧물을 닦아내느라고 오른쪽 왼쪽 할 것 없이 상의 소매가 반들거렸습니다.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그 때는 대부분 아이들이 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 보세요.

초등학교 아이들은 고사하고 갓난아이들도 별로 콧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감기에 걸렸거나 아프지 않으면 콧물 흘리는 때가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언제부턴가 우리 살아가는 주변의 환경들이 그만큼 좋아진 것입니다.

살아가는 주변 환경과 개인의 위생상태가 좋아지니까 흘러내리는 콧물들이 사라졌습니다.


몰론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개인 간의 치열한 경쟁이 심한 오늘이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한한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절대적인 빈곤보다 상대적인 빈곤이 더 강조되기도 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그 해결책은 오로지 한 가지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결코 달라지질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바로 먹고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다 맡겨버렸기 때문에 해결을 한 것입니다.


 

마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다 아십니다.

우리의 필요와 원함을 이미 다 아십니다.

아실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을 다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굳이 찾거나 구하지 않더라도 이미 넉넉하게 해결해 주시려고 다 준비하셨습니다.

때문에 좀 구차하게 살지 말아야만 합니다.

 ‘먹을 것, 먹을 것!’ 하면서 그 필요를 입에 달고 살지 말아야만 합니다.

비록 오늘의 현실 문제가 크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만약에 그런 생각으로 갈등하고 있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태도부터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런 태도가 어떤 것입니까?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도를 뽑는 자격 중에 나와 있습니다.


22절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 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증거 해야만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강력하게 요청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분명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명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도한다고 다니는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저런 형편과 처지와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방법들을 다 동원해서 전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것은 삶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 눈앞에만 보여 지는 행사뿐일 때가 참 많습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여지는 전도의 한 방법으로서의 전도일 뿐 도저히 삶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왜 제자들이 새로운 사도를 세우려고 하면서 자기들과 함께 다닌 사람이라는 단서를 붙였을까요?

그건 바로 삶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행사나 프로그램이 아닌 전도를 하고 있는 삶의 모습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전도를 위한 행사는 많이 하는데 삶 속에서 보여 지는 부분이 너무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전도 행사한다고 잠간 교회를 같이 가자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삶 속에서 자발적으로 교회를 따라 나오게끔 만들어내는 성도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요소가 되는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가장 믿음을 줄 수 없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앞장 세워서 자기들의 이권이나 욕심을 채우기에만 급급할 뿐인 것이

오늘 현대 교회들의 가장 큰 허점이요, 문제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작년에 사립학교법 반대 투쟁을 한다고 삭발까지 하셨던 많은 목사님들은

지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는 뭣들 하고 계십니까?

때문에 세상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교회들마다 영혼구원이 중요해서 전도를 한다고 별별 행사를 다하지만

그것이 자기들 세력을 불리기 위한 것으로 밖에는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 언제 교회가 쪽수를 불려야한다고 했습니까?

영혼을 구원하라고 하셨습니다.


엡 2:1-7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우리도 전에는 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사는 일에 욕심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우리 육체가 원하고 요구하는 것만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대로 내키는 대로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긍휼하심을 두고두고 전해야만 하는 거룩한 책임을 가졌습니다.

때문에 이전의 욕심을 보이고 살 수는 없습니다.

세상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집착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런 가치보다 더 귀하고 높은 가치가 있음을 삶을 통해서 보여줘야만 합니다.

물론 우리들의 근본적인 실력으로는 잘 안 되는 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롬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성령께서 다 하십니다.

아니 나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성령이 하시면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시면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다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영적 일은 하나님 앞에 구하고 찾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해서 성령이 하시면 됩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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