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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큰 용사 기드온

큰 용사 기드온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사사기 6:12(개역개정)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성경 사사기는 여호수아 이후 약 400년간의 기록입니다. 그때가 이스라엘 역사의 암흑기였습니다. 사사기의 역사는 일정한 사이클로 진행이 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나태해지고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집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주변의 족속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깨우치는 채찍으로 사용하십니다.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넷째,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십니다.
사사기가 주는 교훈이 많습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고통의 시작이라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간의 사사시대 동안 주변 족속들에게 반복적으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변 족속들에게 학대를 당했던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하며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고통입니다.
둘째, 고난을 당할 때는 하나님을 찾으라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을 빨리 찾으면 빨리 구원해주셨고, 하나님을 늦게 찾으면 늦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주변 족속들에게 7년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구원을 받았는데 또 어떤 때는 40년 동안 고통을 당하다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신속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왕이 되셔야 평안하다는 교훈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절은 삿 21:25입니다. 이 말씀이 사사기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에 왕을 세워주지 않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길 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평안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걸 모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면 평안한데,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왕이 되어 돈만을 따라갑니다. 또 사람이 왕이 되어 사람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니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십시오. 그 때 평안이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 중에 부르짖으면 기도 응답으로 사사를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나오면 하나님의 일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은 중단 되고 하나님의 사람이 나올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교회의 어떠함은 그 교회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 하시느냐로 결정 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하나님이 어떻게 일 하시느냐는 그 교회의 교인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로 결정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사람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사사는 재판관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사들의 역할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변 족속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구원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사사를 총 16명으로 봅니다. 그 중에서 엘리와 사무엘을 빼고 나머지 14명은 사사기에 나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루는 본문에 나오는 사사는 기드온입니다. 사사 중에 대표적인 사사가 삼손과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이 살던 시대에는 미디안 족속이 이스라엘을 학대했던 시대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를 하면 쳐들어와서 곡식을 빼앗아갔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의 눈치를 보며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셨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후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이스라엘을 치려고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기드온에게 임하셔서 이스라엘 가운데서 군인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때 모인 사람들이 3만 3천 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두려워서 떠는 사람 2만 2천을 돌려보내니 1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군인의 숫자를 줄이셨습니다. 1만 명 중에서 물을 마실 때 손으로 움켜 입을 대고 핥는 자 3백 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한 밤 중에 기드온은 3백 명의 군사들에게 한 손에는 항아리에 횃불을 넣게 하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나팔 소리가 날 때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높이 들고 소리치게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 놀란 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자기들끼리 치고 죽였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오늘 설교는 3백 명의 용사를 데리고 군인의 수가 메뚜기의 많은 떼와 같고 해변의 모래 같았던 적을 물리쳤던 사사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의 모습을 보시며 인정해 주시는 분이시다.
삿 6:12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 당시 기드온은 큰 용사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결코 큰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농부에 불과했었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난 후에도 그는 큰 용사라는 말을 듣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의 상을 찍어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겼던 우상입니다. 거짓된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사람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백주에 하지 못하고 밤에 행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하나님이 명하셨는데도 사람을 두려워했던 사람입니다. 결코 큰 용사라는 말을 들을만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미디안과 전쟁을 하겠다고 장정 3만 2천 명이 모였는데, 그 중에 3만 1천 7백 명을 돌려보내고 3백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 되니 기드온이 두려워 떨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두렵거든 미디안 진영으로 몰래 들어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이 기드온은 자기 부하와 함께 미디안 진영으로 몰래 숨어들어 간 것을 보니 기드온은 그 상황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도 큰 용사의 모습은 아닙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볼 때 기드온은 절대 큰 용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사람의 눈으로 내리는 평가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과거를 보고 판단하고 또 현재의 상태를 보고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비전의 눈이고 믿음의 눈입니다.
현재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떠하든 하나님이 믿음의 눈, 비전의 눈으로 보시고 믿음의 선포를 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둘 사이에 자식이 없었던 아브람과 사래에게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라는 의미를 가진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시고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뜻대로 그들을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사회학이론 중에 ‘거울 자아 이론’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쿨리라는 학자의 이론입니다. ‘거울 자아 이론’의 핵심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대로 된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제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비전대로 그대로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뮤지컬 중에(라만차의 사나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무사인 라만차가 말을 타고 달려가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까이 가 보니 창녀가 도로 가운데 쓰러져 있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며 온갖 욕설을 내뱉습니다. 라만차는 돌에 맞고 욕을 먹으며 신음하고 있는 창녀 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창녀가 아니고 귀부인이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창녀가 물었습니다.“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지나가는 라만차 사나이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귀부인이라고 하십니까?”, “내가 보기엔 당신은 진짜 귀부인 티가 납니다.”, “아닙니다. 나는 담배꽁초 같은 여자입니다. 온갖 남자들이 내 몸에서 달콤한 진액은 다 빨아 먹고 내 육체는 담배꽁초처럼 버립니다.” 라만차는 “아닙니다. 당신은 진짜 귀부인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죽어가는 라만차 곁에 한 귀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라만차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물었습니다. “나는 창녀였지요. 모든 남자들이 나를 멸시했지요. 그때 당신은 내 곁에 다가와 나에게 ‘당신은 귀부인 이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의 자화상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귀부인이 될 수 있구나. 당신의 말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나는 귀부인이 되었습니다.” 창녀였던 이 여인은 라만차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자화상을 바꾸었고 그는 훗날 창녀에서 귀부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거울 자아 이론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자신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과거의 상처라는 안경으로 보고 있나요?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태의 안경으로 보고 있나요? 아닙니다. 안경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과거의 안경이나 현재의 안경으로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안경으로 봐야 합니다. 믿음의 안경, 비전의 안경으로 사람을 봐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믿음대로 역사를 하시는데 히 11:1을 보니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며칠 전에 제 큰 아들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작은 아들이 엄청나게 큰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우리 둘째가 성악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저는 그 아이의 과거의 실력을 생각하며 그 아이를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아이의 현재는 과거보다 더 많이 좋아졌지만 제가 그 아이를 현재의 모습으로 보아도 안 됩니다. 장차 큰 무대에서 노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비전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볼 때도 그런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과거의 상처라는 안경으로 보지 마십시오. 현재의 연약함이라는 안경으로도 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미래의 모습을 믿음의 눈, 비전의 눈으로 보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오늘 기드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첫 번째 메시지입니다.

2. 하나님은 약한 자도 위대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도 위대하게 사용하신다’는 메시지는 기드온을 통해서 들을 수 있고 또 기드온의 300 용사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기드온의 군대는 300명이었습니다. 반면에 적들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던 적의 수는 삿 7:12을 보면 엄청나게 많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 숫자가 메뚜기 떼와 같고 해변의 모래와 같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의 300 용사는 적들에 비하면 너무나 적고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한 기드온의 용사들을 붙들고 사용해주시니 한 번의 전쟁으로 적들을 대파하는 큰일을 행했습니다.
어제 친구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백두 사역을 할 때 우리를 인도해줄 분의 친형이라 중국과 연락을 위해서 통화를 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약 100억 교회를 건축하고 교인들이 우리교회보다 훨씬 많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제가 부럽답니다. 왜 부러운고 하니 우리교회가 선교 나가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숫자는 적어도 담임목사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이스라엘 가자면 이스라엘에 가고 중국 가자면 중국에 가는 모습이 보기 좋고 부럽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믿음의 헌신을 하니 제가 작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데 큰 교회 목사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구성원들의 헌신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의 숫자와 사람이 가진 능력에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니 사람의 숫자가 적고 또 사람의 능력이 부족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니 소년 다윗이 3m가 넘는 골리앗도 쓰러뜨리고, 기드온의 300 용사가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적들도 물리쳤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느냐가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1623년 영국이 어지러울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농부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선한 지도자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일꾼이 필요합니다. 보내주옵소서”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강한 인물, 선한 사람, 위대한 일군은 바로 너다” 그러나 그는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저는 농부에 불과합니다. 저는 아닙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성경을 펼치라고 하십니다. 빌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엎드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강력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청교도 지도자가 되어 영국을 경건한 나라로 만들었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입니다. 연약한 농부도 하나님이 붙드시니 나라를 살리는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도 위대하게 사용하신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 받는 것입니다.

3.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라.
기드온을 통해서 주시는 메시지 세 번째는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라’입니다.
삿 8:22-28을 보면 전쟁 후에 기드온이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기드온에게 백성들이 자기들의 왕이 되어달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단호하게 백성들의 청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기드온이 이상한 짓을 합니다.
기드온이 백성들에게 전쟁에서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요구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준 기드온의 공로에 감사해서 기쁘게 금귀고리를 내놓습니다. 기드온은 그 금귀고리를 가지고 에봇을 만들고 그 에봇을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입니다. 기드온이 왕이 되는 것은 거절했으나 제사장이 되려는 욕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가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향에 두니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였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의 법궤는 실로에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절기 때나 여호와께 물을 일이 있으면 반드시 실로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에봇을 만든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물을 일이 있으면 법궤가 있는 실로로 가지 않고 기드온의 에봇이 있는 오브라로 갔다는 말입니다. 삿 8:27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기드온이 만든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법궤가 있는 실로로 간 것이 아니라 오브라로 간 것입니다. 에봇이 우상이 되어 영적인 간음을 한 것입니다.
왜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어서 실로가 아닌 오브라에 두었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이 왕이 될 수는 없지만 이스라엘을 장악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기드온이 의도했던 대로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왕은 되지 않았으나 에봇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장악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아갈 일이 있으면 법궤가 있는 실로로 간 것이 아니라 금으로 만든 에봇을 가지고 있던 기드온에게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은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백성들이 볼 때에는 굉장히 겸손하고 경건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기드온이 변질 된 것입니다.
기드온은 처음에는 변화되었습니다. 겁쟁이가 주님을 만나고 큰 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승리한 후에는 변질 되었습니다. 사악한 욕심이 들어가니 변질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약 1:17에 보면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히 13:8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지만 사람은 늘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가 있고 부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는 그냥 변화나 발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부정적인 변화는 변질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강문호 목사님은 “변질과 변화는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의미”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쌀이 썩은 것은 변질된 것입니다. 쌀이 식혜가 된 것은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명 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제자의 길에서 변질되어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하루에 3천명, 5천명을 회개시키는 대사도가 되었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전도 잘 하던 사람이 세상으로 나간 것은 변질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던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는 것은 변화된 것입니다.
우리는 변질 되면 안 됩니다. 변화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변질 됩니다.
하나님은 변화지 않으시지만 변화시키는 데는 최고이십니다. 물이 주님을 만나니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쓴물에 주님의 능력이 임하니 단물이 되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주님을 만나니 전도자 바울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기를 축원합니다.
교계의 어른 중에는 변질 된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시대는 된 교인들도 많습니다. 앞으로 유혹과 핍박은 점점 더 강력해 질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 변질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자신을 살펴봅시다. 나는 계속해서 변화되고 있는가 아니면 변질되고 있는가 자신을 살펴보시고 변질 되었다면 회개하시고 변화를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 교인들이 금식기도를 통해서 변화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고3 때 닭 장사 하시는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닭을 팔아봤습니다. 주로 노계를 팔았습니다. 닭이 알을 낳다가 늙게 되면 먹기만 하지 알을 낳지 못 합니다. 그러면 주인은 늙은 닭을 팔든지 변화시킵니다.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닭을 일주일 동안 굶깁니다. 금식을 시킵니다. 그러면 완전히 닭의 체질이 바뀝니다. 그러면 다시 알을 잘 낳는 닭이 된다고 합니다. 금식이 닭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금식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금식기도를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주님이 주시는 음성을 정리합시다.
1.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나 현재가 아닌 미래의 모습을 보시며 인정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 비전의 눈을 가지고 자신과 주변과 만사를 보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약한 자도 위대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약함 때문에 한숨 쉬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3. 변질되지 말고 변화됩시다. 주님을 가까이 하면 변화됩니다. 주님과 멀어지면 변질됩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서므로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시길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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