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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건하게 사는 방법

경건하게 사는 방법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디모데후서 3장 12 - 17절(개역개정)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성경으로부터 멀어지면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유럽국가들과 미국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드려서 복을 받은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성경 말씀을 멀리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유럽과 미국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역사는 실로 짧은 역사입니다. 1776년에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1950년에서 60년 사이에는 전 세계 GNP의 50%가 미국의 것이었습니다. 연감을 찾아보면 그 당시 미국의 자동차수와 전 세계 자동차 수가 맞먹고, 전 세계의 전화기 수와 미국의 전화기 수가 거의 같았고, 전 세계 국방비와 미국의 국방비가 거의 같았습니다. 그 당시 세계인들은 미국 땅을 동경하여 이민가기 위해 줄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60대 존 F. 케네디가 집권하면서 신앙은 자유이지 꼭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공립학교 및 국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것을 폐지하고 십계명을 제거하였습니다. 그 후 미국은 급격히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니 하나님도 그들을 떠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후 미국은 월남전에서 패배하였고, 히피족들이 거리를 누비게 되었고, 마약과 음란이 청소년들 사이에 파고들어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에이즈환자와 동성연애가 판을 치고 있으며, 매년 1천억 불 이상의 적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강의를 폐지할 당시 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암살되었고 그 동생들도 암살되거나 비명에 죽었고 그 ! 자녀들 까지 요절하는 불행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바로 하는 것은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만 아니라 가정도 살리는 길이고 국가도 살리는 길입니다. 소돔성은 경건한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고, 예루살렘은 의인 한 사람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 나라에 임하는 것을 막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지금 이 나라는 평안한 것 같지만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통치자 김정은은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그의 감정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서 ‘우리 식의 타격’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항간에는 그 우리 식의 타격이 땅굴을 통한 도발일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방부에서는 땅굴이 22개가 있다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38년간 땅굴 전문가로 활동한 이종창 신부와 김진철 목사가 북한의 땅굴이 서울역과 청와대 주변까지 침투했다며 북한의 땅굴 도발의 위험성을 전했습니다. 김일성이 생존 당시 전쟁시 땅굴의 필요성을 역설했답니다. 1968년 1월 김일성은 당군사위원회에서 “적의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어전과 함께 적 후방 중심에 제2전선을 형성하고 배후를 강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보여단 주력부대가 삽시간에 적의 중심으로 침투할 수 있는 땅굴을 미리 준비해둬야 한다. � 求�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이 땅굴이 몇 십 배의 진가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답니다. 또 “남침땅굴 하나가 핵폭탄 10개보다 더 위력이 있다”며 땅굴의 가공할 위력을 설파한 바 있다고 합니다.
이 나라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가운데 있는 것은 안보문제만이 아닙니다. 경제구조의 문제와 도덕적인 문제 등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한국교회의 타락입니다. 하나님은 나라가 타락해도 그 나라의 의인들을 보시고 그 나라를 지켜주시는데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의 심판을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한국교회는 세속화 되었습니다. 특히 종교혼합주의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악입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신앙으로 서야 합니다. 경건한 생활을 하며 나라를 위한 헌신된 기도로 이 나라의 심판을 막아서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문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2개의 문이 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마 7:13,14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습니다. 들어가기 쉬운 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들어갑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합니다. 협착하다는 말은 험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문은 찾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제자요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2개의 문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넓은 문이고 또 하나는 좁은 문입니다. 하나는 사망의 문이고 하나는 생명의 문입니다. 사망의 문은 악한 자들이 찾는 문입니다. 13절에 보니 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고 속이는데 갈수록 더욱 악해지고 더욱 속이게 됩니다. 생명의 문은 경건한 자들이 찾는 문입니다. 그 문은 좁습니다. 왜냐하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박해이기 때문입니다. 12절에 보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들은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경건하게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해져도 악한 세상과 짝하지 않고 구별된 생활을 하는 것이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살면 잘되고 형통해야 하는데 경건하게 사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박해라고 말씀합니다.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박해가 온다할지라도 우리 그리스도인은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이 악해지고 더욱 악해지더라도 너는 경건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바울은 경건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이 구절에 집중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배우라.
경건하게 살려면 먼저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기 때문에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매뉴얼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해주는 책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63빌딩은 강을 끼고 지어진 빌딩입니다. 강의 주변은 지반이 주로 모래이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63빌딩은 희한하게 강을 끼고 지어졌고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견고하게 서있습니다. 여러분! 강을 끼고 63빌딩을 지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무슨 특수공법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땅을 파보니 지반이 거대한 반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반이 반석이기 때문에 63층이라는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었고 63빌딩은 지금도 견고하게 서있는 것입니다.
기초가 견고해야 높고 큰 빌딩을 지을 수 있듯이 신앙의 집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신앙의 기초를 견고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하게 산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경건하게 살려면 성경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야구경기에서 심판이 심판을 잘 보려면 경기 룰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제 뉴스에 보니 김응룡 감독이 심판이 룰도 잘 모른다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투수가 공을 유니폼에 문지르면 안 되는데 넥센의 오재영 투수가 계속 그 동작을 반복해서 심판에게 어필을 했는데 심판이 ‘공에 기스가 나지 않아 괜찮다’는 말을 했나는 것입니다. 심판이 룰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심판이 심판을 제대로 보려면 경기의 룰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성령을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약 30명 정도가 은혜를 받아서 성가대 의자에 모여서 늘 기도회를 했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방언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친구들은 믿음의 길에서 떠났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믿음을 버리고 세상으로 갔는데 저는 오히려 믿음이 더 좋아져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주님을 버렸는데 저는 믿음이 더 좋아진 것이 이상해서 주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왜 저는 믿음이 더 좋아졌나요?” 그 때 성령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성경을 읽지 않았니...” 맞습니다. 저는 은혜를 받은 후 지금까지 꾸준히 성경을 읽어왔습니다. 롬 10:17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을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정해진 분량을 읽으십시오. 먼저 신약을 5독 정도하고 난 후에 구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반복해서 계속 읽으십시오. 많은 성경공부가 있지만 저는 이 방법이 믿음이 성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하시고 주리신 상태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구약성경 신명기에 나오는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셨습니다. 그러자 마귀가 물러가고 천사가 수종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시험이 많습니다. 시험이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려면 성경을 배우십시오. 성경 말씀은 마귀를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노이로제는 많은 경우 귀신의 역사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귀신의 역사로 노이로제가 발병하기 때문에 귀신을 물리치기 위하셔는 강력한 영적인 무기가 되는 성경 말씀을 사용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 박사는 노이로제나 우울증 환자를 치료할 때, 하루에 두 번씩, 아침과 저녁으로 시편 23편을 묵상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그 환자들이 모두 다 노이로제에서 해방 되었다고합니다. 아침에 시편 23편 한번 읽고 저녁에 한번 읽게 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한 영들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성경을 배우십시오.

2. 확신하라.
확신한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이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말은 의심한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배워야 하고 배운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엡 4:13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과 관련해서 세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 아는 것도 없고 믿지도 않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믿는데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모르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미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요즘은 이단의 도전이 많습니다. 알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은 이단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진리를 왜곡해도 왜곡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가 신비한 체험을 좀 했다고 하면 혹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알기는 아는데 믿지 않는 것입니다. 지식만을 추구하면 알기는 아는데 믿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 생활을 했는데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런 경우입니다. 아는 것은 많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 경건은 없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건강한 믿음은 진리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기도응답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믿음으로 되고요. 천국도 믿음으로 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천국에 갑니다. 믿음을 갖는 것은 인생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입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는 110층이었습니다. 독일의 건강한 청년이 1층에서 110층까지 계단을 이용, 올라가는 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40분이었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시작했으나 30층쯤 올라가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숨을 헐떡거렸습니다. 그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20개 층을 오르고 다시 쉰 뒤 10개 층씩 올라갔습니다. 그는 마지막 층에 오르자 기진맥진해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면 1층에서 110층까지 오르는 데 28초밖에 걸리지 않는답니다. 110층 빌딩도 노력하면 걸어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입니다. 해발 8.848m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산이 백두산입니다. 해발 2744m입니다. 그렇게 높은 산도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노력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엘리베이터를 타듯이 천국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갑니다.
믿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로마에 가면 카타콤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이 420km라고 하는데 카타콤은 그 굴의 길이가 10배도 더 넘습니다. 수많은 굴이 있습니다. 그 곳에 박해 받던 크리스천들이 숨어서 살았습니다. 로마 사람들의 핍박을 피해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어떤 때는 거기서 아기를 낳았는데 햇빛을 못 보니까 그냥 죽었습니다. 죽으면 그 옆을 파고 묻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햇빛을 보지 못하고 굴속에서 숨어살던 크리스천들이 벽에다 새긴 글씨 가운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들이 결국 로마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극복하는 힘을 제공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히 11:6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를 말씀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두 가지 믿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은 거기에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그것을 기뻐하시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은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예배로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할아버지가 계시는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제가 할아버지를 찾아왔다고 저에게 1천 원짜리 지폐를 한 장 주셨습니다. 그 당시 1천원이면 아마 지금 10만 원 정도 되는 돈일 것입니다. 저는 생각지도 못했던 돈을 받았습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위하여 일한 것도 아니고 또 착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는 제가 할아버지를 찾아왔다고 거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 상은 영적인 것일 수도 있고,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게 주시기도 하시고 모르게 주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배운 것을 확신할 때 배운 대로 살아집니다. 말씀대로 살려면 말씀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야고보서를 보면 살아있는 믿음은 행함이 함께 합니다. 행하려고 노력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믿으면 행해지는 것입니다.
1992년도에 한국 사회는 다미선교회 열풍으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믿음이었지요. 그런데 잘못된 믿음이었지만 그것을 확신하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행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에 종말을 외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흰옷을 준비하고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 외에 종말을 대비한 여러 가지 행동들을 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들을 했습니까? 잘못된 믿음이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행동하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 배운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인생의 교과서로 믿어야 합니다.

3. 거하라.
거하라는 말은 머무르라는 말입니다. 내가 배우고 확신하는 진리 안에 머물러야 경건한 삶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 저기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는 한 자리에 있어야 잘 자랍니다. 나무를 자꾸 옮겨 심으면 나무가 죽습니다. 한번 정도는 옮겨 심을 수 있지만 자꾸 옮겨 심는 것은 나무를 죽이는 일입니다. 거한다는 말은 여기 저기 옮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을 할 때 보면 초반에 선두 그룹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뒤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초반에 아무리 잘 달려도 뒤처지면 초반에 잘 한 것이 소용없습니다. 진짜 마라톤을 잘하는 선수는 자신의 페이스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잘 지키는 선수입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하되 끝까지 거해야 합니다. 가룟유다는 주님의 제자였습니다. 12사도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주님이 12명만을 선택하셨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입니까? 그런데 가룟유다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주님을 버렸고 목매달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비참한 최후보다 더 비참한 것은 죽음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지옥 생활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룟유다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에는 로마가 기독교인들을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한번은 추운 겨울에 로마 군인들이 기독교인들을 잡아서 얼음 물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 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믿음을 지키다가는 얼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얼음물 속에 들어가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음 물속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는 진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육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진리 안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얼음 물속에 집어넣고 고통을 주던 로마군인 한 사람이 물 밖으로 나온 사람을 대신해서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이 얼음 물속에 뛰어든 이유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얼음 물속에서 순교 하려는 순간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숫자만큼 천사들이 면류관을 가지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물 밖으로 뛰쳐나가자 면류관을 가지고 오던 천사 중에 한 천사가 돌아가는 것! 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광경을 보고 자신이 물 밖으로 나온 사람을 대신해서 얼음 물속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진리 안에 끝까지 머물러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사울 왕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때 그는 인물은 뛰어났지만 아주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겸손을 끝까지 유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가 왕이 되고 전쟁에 승리하고 왕위가 견고해지니 교만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겸손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고 길보아산 전투에서 자신도 죽고 아들도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앙의 승리는 마지막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말씀 안에 거하십시다. 끝까지 진리를 붙잡읍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배운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배운 그 진리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거하되 끝까지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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