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무엘하 19장 31 - 39절(개역개정)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인생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만남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만남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만남이 가장 중요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영생이 있습니다. 인생에는 하나님을 만나야만 풀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둘째, 부모를 잘 만나야 합니다. 신앙과 인품이 좋은 부모를 만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것은 복입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만나서 원대로 배울 수 있는 것도 복입니다. 부모를 잘 못 만나면 어릴 때부터 많은 상처를 받게 되고 평생을 그 상처 때문에 아파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음에 생긴 상처로 인하여 쓴 뿌리가 생기고 자신이 원치 않는 인생의 쓴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 어떤 목자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목자라고 다 같은 목자가 아닙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참된 목자를 만나면 천국으로 가는 것이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거짓 목자를 만나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하나님도 만나고, 부모도 만나고, 목자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부모와 목자만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만납니다. 인생이 만남의 연속이기 때문에 만남의 복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에게 만남의 복이 넘치시길 축원합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용재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분은 목사로서 초대총장을 지내신 분이시고 연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 오신 분이십니다. 원래 이분의 아버지가 무당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자가 이 집 앞을 지나다가 박수무당인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답니다. “당신 무당 짓 하다가 나중에 지옥가면 어떻게 하겠소? 자식들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그날부터 성령의 역사가 시작됐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만 하면 “예수믿고 천당가라”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천당! 천당! 천당! 이 소리 때문에 결국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 집사님은 신앙생활을 하다가 집사님이 된 후에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던지 자신의 전 재산인 땅 일곱 마지기를 몽땅 건축 헌금으로 바쳤습니다. 그러니 굶어야 될 형편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보기에도 너무 딱해서 “하나님, 우리 백집사님이 전 재산을 교회에 다 바치고 굶게 되었으니 어떻게 합니까?”라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교사님과 의논해 보라는 지혜를 주셔서 선교사님을 찾아가 의논을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마침 집안일을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니 그 집사님을 데려 오라 했습니다. 그래서 백집사님이 선교사님 집안일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낙준이도 선교사님 집 마당도 쓸고 교회 청소도 하며 아버지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낙준이의 눈이 언제나 빛나고 초롱초롱한 것을 보고 선교사님은 그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공부를 시키고 유학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는 연세대 총장이 되고 문교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헌신이 아들에게 만남의 복을 가져오게 했고, 아들 백낙준은 만남의 복을 통해서 외국유학을 했고, 연세대 총장이 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만남의 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본문에서는 다윗의 인생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다윗에게 큰 의지가 되었던 한 사람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르실래입니다. 주님은 본문에 나오는 바르실래가 다윗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르실래는 길르앗에 사는 부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난 갈 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80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변함없이 왕을 공궤하는 바르실래가 다윗 왕은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함께 왕궁으로 가서 노후를 함께 지내자고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내 나이가 80인데 무슨 영화를 더 추구하겠는가 하고 사양하고 요단 강가에서 입 맞추고 이별하였습니다. 다윗은 비록 전쟁에 이기기는 했지만 아들과 싸워 이겼으니 무슨 기쁨이 있겠습니까? 아들은 죽고 아들에게 반역을 당한 다윗의 마음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때에 다윗의 처지와 상관없이 다윗에게 사랑과 도움을 준 바르실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다윗에게 바르실래는 큰 위로와 격려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모든 성도는 영성가가 되고 전문가가 되고 사역자가 되라고 외쳤습니다. 모두가 영성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전문성을 갖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사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도들이 해야 할 사역을 3가지 범주로 나눠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중보기도자로 사역하길 바랍니다. 둘째, 바르실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바르실래가 바로 본문에 나오는 바르실래입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왔던 것처럼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목회자의 바르실래로 목회자를 돕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축복했습니다. 바르실래를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합시다.
1. 바르실래는 언제나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본문에서 바르실래는 압살롬의 반역으로 피신을 하는 다윗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며 다윗을 섬겼습니다. 32절을 함께 봅시다.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바르실래는 그 후에 다윗이 압살롬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갈 때에 요단강을 건너는 다윗의 도강을 도와줍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안할 때는 다윗 옆에 붙어서 아부하다가 다윗이 어려움을 당하니 다윗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다윗에게 왕의 권세가 있을 때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왕이 어려움이 없을 때에는 조용히 고향에서 지내다가 다윗 왕이 어려움을 당하자 왕을 찾아와 물질적으로 마음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바르실래는 변함없는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바르실래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평안할 때는 숨어서 봉사하다가 교회가 어려울 때는 더욱 헌신하는 충성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 언제나 변함없이 충성스러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우리 주님의 모습입니다. 히 13:8에 보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어려울 때는 겸손하고 충성스러웠는데 형편이 좀 좋아지니 교만해지고 불충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반대로 형편이 좋을 때는 겸손하고 충성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니 시험에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팽개치는 사람들도 봤습니다. 그런 모습은 주님을 닮은 모습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종 중에 아주 충성스러운 종이 있었습니다. 엘리에셀이라는 종입니다. 얼마나 성실하게 주인을 잘 섬겼던지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은 그를 자신의 상속자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되니 이제 엘리에셀은 주인의 재산을 상속할 상속자의 자리에서 다시 종의 자리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시험이 들어서 신세를 한탄하고 이삭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변함없이 무려 4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이 충성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엘리에셀을 보고 아들 이삭의 배필을 구하여 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며느리 감을 구해오는데 자신이 늙어서 못 간다면 보통 사람 같으면 아들이 직접 가도록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이라면 자신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 것이라고 믿고 그 중요한 일을 엘리에셀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리브가라는 좋은 며느릿감을 구해서 아브라함의 가정에 기쁨을 주었습니다. 참 충성된 사람입니다. 변함없이 충성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신약에서 변함이 없는 사람을 꼽으라면 사도요한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에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서 주님에게 몰려들 때도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어 주님이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다 도망을 갔는데 사도요한은 혼자 십자가 아래까지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주님은 요한의 충성됨을 보시고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에게 맡겼습니다. 사도요한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실 때도 그 자리에 있었고, 성령을 받은 후에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극심한 핍박을 받으면서도 주의 종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끓는 기름 가마 속에 들어가는 핍박을 받았는데도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충성됨을 보시고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의 비밀을 보게 하셨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이런 변함없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는 종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으며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텐데 재림 전에는 반드시 큰 환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지금 이 시대는 바벨론이 부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바벨론이 부활하면 세상은 더욱 음란해지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강문호 목사님은 신성로마 제국이 부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부활하면 세상은 더욱 음란해질 것입니다. 신성로마 제국의 부활을 위해서 활동하는 단체 중에 하나가 UN입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얼마 전에 UN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동성연애를 해도 좋다고 발표했습니다. 세계 각처에서 활동하는 UN 직원은 43,000여명입니다. 그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동성부부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가증스러운 일을 우리나라 사람인 반기문씨가 앞장서서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럽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반기문 사무총장이 앞으로 2년 안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답니다. 세상은 로마시대처럼 음란해지고 있습니다. 신성로마 제국은 천주교의 손에 넘어갔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성경대로 믿는 개신교인들을 엄청나게 핍박했습니다. 약 7,000만 명에 달하는 개신교도들이 천주교에 의하여 순교를 당했으니 그 핍박이 어느 정도로 심했는지 짐작이 갈 것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이 부활한다는 말은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전에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았던 것처럼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핍박이 시작 될 것이고 주님오시는 날까지 핍박의 강도는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가 될수록 우리는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변함없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2. 바르실래는 자신을 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바르실래의 변함없이 헌신하는 모습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의 왕궁에서 함께 살자고 권면했습니다. 33을 보시기 바랍니다.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이런 큰 영화가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의 형만 되어도 그 옆에 붙어 아양 떠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생기는데 왕궁에 가서 왕과 함께 살 수 있는 일이 어찌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노년에 부귀영화와 권세가 함께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르실래는 이 다윗의 제의를 사양하였습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의 호의를 거절한 이유는 바르실래 자신은 너무 늙었으며 늙은 자기가 왕 옆에 있게 되면 왕에게 누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34,35절을 보겠습니다.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바르실래는 자신이 늙어 노후를 집에서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나이 많음이 왕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대신 오히려 누를 끼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최소한 자신에 대해서 두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는 자신은 하나님 없이는 무능하고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주님 앞에서 자신은 죄인이라고 고백했으며, 이사야는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기 때문에 자기가 괜찮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때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주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내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손가락 인형이 인형극을 보는 사람들을 웃겼다 울렸다 해도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자기를 움직이는 사람의 실력입니다. 그 사람이 인형에서 손가락을 빼면 인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나에게서 손을 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믿음의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기가 아무리 연약해도 하나님과 연합하면 강한 자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칠 때 사용했던 무기는 어떤 최신식 무기, 강력한 무기가 아니라 시냇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맷돌 하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물맷돌처럼 약한 자를 들어서 위대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시작할 때 나이가 80세였습니다. 그는 늙었고, 힘도 없고, 입도 뻣뻣해졌으며, 재산이나 배경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너무나 약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힘없는 노인을 그 당시에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바로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바로에게 하나님처럼 되게 하셨습니다. 교우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 자신이 하나님 없이는 얼마나 무능하고 악한 존재인지는 잘 압니다. 그런데 연약한 자신이 하나님과 연합하면 얼마나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아는데 있어서 균형 잡힌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얼마나 악하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하나님 없이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균형 잡힌 자신에 대한 지식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는 너무나 약하고 악한 자이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나는 보배롭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랑하려면 주 안에서 해야 합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을 알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주님 안에서 나와 주님 밖에서 나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3. 바르실래는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람입니다. 바르실래는 다윗 왕이 외롭고 힘든 처지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신하들 중에는 압살롬의 반역에 동참한 사람들도 있었고, 반역에 직접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압살롬의 반역을 방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런 사람들을 다 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다 벌한다면 전쟁보다 더 큰 환난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할 수 없이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과 함께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다윗의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그 답답함을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풀 사람으로 바르실래의 동행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다윗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잠깐 마음을 푸는 늙은 자신보다는 다윗을 도와 더 큰 정치를 할 젊은 일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김함이라는 젊은 일꾼을 추천했던 것입니다. 37절을 보겠습니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다윗은 바르실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김함을 자신과 동행하게 했습니다. 바르실래는 나만 제일이고 내가 하는 일만 좋고 남이 하는 일은 아무리 잘해도 트집 잡고 비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좋은 사람, 실력 있는 사람을 보면 세워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세웠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세웠고, 베드로는 마가를 세웠습니다. 신약에서 사람을 세우는데 모범을 보인 분이 바나바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교인들은 바울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바울이 전에는 극악한 핍박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를 시켰고 사울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후에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되었는데 예루살렘교회에서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회자로 파송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신실한 사람인지라 열심히 목회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바울을 불러와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그러자 안디옥 교회는 더욱더 부흥하여 초대교회의 중심이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옮지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울이 바울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였고 둘째는 바나바 목사님의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디를 가든지 남을 세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악한 자들은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립니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주님은 우리를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마 23:12에 보면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마 7:12에 보면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원리입니다. 높고 싶으면 낮아지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들을 높여주고, 직장에서는 동료들을 높여주고, 교회에서는 교우들을 높여주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높여주시기 위해서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낮아주신 주님을 높이셨고, 죽어주신 주님을 살리셨습니다. 성경 빌 2:5-11에 보면 자기를 낮추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가 나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니 하나님께서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높이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니 하나님이 주님을 모든 무릎을 주님 앞에 꿇게 하실 정도로 높여주셨습니다. 오늘 바르실래의 신앙을 살펴봤습니다. 바르실래는 언제나 변함 없는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자신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르실래는 사람을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기도팀이 내일 백두산에 북한 구원과 통일을 위해서 기도하러 백두산에 갑니다. 여러분! 기도부탁합니다. 저희들은 하루 10시간 정도씩 차를 타게 될 것입니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백두산 위에서는 통성기도는 못하지만 간절하게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중국에 가서 기도하는 저희들의 기도와 대한민국에서 기도하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나라를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용기 장로님이 세운 가나안 농군학교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점심시간에 박대통령은 별 생각 없이 빵조각을 떼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 때 김 장로님은 박대통령에게 정중히 이야기했습니다. “각하는 3,000만 백성의 어버이시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어버이입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먹기 전에 꼭 식사기도를 드립니다.” 박대통령은 즉시 빵 조각을 내려놓고 김 장로님의 기도를 받았습니다. 김 장로님의 기도실 앞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었습니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함께 해봅시다. “조국이여 안심하라. 내가 기도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아주 위험한 시기에 있습니다. 이 나라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 이번 주간에는 특별히 나라를 위해서, 북한 구원을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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