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천 설교/마경훈목사

[스크랩]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만 자랑하라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4절(개역개정)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한 훈련병이 늦은 밤 논산훈련소 안에 있는 PX에서 빵을 훔쳐 먹다가 마침 시찰 나온 2스타 사단장에게 들켰습니다. 사단장님이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군인이 빵을 훔쳐먹느냐?” 훈련병은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잘못하면 영창에 들어갈 터인데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훈련병에게 한 가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훈련병이 사단장에게 물었습니다. “사단장님, 저를 아십니까?” 사단장이 알 턱이 있습니까? 많은 훈련병들이 있는데 알 턱이 없지요. 사단장은 “내가 자네를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훈련병은 사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망을 쳤습니다. 훈련병들은 머리는 빡빡이고 다 같은 옷을 입고 있으니 도망간 훈련병을 찾을 길이 없지요. 지금도 그 훈련병을 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단장은 그 병사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너무나 잘 알고 게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뿐만 아니라 중심도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살피시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중심 중에서도 사랑을 보십니다.
고전 13:1-3을 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보십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보십니다.
사랑은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전 13장에서 사랑의 정의를 내리지 않고 사랑의 특징 15가지를 말한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사랑의 특징 15가지 중에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를 나누겠습니다.
바울은 딤후 3:1-5에서 말세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랑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자기 PR시대라고 합니다. 자기를 자기가 자랑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이게 말세의 특징입니다.
성경을 보면 자랑해도 되는 것이 있고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나옵니다. 오늘 설교는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과 왜 그것을 자랑하면 안 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자랑하면 안 되는 것
도적질로 풍성한 생활을 하는 도둑놈이 있었습니다. 그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자기가 도적질을 얼마나 잘 하는지, 또 어떤 진기한 물건을 훔쳤는지, 어떤 기발한 방법으로 도적질을 하는지를 자랑했습니다. 그 결과 술친구 중에 한 명이 고발해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도둑은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자랑했다가 감옥에 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자신의 능력
바울사도는 누구보다도 자랑할 것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능력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약 1:10,11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꽃과 같이 시들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들이 꽃과 같이 떨어질 날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것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그 사람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으면 바보 되는 것입니다.
평등 시리즈라는 유머가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사람은 나이 40대가 되면 지식의 평등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 하는 것은 어린 시절 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입니다. 40이 넘어가면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그게 그거라는 말입니다. 50대가 되면 외모의 평등이 찾아옵니다. 예쁜 사람, 못생긴 사람은 어리고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50이 넘어가면 배도 나오고 엉덩이도 쳐지고 두리뭉실해져서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60대가 되면 성의 평등이 찾아옵니다. 남자나 여자나 평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60이 되면 남자는 순해집니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억새 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비슷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70대가 되면 건강의 평등이 찾아옵니다. 건강한 사람이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나 고만고만합니다. 다 같이 늙어가고 다 같이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80대가 되면 재물의 평등이 찾아옵니다. 먹지도 못하는데 돈이 많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집니다. 90대가 되면 생사의 평등이 찾아옵니다. 말은 살았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 痼都求� 사나 죽으나 그것이 그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자랑하겠습니까?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 능력도 풀의 꽃과 같은 것입니다.

2) 자신의 의
롬 3:27에 보면 우리의 의로움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이 말은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주어지는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라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좀 좋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로 의인될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남들보다 좀 더 도덕적으로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성실하게 섬기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꿈에 천사를 만나서 물었습니다. “천사여, 제가 이대로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어렵겠소. 천국에 가는 것이 쉽지 않소. 자, 보시오”하며 천사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아 있는 사닥다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사닥다리가 구름 저 안까지 뻗쳐 있었습니다. 천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당신이 천국으로 가는 길은 한 길뿐인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면서 당신이 지은 죄를 발 디딤대에 이 분필로 쓰고 회개하시오. 그러면 생활로 지은 죄, 몸으로 지은 죄, 생각으로 지은 죄가 다 끝나는 계단에서 천국 문이 열릴 것이오.” 분필을 받아 든 그는 한 길밖에 없는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로, 행동으로 지은 죄를 거의 다 쓰고 나서 내려다보니 그 죄가 얼마나 많은지 아득하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겁도 나고 다리도 아팠습니다. 그런데 생각으로 지은 죄를 쓰니 그 죄는 더 많았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많이 올라와 있어서 도로 내려갈 수도 없는데, 생각으로 지은 죄를 쓰고 올라가고 쓰고 올라가도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런! 데 그때 반가운 한 분이 사닥다리를 내려왔습니다. 그의 스승이었습니다. 그 반가움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스승님, 더 많은 제자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다시 내려오시는군요.” “아닐세. 분필이 떨어져서 분필을 가지러 가네.” 아직도 회개할 죄가 많이 남았는데 분필이 떨어져 분필을 가지러 간다는 것입니다. 스승도 죄가 많고 제자도 죄가 많은 것입니다. 인간의 의로는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인한 의로만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롬 4:2에 보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브라함 자신의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난 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님의 의를 우리의 의로 여기시기 때문에 의인 된 것입니다.
사 64:6에 보니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거지가 약 1년 정도 갈아입지 않고 입고 다닌 옷을 여러분에게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며 받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는 우리의 의가 그런 것입니다.

3) 자신의 계획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입니다. 아직 실현된 것도 아닌데 계획을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잠 27:1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4) 자신의 힘이 되는 어떤 것
우리가 힘으로 삼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돈도, 능력도 건강도 힘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오직 주님입니다.
눅 12장에 보면 한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농사를 지었는데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좁은 창고를 헐고 아주 큰 창고를 지었습니다. 부자는 새로운 창고에 소출을 가득 쌓아놓고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편리한 것이 많지만 재물이 힘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중에 아주 잘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의 외모는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그의 머리카락의 아름다움은 대단했습니다. 압살롬은 1년에 한 번 연말마다 머리를 잘랐는데 잘라낸 머리카락의 무게가 200세겔이나 되었습니다. 약 2.28kg입니다. 그 머리카락이 압살롬에게는 자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이 다윗 왕에게 반역하여 왕의 자리를 넘보다가 다윗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 원인이 압살롬의 자랑거리였던 머리카락 때문이었습니다. 압살롬이 노새를 타고 전쟁을 했는데 상수리나무 밑을 지나가다가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렸습니다. 압살롬이 타고 있던 노새는 빠져나가버리고 압살롬은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걸려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 요압이 달려가서 창 셋으로 심장이 찔렸습니다. 그런데 심장이 찔린 후에도 살아있으니 청년 10명이 두들겨 패서 죽여버렸습니다. 압살롬의 자랑거리가 압살롬의 사망의 원인을 만든 것입니다.
세상의 자랑은 허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돈도, 건강도, 명예도, 권세도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힘이 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자랑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2. 왜 자랑하면 안 되는가?
1) 신앙생활은 주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단한 일을 해도 그것은 내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려면 주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모세가 주님을 만날 때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그 떨기나무는 무능한 모세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떨기나무는 감람나무처럼 기름을 짤 수도 없고, 포도나무처럼 열매를 딸 수도 없고, 백향목처럼 재목으로도 쓸 수 없는 쓸모없는 나무요 하찮은 나무입니다. 떨기나무의 불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떨기나무에 하나님의 불이 붙으니 한 민족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모세의 모세 됨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모세 자신의 능력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고후 10:17에서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할지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자랑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연약하고 불우한 이웃에게 깊은 좌절감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장을 바꿔봅시다.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누가 돈 자랑하고, 세상 자랑하면 상처를 받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느 훈련단체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훈련에 충실했고 그 결과 그 단체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단체에서는 매주 훈련생들이 모여서 한 주간 주님과 동행한 내용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나눌 거리가 풍성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 주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성령의 지도와 인도를 따라 살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풍성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모임 때마다 하나님이 일하심에 대해서 간증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본문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혹시 나의 간증으로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그 중에는 자기는 영적인 실제가 되지 않아서 힘이 드는데 매주 마다 영적인 체험을 나누는 저의 간증에 마음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간증도 잘못하면 자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자랑이 본의 아니게 남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3) 상대에게 죄를 짓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기와 질투는 비교의식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시기와 질투를 받는 사람의 자랑 때문에 상대로 하여금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수가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아들입니다. 야곱은 다른 형들에게는 일반 옷을 입히면서 요셉에게는 아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들이 자기의 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말하면 형들의 마음이 상할 수 있으니 속으로만 생각하고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요셉은 지혜롭지 못해서 꿈 이야기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듣는 형들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가뜩이나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서 미워죽겠는데 형들의 단들이 요셉의 단에게 절을 했다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지요. 당연히 형들의 마음이 상하지요. 그런데 요셉이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11별이 요셉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 절을 하는 꿈입니다. 요셉은 자랑하듯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형들의 시기심을 자극하게 되었고 결국은 형들에 의해서 상인에게 팔려서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랑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높은 장벽을 쌓게 만듭니다. 그래서 상대와 메꾸기 힘든 거리감을 만들게 할 수 있습니다. 자랑은 상대를 죄짓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자랑하면 안 됩니다.

4)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기에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자랑하다가 어렵게 된 히스기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히스기야는 참 귀한 왕입니다. 왕이 되자마자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우상을 제거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높이며 하나님께만 제사합니다. 그래서 부귀와 영광이 극에 달하는 복을 받습니다. 그렇게 복을 받은 왕이 전쟁을 만났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십팔만 오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천사를 보내셨고, 천사는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의 군인 18만 5천명을 죽였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그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살려 주십니다.
히스기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왕이지만 죽을 병에서 살게 된 그를 축하하기 위해 바벨론 왕이 보낸 사절단에게 그가 보배 창고를 열어 자기 나라의 모든 보배를 보여 주며 자랑을 합니다. 그는 바벨론의 사절들에게 보물이 있는 창고나 무기가 있는 무기고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자기를 살려주신 하나님을 자랑했었어야 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자랑거리가 되었어야 하는데 보배가 자랑거리가 되었고 무기가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잘못된 자랑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 때문에 바벨론이 쳐들어와 유다를 짓밟고 보석을 다 빼앗아 가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히스기야 왕이 자랑 한번 잘못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개구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황새에게 막대기를 서로 입에 물고 날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드디어 막대기에 매달린 개구리도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그때 연못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개구리들이 부러워하며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야, 그거 누구 아이디어냐?” 하늘을 나는 개구리는 잠잠했어야 하는데 그만 “당근, 내 아이디어지!”라고 자랑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개구리는 입에 물었던 막대기를 놓쳐버렸고 결국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 개구리는 허탄한 자랑을 하다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랑에는 열등감과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자기의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려는 열등감이 숨어 있고, 자기 잘난 것을 보여주려는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열등감과 교만은 둘 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매가 있는 것입니다.
렘 50:36입니다.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칼은 자랑하는 자를 심판하는 것입니다.

3. 우리는 무엇을 자랑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을 아는 것
렘 9:24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우리의 자랑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자랑입니까? 거기에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요 17:3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느냐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한 남자가 좋은 회사에 이사로 스카웃이 되어서 갔다고 합니다. 자기 사무실도 생기고 연봉도 많이 오르고 하니 기분도 좋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새로 간 회사에서 인상적인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비서가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장관님과 통화를 하고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고서 대통령께도 연락을 자기가 드리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끝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본 비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새로 오신 분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했다는 것이죠. 그 남자는 몹시 뻐기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그래 “김비서 뭔 일이지?”, “아, 예...” 비서는 머뭇거리다가 한 마디 했습니다. “이사님 전화선 설치가 아직 안 된것 같던데 제가 잘못 알았나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바마도 세우셨고 박근혜 대통령도 세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바마 대통령을 알고 박근혜 대통령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더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간증)
롬 15:17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자랑과 간증의 차이가 있습니다. 자랑은 자기를 높이는 것이고 간증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때문에 간증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신앙생활이 건강한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부르심에서부터 나타납니다. 고전 1:26-31을 보면 하나님은 무능한 자들, 문벌 없는 자들, 미련한 자들, 가난한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능력 있는 자들, 문벌 좋은 자들, 지혜로운 자들, 부요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말한 후에 이런 결론을 내립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우리는 약하지만 우리를 부르신 그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입니다. 약한 우리를 강하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박봉수 목사님이 서울대 철학과 교수의 입관예배를 드렸습니다. 백혈병으로 고생하면서 교회에 한번 나오고 병상에서 하나님을 믿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인의 간절한 청이 있어서 입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갔습니다. 가보니 화환이 셀 수 없이 많이 걸려있었는데 많은 부분이 불교계 인사들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분이 우리나라 불교 사상계의 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불교철학을 전공하셨고, 서울대학교에서 불교철학을 강의하시며, 우리나라 불교 사상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예배를 집례하면서 정말 묘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상식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는 마땅히 조계종 총무원장이 오던지 불교계의 고승이 오셔서 불교식으로 집례를 해야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계 거물들이 보낸 화환 앞에서 목사가 예배로 집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정말 진지하게 다시 물어야만 했습니다. “불교는 과연 어떤 종교인가? 평생 불교철학을 연구한 대가가 죽음을 앞두고 불교에 등을 돌리고 예수를 믿게 됐다면 과연 불교에 구원은 있는 것인가?” 반면 복음의 능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복음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구나. 우리의 자랑은 주님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복음입니다.

3) 나의 약한 것
고후 11:30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주님은 나의 약함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성경학자 중에 고인이 되신 이상근 목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16살 때 발에 병이 생겼습니다. 몇 년을 걷지 못하고 집에만 있게 되면서 성경을 달달 외우다시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고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는 60년 동안 발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은퇴하면서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보니 발뒤꿈치에서 1.5cm짜리 철사가 나왔습니다. 그 철사 때문에 60년 동안 절름발이로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 철사가 그분의 평생 가시가 된 것입니다. 목사님은 수술을 받은 후에 철사를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지만, 그로 인하여 나를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 것을 알고 성경학자가 되게 했으니 하나님 은혜 감사합니다.” 그분이 철사에 안 찔렸으면 한국에 이름난 성경학자가 못되었을 것인데 철사에 찔린 덕분에 집에 들어앉아서 성경만 공부해서 훗날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경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약한 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기에 나의 약함이 자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쓸데없는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인간적인 자랑은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주님을 자랑하시고 주님의 은혜를 자랑하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메모 :

'추천 설교 > 마경훈목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분별하라.  (0) 2015.08.28
[스크랩] 성령의 바람을 불게 하라  (0) 2015.08.28
[스크랩] 바르실래 신앙  (0) 2015.08.28
[스크랩] 70이레  (0) 2015.08.28
[스크랩] 경건하게 사는 방법  (0) 2015.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