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레위기 10장 8 - 11절(개역개정)
8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11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신앙생활에서 분별력이 중요합니다. 마귀가 하와를 선악과로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고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와가 마귀의 거짓말을 분별했다면 시험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마귀의 거짓말을 분별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하와는 마귀의 말에 속아서 선악과를 따먹었고 인류를 사망에 빠뜨렸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금식 하신 후에 주리실 때에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마귀의 유혹을 정확하게 분별해내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분별력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영적인 체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체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도 있지만 마귀가 주는 것도 있기 때문에 분별이 필요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한창 은사를 받고 예언을 할 때 위험한 일을 많이 하셨답니다. 한번은 기도하고 있는데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이 술집에도 가고 담배도 피우고 도박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장로님을 찾아갔습니다. “학생이 여기에 어떻게 왔는고?”,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섰더니, 장로님께서 아주 황당해 하면서 따라 들어오셨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장로님께서 아직도 몰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도박한다고 하셨습니다. 회개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장로님의 얼굴이 발개졌습니다. 장로님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도박도 하는 것이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맞았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마귀도 역사합니다. 어느 날 새벽 3시쯤 이분의 귀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서문시장에 있는 S상점에 가서 네가 원하는 물건을 다 골라라. 그러면 그것들을 그냥 줄 것이다.” 그때 이분에게 많은 물건이 필요했는데 그런 음성이 들렸으니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이분이 ‘주여, 주여!’하며 2시간 동안 차를 타고 서문시장으로 갔더니 S상점이 있었습니다. 상점에 들어가서 필요한 물건을 많이 골라 한 곳에 쌓아 놓았습니다. 점원이 물건을 보더니 계산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도 이분은 그것을 그냥 가지고 나오려 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원이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연락을 못 받으셨습니까?”, “못 받았는데요.”, “무슨 연락을 받으셨을 텐데…….” 사장님에게 물어보라고 했더니, 사장님이 직접 왔습니다. 연락 받은 것이 없냐고 물었다가 망신만 당하고 나왔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할 때 마귀도 역사를 합니다. 그래서 영적 체험은 분별이 필요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가 소금과 설탕을 분별하지 못하면 음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좀 과한 표현을 하겠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가 똥과 된장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우스운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을 피곤하게는 만들어도 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 반면에 신앙적인 면에서 분별은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눅 6:39에 보면 주님께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단의 교주를 따르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진리를 떠났으면서도 자신들이 진리 안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길을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 23:15에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분별하지 못해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도 지옥 자식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진리를 떠난 자들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신앙생활은 거룩한 생활입니다. 그런데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분별이 필요합니다. 레 11장에서는 거룩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분별입니다. 레 11:47 말씀입니다. “부정하고 정한 것과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한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부정한 것은 만지면 안 되고 정한 것만 만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생활을 위하여 부정한 것은 먹어서는 안 되었고 정한 것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정한 것과 부정한 것, 먹을 생물과 먹지 못할 생물을 분별해야 했습니다. 레위기의 부정한 것과 정한 것,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은 신약시대를 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적인 비유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아무 것이나 먹으면 부정해집니다. 아무 것이나 받아드리면 부정해집니다. 잘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시대가 혼탁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분별력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해도 되는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만나도 되는 사람이 있고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도 되는 곳이 있고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있습니다. 인생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지난 1일 한국 마사회 탁구단의 현정화 감독이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습니다. 그 일로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선수촌장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신앙생활을 하는지 그만두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고 그 결과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대제사장인 아론과 아론의 대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수행할 아론의 자손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하여 죽음을 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 하나님의 역사는 공의적인 부분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잘못하면 현장에서 죽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약시대, 은혜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구약의 방법대로 했다면 아마 우리 중에 죽어야 할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술을 마시면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분별력을 잃어버리면 거룩함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앞에 나오는 1,2절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분향을 하는데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분향했습니다. 그랬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서 그들을 삼켰습니다. 그 결과 나답과 아비후는 현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건 후에 본문의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가 술을 먹고 회막에 들어갔다가 분별력이 약해져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린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분별이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를 다루겠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무엇을 분별해야 하는가? 둘째는 어떻게 잘 분별할 수 있는가?입니다.
1. 우리는 무엇을 분별해야 하는가? 우리는 바울이 말한 대로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해야 합니다만 특히 잘 분별해야 하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선악을 분별해야 합니다. 히 5:14에 보면 선악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요즘은 선과 악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 중에 하나가 경계선이 흐려진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경계도 불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성의 경계입니다. 성은 하나님이 주신 오묘한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남녀가 성을 통해서 서로 사랑을 나누고 성을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십니다. 경계선 안에서 성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경계선을 넘어가면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의 경계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이 경계선을 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첫째, ‘은밀하게’입니다. 성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사랑하는 당사자끼리 은밀하게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며칠 전에 남녀 경찰관이 공원에서 알몸으로 애정행각을 하다가 지나가던 행인의 신고로 체포 되었습니다. 참 분별력이 없는 경찰관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정행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추태입니다. 둘째, ‘부부끼리’입니다. 배우자 외에 어떤 사람도 성적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약속했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요. 안됩니다. 아무리 결혼을 약속했어도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혼전 동거도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부부가 되는 것은 공개적이어야 합니다. 비밀 결혼은 깨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연애할 때도 성적인 부분만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저는 손을 잡는 것도 절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결혼했는데도 애인이 있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건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운 것입니다. 셋째, ‘남녀 간에’입니다. 아무리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도 동성연애는 성경에서 허용하지 않습니다. 성경 롬 1:27에서는 동성연애는 부끄러운 일이고 동성연애자들에게는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또 고전 6:9에서는 동성연애를 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개역개정에는 ‘남색하는 자’라고 했는데 동성연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교단과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들의 생각을 위에 놓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선악을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롬 12:2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좋은 것이라고 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해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합시다.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죠. 그런데 그 시간 주님이 여러분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A라는 사람이 생각나게 하시고 그에게 찾아가서 전도하라는 감동을 주셨다면 여러분은 기도를 해야 합니까 아니면 A를 찾아가서 전도를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그 시간에 여러분이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실 까요 A라는 사람을 찾아가서 전도하는 것을 기뻐하실까요? 좋은 것이라고 다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좋은 것 중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3)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일 4:1에 보니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옳은 말을 하고 성경적인 말을 하고 능력 있는 사역을 해도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특히 설교자들의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설교는 기가 막히게 하는데 아주 음란한 목사가 있습니다. 몇 년 전에 젊은이 사역을 하던 아주 유명한 목사가 음란 문제로 교회를 사임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에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교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아주 음란한 사람이었습니다. 설교는 아주 잘하는데 욕심에 사로잡힌 목사가 있습니다. 능력은 나타나는데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 사단의 역사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도 잘 못하고, 능력도 없어 보이는데 그 영이 아주 맑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목사님들도 있습니다. 영을 분별해야 하는 이유는 설교자가 말을 할 때 그의 말을 타고 영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이단적인 설교를 자주 들으면 이단의 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이단에 빠지는 것입니다. 음란에 사로잡힌 사람의 말을 타고 음란귀신이 들어옵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의 말을 타고 욕심귀신이 들어옵니다. 성령께 사로잡힌 사람의 말을 타고는 성령께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악하고 음란한 영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을 분별해야 합니다.
4) 진리의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딤후 2:15에서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자꾸 인용하는데 잘 분별해보면 그가 말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면 하나는 성경을 자기 이로운대로 갖다 붙여서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봐서 그렇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분변해야 합니다.
5) 시대의 표적을 분별해야 합니다. 마 16:3에 보면 주님께서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눅 21장에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주님의 재림을 연결시켜서 재림 직전에 일어날 징조를 말씀합니다. 눅 21:7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주님께서 다양한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주님이 말씀하신 징조 중에서 몇 가지만 정리를 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지진이나 전쟁, 기근 등은 많이 들어보셨으니까 잘 들어보지 못한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들으시고 시대를 분별하기를 바랍니다. 첫째, 테러입니다. 눅 21:11에 보면 재림 직전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무서운 일은 헬라어로는 ‘포베트론’인데 주님이 딱 한번 사용하신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 CEV 역에는 ‘테러블’이라고 나옵니다. 테러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전에는 테러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게릴라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었지요. 그런데 911 사건 이후에는 게릴라라는 말은 사라지고 테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하루도 테러라는 말이 안 나오는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요즘 테러가 많이 일어난다는 말은 이 시대가 주님 재림이 임박한 시대라는 것입니다. 둘째, 박해입니다. 눅 21:12에 보면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큰 박해가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는 큰 박해가 있는 시대인가요 없는 시대인가? 우리 시대는 박해가 없는 것처럼 보이죠. 왜 그러냐면 대한민국에는 아직 박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우리가 엄청난 박해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믿어질지 모르겠는데요. 지금 이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1년에 10만 명이 순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무슬림 지역에서겠지요. 한 시간에 약 11명이 순교를 당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기독교 박해가 없지만 언젠가 우리나라도 박해가 올 것입니다. 박해도 재림의 징조입니다. 셋째, 운석입니다. 눅 21:11에서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26절에서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운석 알지요. 황금보다 10배는 비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진주에 운석이 떨어졌지요. 그 중에 2개 정도를 주었다고 합니다. 떨어지기는 약 100개 정도 떨어졌답니다. 외국에서 그걸 찾으려고 몇 천 명이 탐지기를 가지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찾은 운석을 보니까 작은 호박만 하더군요. 지난 10년간 지구에 몇 m짜리의 대형 운석들이 26개나 떨어졌다고 합니다. 몇 m 크기면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크기라고 합니다. 만약 그런 크기의 운석이 바다에 떨어지면 엄청난 쓰나미가 일어나게 된답니다. 그런데 다행히 큰 운석들이 광야에 떨어지고, 어름덩어리에 떨어지고, 시베리아에 떨어져서 큰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 한분이 몇 년 전 추수감사절 전 주에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었습니다. 햄버거를 먹다가 뉴스를 보니 오바마 대통령과 참모들이 땅굴로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더랍니다. 그들이 왜 땅굴로 들어갔는지 아십니까? 지구 가까이에 5m 짜리 운석이 지나갔답니다. 혹시 그 운석과 지구가 부딪힐까봐 대통령이 땅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앞으로 운석들이 더 많이 떨어지고 크기도 엄청난 것들이 올 것입니다. 시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오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쓰나미입니다. 눅 21:25에 보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고 말씀하는데 쓰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인도네시아에서 쓰나미로 2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후쿠시마에서는 9.0의 지진으로 인해서 쓰나미가 왔는데 도시 하나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는 쓰나미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쓰나미가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기후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바닷물의 수위가 올라갔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지진이 나면 파도가 육지를 덮쳐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표적들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시길 바랍니다.
2. 어떻게 잘 분별할 수 있는가?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는 3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직관을 사용하십시오. 히 5:14에 보면 믿음이 장성한 사람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지각’은 ‘아이스데테리온’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감각기관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혼의 감각입니다. 영혼의 감각을 직관이라고 합니다. 왕하 5:26에 보면 엘리사를 통해서 나아만 장군이 나병을 치료 받은 후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엘리사 선지자 몰래 나아만에게 재물을 받고 돌아왔을 때 게하시를 책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서 엘리사 선지자는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개역성경에서는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번역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심령이 감각 되었다는 것이 영혼의 감각 기능인 직관이 사용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내 영혼의 반응이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옳은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반응을 합니다. 영의 감각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 영의 반응을 잘 살피면 분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직관은 나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서 센서가 잘 작동 될 수도 있고 잘못 작동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직관만을 의지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영의 직관을 잘 사용하려면 늘 깨어 기도하시고 항상 거룩함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2)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고전 12:10에 보면 성령의 은사 중에 영들 분별함이 있습니다. 또 고전 2:13에 보면 영적인 일을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분별한다고 말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영의 직관과 차이점은 직관은 내 영의 반응이고 성령님의 도우심은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내 영의 직관보다 더 정확하고 더 확실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돕는 보혜사이십니다. 분별이 필요할 때마다 함께 계시는 성령님께 묻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물으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분별할 수 있는 사인(sign)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항상 친절하게 우리를 도우시길 원하시고 성령님의 판단은 언제나 옳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바르게 가르쳐 주셔도 받는 우리 편에서 잘못 해석해 버리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수원지에서 좋은 물을 보내줘도 수도꼭지가 녹슬어 있다면 녹물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잘 받으려면 깨끗해야 합니다. 늘 철저히 회개하시고 겸손히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언제나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저와 여러분을 진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성경말씀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들이 술에 취하여 분별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술을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12절에서는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셔서 그 율법으로 분별력 있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위폐를 감별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장님은 그에게 진폐만 주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진폐만 세게 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 위폐를 감별하는 일을 시키려면 위폐를 주고 위폐를 살피게 해야지 계속 진폐만 세게 하면 어떻게 위폐를 감별하나’ 그런데 며칠 후 그는 진폐를 세다가 이상한 돈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리 만져 봐도 다른 진폐와는 달랐습니다. 그가 사장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사장님이 말했습니다. “위폐를 감별하기 위해서는 위폐만 살펴서는 모른다네 진폐를 만질 때의 느낌을 정확하게 알면 아주 쉽게 위폐를 찾아낼 수 있지” 그렇습니다. 여러분! 진리의 분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익숙해지면 진리가 아닌 것은 아주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만 접하다보면 어느 것이 진리이고 어느 것이 비진리인지 분별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혼합주의 시대입니다. 이것저것이 섞여버리는 시대입니다. 많은 교회들도 혼합주의에 빠져서 천지분간을 못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혼합주의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철저히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만 붙잡으면 선과 악은 선명하게 분별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위에 서면 하나님의 뜻도 분명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영이나 진리의 말씀도 또 시대의 표적도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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